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바리 (172.♡.123.159)
2024년 4월 1일 AM 02:46 · 수정됨(07:46)
4월이 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많은 분들께서 그러하듯이
4.16 참사 때문이지요.
저조차 이러할진데 유족들은 어떨지
감히 상상이 안됩니다.
작년 8월에 동생과 함께
4.16 기억저장소에 다녀왔습니다.
특히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2014년 여름,
우연히 종로의 한 작은 화랑에서 열린
고 박예슬양의 유작전시회에 갔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꿨던 예슬양의 습작과 작품을
전시해둔 추모행사였습니다.
화랑을 나오면서 비치되어있던 노란팔찌를
하나 집어 왼쪽 손목에 차면서
마음 속으로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내가 억울함을 풀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확실히 밝혀지기 전까진
절대로 팔찌를 빼지 않겠다, 잊지 않겠다고요.
기억저장소는 단원고 교실을 당시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곳입니다. 차를 몰고 가면서
혹시나 예슬양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예슬양이
2학년 몇 반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기억저장소에 도착했는데, 하필이면 공사 때문에
앞쪽 절반의 교실만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이 적혀있었습니다.

2학년 1반, 2반… 교실의 책상 위에 놓인 이름표를
하나 하나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3반 교실에서
제가 만나고 싶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9년만에, 일면식도 없던 예슬양의 얼굴을
처음 보고 울음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예쁘고 환한 미소를 가진 학생이더군요.

겨우 진정하고 편지를 남긴 뒤,
교실 뒷편의 게시물을 보다가,
겨우 진정했던 마음이 다시 와장창
무너져버렸습니다.
게시물에는 3반 학생들의 생일이 적혀있었는데,
하필이면 참사당일이 담임선생님의 생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주간 뉴스타파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서 다룬 영상을 보았습니다.
대부분 합리적인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여전히 정부와 해경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재빨리 대피하도록 서두르지 않았는지,
영상을 본 후에도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노란팔찌는 색이 바래고 늘어나서 헐렁해졌지만
10년째 여전히 제 팔목에 채워져있습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올해 저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바뀌지 않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아주 작은 시도 한 가지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저 힘없는 일개 시민에 불과한지라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결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려고 합니다.
약간의 성과라도 낸다면 다시 여러분들께
자랑스레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성과 여부와 상관없이
이 팔찌를 과연 언제쯤 뺄 수 있을지
아직은 자신이 없어서,
다시금 고 예슬양을 비롯한 희생자들과
유족들께 죄송한 마음이 드는
밤입니다,
4월입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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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inalsky
24.04.01 · 172.♡.63.62
마음의 응어리가 안풀려서 더 힘든 듯 합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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