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 (118.♡.82.229)
2025년 11월 2일 PM 01:47 · 수정됨(23:51)
굳이 다모앙에 올라온 글을 반박하기 위해 적은건 아니고 타이밍상 이렇게 되었네요. 다모앙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Tenet)》은 기술적 완성도와 형식적 실험정신에도 불구하고, 관객과의 정서적 단절로 인해 흥행과 평가 모두에서 뚜렷한 양극화를 보였다. 이는 단순히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감독 자신의 창조적 딜레마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1. 흥행 부진의 근본 원인: 지적 과잉과 서사적 소통의 붕괴
《테넷》의 가장 본질적인 한계는 구조적 복잡성이 서사의 기능을 압도했다는 점이다.
‘인버전’이라는 개념은 놀란의 지적 야심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인물의 감정이나 서사적 필연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했다.
《메멘토》에서는 파편화된 시간 구조가 주인공의 기억 상실을 체험하게 만드는 필연적 장치였으나, 《테넷》에서는 이러한 장치가 감독의 지적 과시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 결과, 영화는 논리적 장관으로는 정교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공허한 체험으로 남는다. 관객은 인버전의 역학을 해석하느라 인물의 동기를 잃고, 서사의 감정선을 놓친다.
2. 놀란의 창조적 딜레마: ‘성공의 덫’과 인식론적 강박
놀란의 세계관은 이제 **‘성공의 덫’**에 갇혀 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탱해 온 복잡성과 거대함을 스스로 해체하지 못한다.
《인터스텔라》에서 물리학적 엄밀성을 추구하던 그는 결국 ‘사랑’과 ‘5차원’이라는 모호한 감정적 비약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감독이 이성과 감성의 균형점을 찾지 못한 채, 통제 불가능한 서사적 모순 속으로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테넷》은 이러한 딜레마의 결정체다. 놀란은 모든 현상을 논리적 구조로 환원하려는 인식론적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집착이 서사적 감수성을 점점 질식시킨다. 결과적으로 그는 ‘시간’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탐구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을 점점 잃어간다.
3. 대중의 태도: 권위와 해석의 시장화
《테넷》을 둘러싼 대중의 반응에는 흥미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이 드러난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거장의 권위는 비판을 억누르는 일종의 신화로 작용했다. 영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관객조차 “이해하지 못한 내가 문제다”라고 체념하며, 비판 대신 해석의 권위를 외부에서 빌려온다.
특히 유튜브나 평론가의 **‘해설 영상’**은 《테넷》의 난해함을 상업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로 만들었다. 이제 관객은 영화를 체험하기보다 해석을 소비하는 행위에 몰입한다. 이 과정에서 《테넷》은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해석의 시장에서 거래되는 개념 상품’**이 된다.
4. 작가적 철학에 대한 존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란의 일관된 철학적 탐구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는 《테넷》을 통해 ‘자유의지와 결정론’이라는 자신의 근본적 화두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이는 단순한 블록버스터 감독이 아닌, 철학적 영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결론]
《테넷》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자신이 만든 천재성의 구조물 안에 갇힌 작품이다.
그는 이제 더 크고 복잡한 세계가 아니라, 더 작은 인간의 서사로 돌아가야 한다.
복잡함을 단순화할 수 있는 용기 — 그것이야말로 그가 아직 보여주지 못한 유일한 혁신이다.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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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ar201
25.11.02 · 222.♡.92.129
언제부턴가 영화 보려면 공부하세요 같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그래서 꺼려져요. 그정도까진 하기싫거든요 -
FF3YNM4N
→ gar201 작성자
25.11.02 · 118.♡.83.133
그러게요 -
Jjoydivison
25.11.02 · 119.♡.207.200
말씀한 3번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은데요…반대의 의미로.
실제 테넷이라는 영화가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수많은 해석 유튜브들이 어렵다는 인상을 심어준게 아닌가 싶어요.
흥행이 안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여파와 이해가 안된다라는 소셜미디어의 과대한 반응 때문이지 않나 싶네요 -
FF3YNM4N
→ joydivison 작성자
25.11.02 · 118.♡.83.133
관객을 이해 시키지 못한 감독탓이죠 ㄷㄷㄷ -
하하늘걷기
25.11.02 · 211.♡.97.42
테넷의 홍보 문구가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였죠.
물론 굳이 이해할 필요 없이 느끼기만 해도 되는 영화는 있습니다.
하지만 테넷은 그런 류의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렇게 홍보한다는 건 영화가 관객을 이해시키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홍보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테넷을 훌륭한 이야기꾼의 실패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거장이고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명 감독입니다. -
FF3YNM4N
→ 하늘걷기 작성자
25.11.02 · 118.♡.83.133
다음작품보면 실력읶는 감독이란게 확실하죠 -
DDeeKay
25.11.02 · 121.♡.187.122
그건 그 영화에만 국한됩니다. 차기작 오펜하이머는 전기영화로서는 엄청난 흥행대박을 터뜨렸거든요.
세기의 록스타이자 전설적인 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머큐리를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가 9.1억 달러였는데,
그 정도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오펜하이머 라는 과학자를 데리고 9.7억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거의 모든 장르예술가들이 순수, 대중 통틀어 나이가 들수록 현학적인 작품을 내는 건
당연한 겁니다. 표현의 목표가 '소통' 에서 '탐구' 로 변하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나는 도대체 더 뭘 말할 수 있는가'의 내면 탐구형으로 바뀝니다. 뭣보다 자기 자신에게 지루해져요.
예술가들은 꾸준한 자기 작품을 만드는데, 습작을 포함해 안주하지 않으려는 작가주의 성향의 예술가들은
결국은 자신의 관습이나 기술적 방식에 진부함을 느끼고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한계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만족시키고 싶어하죠. 남들은 이미 자신의 작품을
충분히 알아줬으니, 내가 그리고 이해하고 싶은 주제가 뭔지 집착하고 그걸 소화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니 현학적일 수 밖에 없죠. 억지로 내 입에 우겨넣은 그 뭔가가 소화되기 전까진 복통에 시달리는 겁니다.
피카소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경우는, 어느 시점 이후 다시 좀 더 단순한 그림이나 주제로 돌아갔습니다.
놀란 역시 자신의 세계를 소화시키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소화시켰죠. 오펜하이머의 예처럼요. -
FF3YNM4N
→ DeeKay 작성자
25.11.02 · 118.♡.83.133
오펜하이머를 보면 대단한 감독이다 싶더군요 제 마지막단에 돌아가야한다를 해버림 ! -
규규슴도치
25.11.02 · 164.♡.222.141
저는 테넷의 영상,음향이 최상급인지라 계속 N차관람했습니다. 특히 배우들의 간지도 일품이고 OST도 계속 듣고 있습니다. 저는 인터스텔라도 그렇고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슬로건에 공감합니다. 인터스텔라의 블랙홀과 테넷의 시간흐름을 100% 이해 하지 못하더라도 영화 자체로 흡입력있고 매력적이니까요. -
야야생곰
→ 규슴도치
25.11.02 · 175.♡.94.82
인터스텔라는 극장에서 볼땐 졸면서 봤는데, 막상 그 뒤로 케이블에서 하는건 한번 보면 눈을 못떼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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