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번역
mongolemongole

Lv.1 mongolemongole (61.♡.217.153)

2025년 10월 24일 PM 05:37 · 수정됨(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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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외교관>을 보고 있었습니다. 시즌3 에피소드4. 케이트는 런던 대사와 부통령 영부인, 세컨드 레이디를 동시에 하느라 바쁩니다. 부통령 남편 놈은 전화 연결이 안 되서 짜증납니다. 심플한 드레스 하나 가져오랬더니 블링블링하고 타이트한 드레스를 입어야 했습니다. 어찌나 타이트한지 아무리 용을 써도 지퍼에 손이 닿지 않아요. 그래서 안 그래도 자고 싶었던 데니슨을 꼬십니다. 게다가 칵테일 파티는 데니슨 집에서 합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이렇게 말합니다.

"X스하자구요"

아니, 진짜 그렇게 말한다고? 케이트는 원래 짜증나면 섹X하는 스타일이긴 합니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은 남편 핼이라도 하루가 힘들고 짜증나면 엉겨붙습니다. 아니 그냥 올라탑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프로포지션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건 '제안' 아닌가. 사전을 찾아봅니다. 물론 '제안'이라는 뜻이 있긴 합니다.

propositon (verb): to ask someone who you are not in a relationship with if they would like to have sex with you

당신과 연인 관계가 아닌 사람에게 성관계를 하고 싶은지 묻다

의미는 맞으니 오역은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튀는 대사였어요. 'X스'라는 단어를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섹X'라고 번역했으니까 톤이 안 맞습니다. 번역이 이래서 힘든겁니다. 잘 해도, 못 해도, (저같은) 사람들은 만족을 모르죠.


<체어 컴퍼니>를 다시 봤습니다. 보다가 자서 다시 봤습니다. 리뷰를 읽은 탓인지 좀 더 집중됐어요. 주인공 론은 회사 프로젝트 설명회에서 (스포일러) 문제로 망신을 당합니다. 이후로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게 됩니다. 그런데 한 직원이 계속 비누방울을 불어댑니다. 그만 좀 하라고 큰 소리를 치니 사무실이 싸해집니다. 그렇게 말할 때 퍼플렉시티 인공지능도 대강 번역한 표현이 있는데요. '헛짓거리 놀이터(grab-ass parlor)'라고 소리칩니다. 다시 보니 똑똑히 들렸어요. 그런데 쿠팡플레이 번역은 '추근대지 마라' 정도로 애둘러서 씁니다. 의미는 맞으니 오역은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점잖게 번역했습니다.


<외교관>에서 케이트의 유혹은 더 노골적으로 번역하고, <체어 컴퍼니>의 저속한 말은 톤다운시킵니다. 번역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저같이 할 일 없는 사람때문에요.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간 번역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를 들면서요.

He is a Vietnamese food specialist who insists on using only fresh coriander".라는 문장을 "그는 오직 신선한 고수만 써야 한다고 고집하는 베트남 음식 전문가이다."라고 A.I.는 번역하겠지만, 베테랑 번역자는 "그는 오직 신선한 고수만 고수하는 베트남 음식 고수다"라고 재치있게 번역하시겠죠.

재치는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글에는 말장난이 없어요. 고수를 이용한 말장난은 번역에만 있습니다. 번역하면서 억지로 재치를 추가한겁니다. 원하지도 않은 고수를 쌀국수 위에 듬뿍 얹은 것 처럼요. 그런데 엊그제 인공지능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별 문장도 아닌데 혼자 재치를 추가했습니다. 넌 사람도 아닌데, 굳이 왜? 다시 <체어 컴퍼니> 리뷰 첫 문장입니다. 고수가 또 나옵니다. 그래서 기억났어요.

"팀 로빈슨은 코미디계의 고수라기보다 고수 같은 존재, 즉 향이 강한 고수잎 같은 인물이다."

원문은 별 문장도 아닙니다. "팀 로빈슨은 코미디계의 고수 같다(Tim Robinson is the comedic equivalent of cilantro)". 그런데 왜 저렇게 재치를 부렸을까요. 아마 콜론으로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서 고수 비유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니 고수 말장난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인공지능도 재치있는 번역을 합니다. 인공지능도 '초월번역'이 가능합니다. 때로는 엉성하고 인간보다 못하게 보이지만 이런 번역엔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사람이 했더라도요.


이미 출판사에선 인공지능을 이용해 책을 출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은 문학이 아니라 비문학 위주이지만요. 하지만 문학도 곧 인공지능이 담당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에 번역가가 감수하는 식으로 말이죠.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아직 저같은 쓸데없이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번역된 글들을 눈여겨 볼테니까요.

댓글 (2)

  • 공부할까 Lv.1

    25.10.24 · 119.♡.59.106

    개인적으로 일단 AI가 초벌 번역한 책을 선호하는데요.
    그 이유는 아무리 초월 번역 잘하는 전문가가 번역하더라도 모든 내용에 대해서 촌철살인의 번역을....사람이라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지요.
    말씀하신 대로 조만간 모든 번역서가 최고가 아니더라도 AI 덕분에 적절한 수준의 평준화를 이루게 된다면 번역서를 봐야 하는 개인으로서 나름 불평 없이 만족할 듯싶습니다.
    주로 영미 SF를 많이 읽는데 워낙 번역 수준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모든 번역서가 평균적인 수준이라도 맞춰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 mongolemongole

    mongolemongole Lv.1 → 공부할까 작성자

    25.10.24 · 61.♡.217.153

    직업과 취미 때문에 인공지능에서 번역 많이 하는데요 정말 부드럽게 잘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초벌한 거 다듬어주면 금방 끝나요 사이트 안에서 고칠 수도 있으니까 창 하나만 열어놓고 작업해도 되죠 그래서 적어주신 것처럼 '평준화가 되어 평균이 올라가면' 좋겠습니다 요즘 번역체는 더 이상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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