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알 (141.♡.167.159)
2024년 5월 4일 AM 08:12 · 수정됨(11:24)
제가 제 입으로 이런얘기 하기엔 많이 부끄럽긴 하지만,
저는 진짜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겐 성적도 학생들 기대보다 잘 주는 편이고, 평소에 학생들에게 엄청 열심히 성심성의껏 도와주려고 노력하는데요..
그리고 강의보다는 연구를 열심히 해야 할 주니어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테뉴어 심사에 있어서 강의는 그냥 최악만 아니면 아무 영향을 안미치거든요..) 나름 강의하는걸 즐기는 편이라
강의평가도 학과내에서 탑을 유지하고 있고요.. 학생들에게도 좋은 강의로 인기도 있는 편입니다..
근데 진짜 이번학기는 뭔 일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뭔가 의도한대로 안되고 스트레스도 옴팡 받고 있네요..
근데 이번학기에 수업에서 대학원생 두명을 F 를 줬고요..
그 학생들은 팀 프로젝트에서 Generative AI 를 이용해서 치팅을 했습니다. 그러고도 물증이 없을거라는 생각에 아주 당당해요.
근데 보고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아주 말이 안됩니다. Chat GPT 가 환각을 일으켰을 때 나오는 그런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요.
그래서 Generative AI 를 쓴거 자체는 눈을 감아줬지만, 요구했던 내용이 하나도 없는 장문의 보고서라서 0점을 줬습니다.
보통은 대학원 과목에서 C 가 학부에서 F 랑 비슷한건데, 대학원 과목에서 F 이면 심각한 상황입니다.
마음이 너무 안좋아요.
학문적인 엄격함을 무시할 수 없기에 원칙대로 정해진대로 했지만 학생한테 못할짓 하고 죄 지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제 그룹의 대학원생 한명은 해고를 했고요..
얘기하자면 길지만, 제 학생이었던 누군가를 흉볼 맘은 없어서 자세한 얘긴 하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해고한 학생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뽑으려고 했던 학생은 GPA 가 낮다는 이유로 학과에서 입학허가를 거절했고요..
당장 프로젝트 굴러가야 하는데 학생 없이 하고있는 상황입니다.
어제도 18시간 넘게 일하다가 졸음운전 하면서 집에가서 세시간 자고 다시 출근해서 또 출근한지 8시간쯤 지났네요..
오늘도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누군가를 해고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전 처음이에요..
해고하기로 결정했던 그 주에는 결정을 내리고 나서 한 일주일을 잠을 못잤습니다..
대학원에서 잘렸다고 인생 끝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한사람 인생계획을 제대로 망친거 같단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그런데 지난 한해동안 그 학생에게 제 연구비에서 투자한 돈만 해도 학비랑 월급이랑 등등 6-7만불 가량 되는데
지난 일년동안에 성과는 커녕,
앞으로 3-4년을 더 데리고 있어도 논문 하나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라 밑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을수가 없었어요.
제 연구비는 화수분이 아니고,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결과를 내야만 연구비 주는곳에 보고를 할게 생기니까요.
그래서 진짜 어렵게 결정을 내렸는데, 결정을 내리고 몇주가 지나도 맘이 너무 불편하고 힘듭니다.
다사다난한것도 힘들지만, 진짜 바빠서 몸을 혹사시켜가며 일하는데,
거기다가 제가 나쁜역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온갖 죄책감과 연민과 동정같은걸로 머리속이 가득차 있어서
그게 너무 힘들게 느껴지네요..
댓글 (12)
- 청
청라고개
24.05.04 · 115.♡.241.152
-
조조알
→ 청라고개 작성자
24.05.04 · 141.♡.167.159
저도 그렇게 될 날이 얼른 오면 좋겠습니다. 저를 거쳐간 학생 중에서 진짜 한두명이라도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학자가 나올 수 있다면 그게 또 자랑이 되고 뿌듯함이 될것 같아요. 그리고 또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거 같아도 그중 일부는 학계에서 계속 만나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 청
청라고개
→ 조알
24.05.04 · 115.♡.241.152
학계에서 자주 만나는 학생들이야말로 인연이 이어지는 진짜 제자겠지요.
강의도 잘하시고 연구에도 열정적이시니 보기 좋습니다. ^^ - 애
애플라임
24.05.04 · 211.♡.77.213
책임감이 강한만큼 스스로를 혹사시키게 되죠. 건강이 제일 중요합니다. 잘 챙겨가며 하세요.
무엇보다 제가 대학원생이었던 그때를 생각해보니 그 친구들에겐 인생을 망쳤다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볼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잘하셨어요~ -
조조알
→ 애플라임 작성자
24.05.04 · 141.♡.167.159
위로가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해보기도 하다가 또 학생에게 못할짓 해놓고 저 스스로 자기합리화 하는 생각인거 같다고 느껴져서 맘이 자꾸 왔다갔다 하게 되네요.. -
BBcoder™
24.05.04 · 221.♡.162.27
PI에게 중요한 것은 열의가 있고 잘하는 학생들을 제대로 키워주는 것입니다.
분위기 흐리는 친구들 솎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한명에게 미안한거보다 전체 랩원들 잘 이끄는게 더 우선순위가 되셔야 합니다.
괴롭지만 피하면 안되는 일이니 잘하셨습니다.
[https://s3.damoang.net/data/editor/2405/comment_3717374491_MQpAVcw1_377a1f8ed1421166cf70520c082eb64a02cddbed.jpeg] -
조조알
→ Bcoder™ 작성자
24.05.04 · 141.♡.167.159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하는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는 생각하는데, 그 여파가 너무 힘들게 느껴지네요. 제가 책임져야 할 다른 학생들도 있다는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BBLUEnLIVE
24.05.04 · 124.♡.137.94
그 학생의 인생을 망친 건 선생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 학생을 놔두면 당장은 마음이 편하실 수 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더 좋지 않다고 봐요.
고생하셨습니다. 잘 하신 선택이라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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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알
→ BLUEnLIVE 작성자
24.05.04 · 141.♡.167.159
감사합니다. 이미 결정한거 되돌린다고 되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이번 일이 그 학생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서 다음 포지션에서는 좀더 열심과 성의를 다해 임하기를 바래봅니다. -
LLife2Buff
24.05.04 · 136.♡.35.55
사람 관계가 참 어렵죠.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니 너무 무리는 마셨으면 합니다. 더욱이 타국에 계시니.
이 글 보고 나니 미국에 계신 지도교수님이 갑자기 보고 싶네요. 저한텐 가족 같은 분이라. :)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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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다른 학생들을 잘 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몇몇 학생만이라도 인성을 겸비한 우수 학자로 성장하게 해도 큰 기쁨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