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eSsem (1.♡.143.103)
2025년 10월 18일 PM 07:53 · 수정됨(20:19)
안녕하세요, 가끔씩 댓글만 남기다가 처음으로 글 남겨봅니다.
현재 저는 노무현 시민센터 시민 활동으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내란 이후 지리한 청산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계속 다잡기 위해,
12월 3일 이후 겪은 경험들을 토대로 자전적 소설 쓰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학창 시절 일기와 독후감 외에는) 제대로 된 글을 써 본 적이 없어서,
모임 참여와 함께 이제야 글 쓰는 연습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잘 써지지 않는 부족한 글 솜씨에, 진작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걸 하고 매일 매일 반성합니다..)
지난 월요일 두번째 모임의 주제는 “영화와 드라마 속 인물에게 편지쓰기”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영화 속 일부 에피소드를 토대로,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간장게장에 대한 시)" 속 엄마 꽃게에게 쓰는 편지를 산문시로 적어보았는데요,
조금 전에 뒤늦게 겸손 뉴스 공장 금요일 방송과 정준희의 논 목요일 방송을 보고,
먹먹한 마음에 왠지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내어 글 공유드려 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도,
그리고 아래 글 끝까지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무한한 감사드리며,
따뜻하고 건강한 주말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스며드는 것들 앞에서
꽃게 엄마, 아이들은 잘 자고 있나요?
이해할 수 없는 괴로움과 먹먹함의 시간을 지나 작은 아가 꽃게들은 모두 알에서 깨어났나요?
이제 더 이상 스며드는 것 없는 그 곳에서 유난히 큰 두 집게발을 짤각거리며
아장 아장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나요?
나는 지금 당신이 부럽습니다.
알고 있어요. 세상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는 것도, 당신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것도.
감히 어떻게 당신을 부러워할 수 있을까요.
제가 감히 어떻게 당신과 당신 아이들의 안부를 물을 수 있을까요.
어느 생명체도 이보다 더 잔혹하지는 못할 겁니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제가 있는 이 곳은 지금 가을이랍니다.
요 며칠 동안에는 또 다른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어요.
지난 겨울 부터 봄이 오기까지, 저는 광장에 있었답니다.
이른 저녁을 아이들에게 먹이고 매일 같이 광장에 나가 난폭한 어둠이 우리 가족에게까지
덮쳐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목 놓아 소리치고 거리를 걷고 또 걸었지요.
그 때 마다 저는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어둠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내 아이들에게까지 닿았을 때,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그만 자야 할 시간이라고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저 어둠을 어쩔 도리 없는 숙명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둠이 아이들의 맑은 눈 속으로 스며들 때 나는 어찌해야 할까.
물음에 끝내 답을 찾지 못한 채, 어둠이 기적적으로 멈추었습니다.
간신히 쌓아올린 모래주머니가 밀려드는 홍수를 잠시 멈춰 세우듯,
그렇게 아주 잠시 지금 어둠은 멈춰 서있습니다.
이미 스며든 어둠들이 그대로 남은 채로,
금방이라도 저 조악한 모래 방파제를 넘어올 것처럼 넘실거리면서,
아직 여기까지는 닿지 못한 채로 그렇게 멈춰 있습니다.
긴 연휴의 끝자락에 본 영화에서 저 어둠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둠 앞에 내가 어찌할 수 있을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며,
나는 결코 당신처럼 못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남자는
또 다른 남자에게 수 차례 죄송하다 말하고,
기어코 그를 죽였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 아이의 아빠인 그 사람을.
바로 몇 시간 전,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어린 딸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던
다정한 아빠인 그 사람을.
남자에게도 딸이 있었습니다.
딸은 자폐증이 있었고 첼로 연주 외에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없었으며
그 비싼 레슨비를 내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경쟁자인 또 다른 아빠를 어쩔 수 없이 죽였노라고.
어쩔 수 없이, 어쩔 도리 없이, 내 아이를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니, 사실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지키기 위해서.
내 자식이 사회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게 하기 위해서.
죄송하다면서 또 다른 아빠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기어이 방아쇠를 당기는 그 남자와
다가오는 어둠을 막아보겠다고 몸부림치던 그 겨울,
어린 알들을 보듬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을 당신을 감히 떠올리며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최후의 순간을 두려워하던 또 다른 엄마인 나.
나는 이제 압니다.
당신의 최후는 가슴 아리는 시로 남았지만,
어둠이 세상을 완전히 잠식했을 때 맞이하게 될 나의 최후는
어쩔 수가 없는 블랙 코미디로 남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이제 잘 시간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이들만이라도 살게 해달라고, 울부짖고 몸부림치겠지요.
그리고 저 어둠을 뿌린 자들을 향해 분노와 저주의 말을 퍼부을 겁니다.
사실은 나도 그들 중 하나면서,
어둠을 부른 욕심과 이기심이 내 속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끝끝내 마지막 순간을 거부하고 발버둥 치겠지요.
당신의 등판에 울컥 쏟아지던 간장처럼,
모든 가치가 잿가루처럼 바스라져서 내 등에 쏟아져 내릴 때,
이 작은 행성 위 모든 불빛이 다 꺼지고 어둠만이 남아
기어이 내가 당신을 만나 마주보게 되었을 때,
유난히 큰 두 집게발을 흥겹게 짤각거리며
당신은 나를 비웃을까요.
나는 그런 당신을 보고 마음껏 울 수 있을까요.
혹은 울지 못해 웃게 될까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렇게 되뇌이게 될까요.
2025년 겨울을 향해가는 가을의 한복판에서
어둠이 사라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꽃게 엄마에게 또 다른 엄마가
댓글 (4)
-
이이루리라
25.10.18 · 58.♡.94.201
또다른 엄마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
별별의숫자만큼
25.10.18 · 133.♡.242.137
답답해 미치겠는데 이 답답함이 일상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ㅡㅡIUㅡ
25.10.18 · 223.♡.180.166
간만에 읽고싶은 긴글입니다.
지금은 이동해야해서
댓글달고 나중에 찬찬히 볼래요 -
Ddiynbetterlife
25.10.18 · 220.♡.37.28
어둠이 덮칠 때 어둠을 뿌린 자들을 저주하면서, 사실은 나도 방조자였거나 일조해왔으면서.. 당신은 시로 남았지만 나의 마지막 몸부림은 블랙코미디.. ㅠ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