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의 철학 (장문주의)
매일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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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일 AM 11:22 · 수정됨(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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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운명론과 자유의지에 대한 놀란의 걸작



〈테넷〉은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일까? (스포일러 경고: 그렇다!)
2020년 9월 15일 게시 | 에쿠아 하건(Ekua Hagan)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신작 〈테넷〉(Tenet) 은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상당히 지연되었다. 하지만 마침내 미국 극장에서 공개되었고, 나 역시 관람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이 영화는 두뇌를 뒤흔들고 철학적으로도 깊은 작품이다.

현재 내가 집필 중인 『팰그레이브 핸드북: 철학으로서의 대중문화』(Palgrave Handbook: Popular Culture as Philosophy)에 이 영화를 다루는 장이 포함될 예정이며, ‘~와 철학’ 시리즈의 별도 저서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그때까지는 영화의 철학적 주제를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아니, 의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하 스포일러 대량 포함)



영화는 고대의 신비한 문자 도형인 SATOR 스퀘어(SATOR Square) 를 언급하고 활용한다. 이는 전 세계 여러 지역, 심지어 폼페이 유적에서도 발견되는 회문(palindrome) 형태의 문자 사각형이다.

이 사각형에는 하나의 완전한 회문, TENET, 즉 앞뒤가 같은 단어가 있고,
그 외 네 단어(SATOR/ROTAS, OPERA/AREPO)는 서로 반대 순서의 짝을 이룬다.

이 중 ‘TENET’ 은 영화의 제목이 되었고, 다른 단어들은 영화 전반에 등장한다.

  • Sator 는 악당의 이름이며,
  • Rotas 는 그가 운영하는 건설 회사 이름으로, 오슬로 프리포트를 지었다.
  • 영화는 오페라(Opera) 에서 시작하며,
  • Arepo 는 한 예술가의 이름이다.


그러나 영화 그 자체가 하나의 회문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주인공(Protagonist) 이 시간 속을 정방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따라가다가,
영화 중반쯤 과학적 장치(시간 역전 기술) 덕분에 그는 시간의 역방향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후 영화의 사건들을 거꾸로 다시 체험하게 되면서, 관객은 전반부의 사건들을 반대 방향에서 재목격한다.

이 과정에서 놀란은 〈인셉션〉의 중력 왜곡 장면 이후 가장 놀라운 액션 시퀀스 중 하나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장면이다 — 한쪽은 시간의 순방향으로, 다른 한쪽은 역방향으로 움직인다.
영화는 이 싸움을 두 시점에서 각각 보여준다.


이전의 싸움 장면을 다시 볼 때,
주인공의 동료 닐(Neil) 이 상대방의 가스 마스크를 벗겨 그가 ‘역전된 주인공’ 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중에 역전된 주인공이 (역전된) 닐에게 왜 그 사실을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묻자, 닐은 간단히 대답한다.

“What’s happened, happened.”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야.”

그에게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변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첫 번째 철학적 메시지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시간을 역행하기로 결정했을 때의 목적은,
악당 세이터(Sator)‘알고리즘’의 마지막 조각을 손에 넣지 못하게 막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미 세이터가 그것을 얻는 장면을 정방향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를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되돌릴 수 없었다.

오히려 그가 역행하려 한 행동 자체가 세이터가 그 조각을 손에 넣게 만든 원인이 된다.
실패 후 닐이 “경고했잖아.” 라고 말하자, 주인공은 대답한다.

“What’s happened, happened. I get it now.”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야. 이제야 알겠어.”


즉, 영화 〈테넷〉 은 “자유의지는 환상이며, 우리가 선택한다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운명론적 세계관을 영화적 구조 그 자체로 체현한 작품이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시간, 인과, 운명, 자유의지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적 탐구로 들어간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야(What’s happened, happened)”라는 닐의 대사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이다.
〈테넷〉의 세계에서 시간은 선형적(linear) 이 아니라 대칭적(symmetrical) 이다.
즉, 원인과 결과가 구분되지 않으며,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주인공은 처음엔 자신의 의지로 사건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시간 역전을 거듭할수록 깨닫게 된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이미 일어난 사건의 일부라는 것을.
그의 선택은 자유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일어난 결과를 완성시키기 위한 필연적 과정에 불과하다.


이것은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 의 “할아버지 역설(grandfather paradox)”에 대한 유명한 해법을 떠올리게 한다.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돌아가 자기의 존재를 부정할 만한 일을(예: 할아버지를 죽이는 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역설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스는 말한다.
시간이 그런 식의 모순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면,
시간여행은 가능하다고.
즉, 네가 과거로 가서 할아버지를 죽이려 해도, 결국 실패하도록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그건 자유의지가 아니라 필연적 일관성의 작동이다.

〈테넷〉은 바로 이 철학을 영화의 구조 속에 심어 놓았다.
주인공이 과거를 바꾸려 하면 할수록,
그의 행동은 오히려 이미 일어난 사건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가 세이터의 알고리즘을 막으려는 시도는,
결국 세이터가 그것을 얻게 만드는 필수적인 고리로 작용한다.


이때 닐의 대사는 단순한 냉정한 사실 진술이 아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야.”
이 말은 우리가 시간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조차,
우리가 ‘선택하도록 결정된’ 것일 수 있다는 통찰
을 드러낸다.

〈테넷〉의 세계는 운명론적 결정론(fatalistic determinism) 에 의해 지배된다.
하지만 놀란은 그 안에서도 인간의 행동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결과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
신념과 희생, 선택의 태도가 인간의 가치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닐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그는 묻는다.

“넌 이 모든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닐은 미소 지으며 답한다.
“친구, 우리는 이걸 이미 끝냈어.”

이 짧은 대화는 〈테넷〉의 철학적 핵심을 응축한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며,
과거이자 미래이고, 시작이자 종결이다.


결국 〈테넷〉은 묻는다.

“네가 선택한다고 믿는 그 행위가,
정말 너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면 이미 결정된 세계의 일부로서
너는 단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인가?”

놀란은 여기에 단 하나의 해답만을 남긴다.

“What’s happened, happened.”
—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



〈테넷〉은 단순히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냉소적인 운명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정된 세계 안에서도 인간의 선택은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는 역설이다.

주인공은 더 이상 사건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일어난 일의 일부로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받아들인다.
이 수용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깨달음이다.
자신의 선택이 결과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 선택이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닐은 자신이 미래에서 온 사람임을 암시한다.
즉, 그는 이미 죽을 운명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주인공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기꺼이 그 길을 걷는다.
그는 말한다.

“이건 우리의 끝이 아니라, 너의 시작이야.”

그 말 속엔 역설적이게도 희망이 있다.
시간의 방향이 고정되어 있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라는 것.
〈테넷〉의 세계는 닫혀 있지만, 윤리적 의미는 여전히 열려 있다.


이 점에서 놀란은 완전한 결정론과 순수한 자유의지의 중간 어딘가에 선다.
그의 인물들은 결과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행위를 통해 그 결과가 갖는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주인공은 이제 단순한 “행동자”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의미를 자각한 행위자’ 로 성장한다.
그는 더 이상 운명을 거슬러 싸우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올바르게 존재하는 방법을 배운다.


결국 〈테넷〉은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는 시간을 바꿀 수는 없지만,
시간 속에서 누구로 존재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영화의 철학적 결론이다.
자유의지는 환상일지 몰라도,
그 환상을 믿고 살아가는 태도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것이 영화 〈테넷〉 이 전달하는 철학적 메시지 중 하나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달은 일부 사람들은
그 결론을 허무주의적 오해로 끌고 간다.

“어차피 내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내가 뭘 하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러나 이것은 운명론(fatalism) 의 결론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테넷〉의 두 번째 철학적 메시지,
즉 “결정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의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게 된다.









〈테넷〉의 두 번째 철학적 메시지는 바로 “운명론적 세계 속의 윤리” 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완전히 결정된 구조 속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의미 있는 행동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테넷〉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사건을 “바꾸려” 애쓴다.
하지만 그는 점차 깨닫는다.
자신의 역할이 이미 시간 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결국 그는 “세계를 구한다”는 행위 자체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그의 행동은 결과를 바꾸지 못할지라도,
그가 그 행동을 ‘왜’ 하는가
그의 믿음과 의지 ― 는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닐(Neil)의 존재는 상징적이다.
닐은 자신이 이미 죽을 운명임을 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스스로 의미 있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죽음이 이미 정해져 있더라도,
그는 그것을 타인을 위한 희생의 순간으로 만든다.

놀란은 여기서 말한다.

“결정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왜 행동하는가’를 선택할 수 있다.”

결과는 고정되어 있지만,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태도와 의도는 여전히 자유롭다.


이 철학은 일종의 ‘실존적 운명론’(existential fatalism) 이다.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없지만,
그 미래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느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테넷〉의 인물들이 절망 대신 행동을 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즉, 자유의지는 환상일 수 있지만,
그 환상을 믿고 윤리적으로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의미라는 것이다.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의 역할은 그 운명을 올바르게 완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테넷〉의 두 번째 메시지다.

“우리는 운명 속에 갇혀 있지만,
그 안에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

결정된 세계 속에서도,
희생은 여전히 고귀하며,
믿음은 여전히 가치 있고,
선택은 여전히 인간다움을 증명한다.


요약하자면, 〈테넷〉은 단순히
“시간은 순환하고, 인간은 자유롭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싸우는가” 라는 질문이다.

놀란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What’s happened, happened.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제가 죽는다는 것, 최소한 제 의식이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렇다면 죽음 자체가 결정론적 숙명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의 허무주의 속에서 조금 힘을 줘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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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 셀레본 Lv.1

    25.11.02 · 168.♡.114.162

    한국에서 컨택트, 원래 영화 제목은 Arrival, 소설 원제는 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는 여자 주인공의 관점에 진행되니 그런 부분이 좀 덜하지만, 소설 원작도 고찰하신 테넷의 주제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미 미래를 알고(기억하고) 있고, 그 미래가 내가 원하지 않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나는 그 미래를 막으려고 할 것인가, 이미 정해진 미래가 오기 위한 역할을 할 것인가.... 다만 소설은 이걸 좀 더 감정적으로 풀어 나가죠.

    시간에 대한 주제는 과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심오하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 셀레본 작성자

    25.11.02 · 59.♡.175.39

    오 테드창... 추천 감사드려용
  • 순후추

    순후추 Lv.1

    25.11.02 · 223.♡.45.211

    카페인 줄이세염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 순후추 작성자

    25.11.02 · 59.♡.175.39

    카페인 좀 줄여야 합니다 ㅎㅅㅎ
  • 너부리인척하는보노보노 Lv.1

    25.11.02 · 211.♡.227.76

    어차피 죽을 거 살아있는 동안 하고 싶은게 뭔지 생각해봅시당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 너부리인척하는보노보노 작성자

    25.11.02 · 59.♡.175.39

    조희대를 탄핵하고 싶... {emo:damoang-lala-001.webp:150}
  • 너부리인척하는보노보노 Lv.1 → 매일두유

    25.11.02 · 118.♡.73.188

    그 다음은요? 조희대 탄핵 됐는데 다음 대법관 후보가 지귀연 이면요?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 너부리인척하는보노보노 작성자

    25.11.02 · 59.♡.175.39

    메타레벨적 답변으로면 지금 생각으론 운명에 따라서 파도쳐서 갈꺼 같아요! 책읽고, 글쓰고, HTML 코드짜고 집회도 나가고~ {emo:damoang-lala-001.webp:150}
  • 너부리인척하는보노보노 Lv.1 → 매일두유

    25.11.02 · 211.♡.188.159

    그럼 운명 같은 간식이 무엇인지 생각 해 봅시당
  • 매일두유

    매일두유 Lv.1 → 너부리인척하는보노보노 작성자

    25.11.02 · 59.♡.17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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