요즘 범세계적 극우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FV4030

Lv.1 FV4030 (1.♡.59.48)

2025년 10월 12일 PM 09:13 · 수정됨(10. 13. 00:06)

조회 1,541 공감 0

저는 최근 전 세계적인 극우화가 자본의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제가 좀 마르크스 방법론을 썩 좋아하지 않는 면도 있긴 합니다만, 이것보다는 모더니즘(근대주의)에 대한 확신이 이제는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것... 이로 인해 서구 근대 문명의 황혼이 보여지는 게 근본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16세기 즈음, 종교개혁 그리고 합리주의로 시작된 세속적 근대주의가 공통적으로 가진 것은 '확신'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신칭의(넓게는 성경)'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와 칼뱅, 그리고 그의 동료들은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에 걸림돌이 되고 신자의 자유에 쇠사슬이 되어버린 가톨릭 교회에 도전하였습니다. 이 확신은 얼마나 강력했던지 백년의 전쟁을 치르고 결국 개신교의 자유를 성취하였죠.

이와 비슷하게 세속적 근대주의는 이성을 통한 진보를 신봉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성에 반하는 불합리한 것, 특히 구체제는 청산되어야 했죠. 점차 모든 서구인들이 이에 확신하고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례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동의하는 사람들이 18세기에는 매우 적었지요. 결국 18세기 미국독립전쟁부터 프랑스대혁명에 이르기까지 이성을 통한 진보라는 '확신'은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나, 세속적 근대주의나 이들의 확신은 세대를 거쳐오면서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헤르만 바빙크가 말한 것처럼 종교개혁의 확신은 17세기부터 교리화, 신비주의, 열광주의,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20세기 선교의 확장 등은 무시 못할 종교개혁의 힘을 여전히 보여주는 듯 했지만, 내부적으로 '믿음에 대한 확신'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유럽 교회의 상대적 쇠락은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였죠.

또한 세속적 근대주의의 쇠락은 양차대전을 통해 명확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비참한 전쟁 속에서 이성의 진보가 과연 존재하는가 사람들은 회의감에 빠져들게 되었죠. 물론 세계 곳곳에서는 압제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유를 외치며 민주혁명을 꾀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지만, 기존의 서구권에서부터 '이성'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기미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구 공산권의 몰락은 이에 대한 치명타였죠. 소련이 붕괴하자, 결국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사회주의를 통해 이성의 진보를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운동은 싸그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럼 그렇다고 비사회주의자이자 이성의 진보를 믿던 그룹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들도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나아질 것 같던 경제활황이 끝나자 진보 성향을 드러내던 기존의 케인즈주의자들은 몰락했고, 통화주의자들이 대세가 되었지만 보다 시장친화를 외치던 사람들도 결국 힘을 잃었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외치는 사람들만 남았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 전체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은 기존의 확신에 비해서는 매우 약한 것이라는 것이죠.

차라리 자본의 운동으로 이뤄지는 수축-팽창의 결과물이 현 상황이라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지금 양태는 16세기 이래 서구를 폭발시키고 이끌어어온 서구 모더니즘 문명의 종말을 부르는 것 같다는 게 문제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독일의 극우가 정권을 잡고 세계 전쟁에 나섰을 때, 영국과 미국, 소련... 이 근대주의의 좌우가 손을 잡고 겨우 겨우 이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극우가 어느 국가의 정권을 차지하고, 나치 독일처럼 세계를 상대로 깽판을 치면 막을 세력과 힘이나 있을까 싶냐는 것이죠.

솔직히, 좀 걱정이 많이 됩니다. 서로마가 반달족에게 엉망이 되는 꼴을 보는 로마인이 된 거 같고, 문명의 한 막이 끝난 게 아닌가 싶기까지 합니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서로마 몰락의 상황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일, 로마 말기 가톨릭이 한 일, 동로마 교회에서 교부들이 한 일들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고대 중국에서 공자, 맹자, 그리고 유가들이 한 일을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댓글 (21)

  • 잠잠잠 Lv.1

    25.10.12 · 123.♡.52.177

    좋은글 감사합니다 공감되네요
  • FV4030

    FV4030 Lv.1 → 잠잠잠 작성자

    25.10.12 · 1.♡.59.48

    이게 제 억측이길 바랄 뿐입니다. 또 반등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 SuperVillain

    SuperVillain Lv.1

    25.10.12 · 104.♡.68.24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가 현대사회의 근간이지만, 요새는 이성이 남을 해하는 방향으로 활용되면 돈이 벌리는 것 같습니다.

    이성이 온전히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양극화와 사회붕괴가 낳은 혐오로 인해 하루가 무섭게 망가지는게 보입니다.

    단기적으로 해야 할 일은 혐오장사꾼들을 돈으로 조져서 패가망신 시키는 것이고, 중장기적으로 사회공동체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밖에 못하겠습니다.
  • FV4030

    FV4030 Lv.1 → SuperVillain 작성자

    25.10.12 · 1.♡.59.48

    그걸 막스 베버-프랑크푸르트학파-하버마스 등은 도구적 이성과 목적적 이성으로 구별하여 설명하죠. 문제는 현대로 올수록 목적적 이성이 약해진다는 징조가 보인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구요.

    말씀하신대로 사실 그런 작은 실천이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죠. 그게 국가적 차원으로 나온 게 ww2 미국과 영국이었고, 결국 전후 황금기를 열어놓았습니다. 그게 또 가능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몫이겠지만요.
  • 시커먼사각

    시커먼사각 Lv.1

    25.10.12 · 49.♡.218.16

    . 더 커다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불합리한 혐오에 휘둘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취약성이 드러난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혐오가 자제보다 쉽고 즉각적이죠.
  • FV4030

    FV4030 Lv.1 → 시커먼사각 작성자

    25.10.12 · 1.♡.59.48

    말씀대로일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도 고민할 필요가 있지요.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25.10.12 · 219.♡.171.27

    요즘 이성이 악마의 힘이라는게 좀 공감이 가요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죄와 구원 보는중요
  • FV4030

    FV4030 Lv.1 → 매일두유 작성자

    25.10.12 · 1.♡.59.48

    아.. 그 이성을 확신했으니깐 민주주의도, 노예해방도, 인권도 있었던 거긴 해서요. 다만 점점 이성을 확신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는 점에서 서구 근대 문명의 황혼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요.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 FV4030

    25.10.12 · 219.♡.171.27

    칼융에서는 자기의 하위 기능이 이성과 자아인데 자기가 이상, 신 비슷하게 나오거든요 선 과 악도 구별하는 상위 기관으로요. 그래서 따뜻한 마음과 이성이 같이 가지 않으면 이성은 대량학살 파괴 아닌가? 이런 생각들요 ㅎㅎ
  • FV4030

    FV4030 Lv.1 → 매일두유 작성자

    25.10.12 · 1.♡.59.48

    말씀대로 지나친 합리주의는 매정해서, 낭만주의라는 흐름이 나오긴 하죠.

    다만 나치즘과 같은 극우는 아예 이성 자체를 부정하는 흐름이라... 인권이나, 민주주의, 개개인의 평등과 자유와 같은 이성이 추구하는 목적은 무시하고, (총탄의 수량이라든지 기관총 기술이라든지의)도구적 이성만을 이용해서 사람 죽이는 데 앞장 섰으니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일단 이런 부류들의 주장이 극우의 주장이라 좀 배격할 필요는 있습니다.

    사실 데리다도 이성=빛=태양=남성성 이라는 내용으로 합리주의를 까긴 했고, 미쉘 푸코도 근대성 아래 내재된 폭력성을 들어 근대주의를 까긴 했죠. 그런 비판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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