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의 일기를 읽고 새삼 느낀 점
Gesserit

Lv.1 Gesserit (121.♡.34.203)

2025년 11월 5일 PM 01:44 · 수정됨(18:54)

조회 3,961 공감 0

조선시대 인물이 남긴 일기가 제법 되는 데, 그 중에 학술적으로 관심이 높은 것은 국역본이 출간되어 있고 몇몇 인기(?) 있는 것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DB 같은 사이트에 전문이 공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몇 권을, 꼼꼼히는 아니고 대략 어떤 내용인가 읽다 보니 몇 가지 그간 알고 있던 내용과 상치되는 분도 있고 잘 모르던 부분을 인식하게 되는 점도 있더군요. 몇 가지만 적어 보면,


1) 조선시대 사람들은 정말 발 빠르게 돌아다녔다.

흔히 과거시험 보려고 경상도 산골에서 한양까지 가려면 20일, 30일이 걸렸다고 피상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일기의 주인공들은 경상도 북부 지역인 안동, 상주 지역에 살던 사람일 경우에 불과 4일 정도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죠.

경상도 남부 지역인 진주, 부산(동래)에 살던 사람이라도 7~8일 정도면 서울까지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 행군을 생각하면, 부지런히 가면 하루 100~120리(40~50km) 정도는 걸을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죠.


2) 역병이 휘몰아치던 삶을 살았다.

돌림병이라고 하는 역병이 수시로 몰아칩니다. 천연두, 홍역, 콜레라 이런 것들인데, 이게 10여 년이나 몇 년마다 오는 게 아니라 거의 매년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어제는 저 마을, 오늘은 이 마을 하는 식으로 병에 걸린 사람들이 줄줄 나오고, 일기를 쓴 주인공도 원인 모를 병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라서 '어제 누가 죽었다고 한다. 들으니 애석하다' 이런 표현이 정말 수없이 나오네요. 태어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영아사망률을 제외하더라도 20대, 30대 때 이런 역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아서 평균수명이 정말 짧았던 당시 시대상이 실제로 체감됩니다. 환갑 넘기는 경우가 30% 될까 싶을 정도로 쉽지 않았습니다.


3) 적서 차별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일기를 쓴 사람들은 대부분 한문을 쓰던 양반이고 그만큼 재력이나 여유가 있어야 했기에 정통 양반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일기 속에 당연하게도 수많은 서자 출신들이 등장합니다. 일기 주인공의 아버지, 할아버지 등이 첩, 기생 등에게 얻은 자식들이 많았고, 그들은 주인공에게 '서조부(서자 할아버지)', '서고모(서녀 고모)', '서형(서자 형)', '서누이(서녀 동생)' 등으로 불렸는데, 서로 잘 어울려서 살아가더군요.

때가 되면 혼처도 알아봐서 번듯하게 혼례도 시켜 주고, 아버지가 어디 고을에서 사또로 있을 때  그곳 기생에게 얻은 딸도 나이가 차면 수소문해서 데려와 살기도 하며, 서조모나 서고모 제사도 챙기고 참석합니다. 서자 후손이 되는 본인들은 이런저런 차별을 많이 받았겠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열악했던 것 같지는 않았네요.

옛날에도 '사람 사는 사회'였기 때문이겠죠. 형제 사이에서는 적서 차별하며 업신여길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아래로 내려면 서자 할아버지, 서녀 출신 고모, 이모라도 그 윗대의 친조부모, 친부모가 '사랑하던 자식'들었으니까요. 할아버지가 낳은 서자 삼촌을 내가 적자이기 때문에 거들먹거리면서 무시한다? 이게 안 되는 거죠. 그 서자 삼촌도 가정을 꾸려 자식, 손자가 있는 여엇한 한 집안의 가장(어른)이고, 나이순으로 연장자를 우대하던 것이 유교적 분위이기도 했고요.


간만에 업무가 한가해서.. 몇 가지 떠오른 단상을 적어봤네요.

댓글 (41)

  • 위즈덤

    위즈덤 Lv.1

    25.11.05 · 180.♡.164.192

    그 당시에는 할 수 있었던 축지법을 지금은 못하는군요...
  • Gesserit

    Gesserit Lv.1 → 위즈덤 작성자

    25.11.05 · 121.♡.34.203

    단, 본문의 이야기는 비교적 평지가 많고 길이 잘 갖춰져 있던 한반도 남쪽 지역 이야기이고, 평안도나 함경도 지역은 길이 험해서인지 꽤 오래 걸리더균요. 호랑이도 많을테니 더 조심해야 했을테죠.
  • 짱구아빠

    짱구아빠 Lv.1 → Gesserit

    25.11.05 · 220.♡.40.133

    호랑이를 만난 사람의 일기는 없겠죠... 애초에... 호랑이에게 먹힌(?) 사람들은 더 이상 일기를 쓰지 못했을테니....
  • 곡마단곰탱이 Lv.1 → 짱구아빠

    25.11.05 · 211.♡.11.111

    한 분이 남기셨던 대화녹취록이 있습니다. "떡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 숀화이트팤

    숀화이트팤 Lv.1

    25.11.05 · 125.♡.111.106

    트럼프가 저 난리를 쳐도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지금과 같은 태평성대는 없죠 ㅋ
  • Gesserit

    Gesserit Lv.1 → 숀화이트팤 작성자

    25.11.05 · 121.♡.34.203

    코로나는 명함도 몿 내밀 정도의 역병이 거의 매년 몰아치던데, 참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근대 시기라고 하는 것이겠죠.
  • 해방두텁바위

    해방두텁바위 Lv.1

    25.11.05 · 166.♡.5.43

    좀 극단적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적어도 보건, 의료와 관련해서는 현재 한국 사회의 극빈층에 있는 사람이 어쩌면 조선 시대 왕보다도 더 나은 환경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요즘엔 흔하디 흔한 항생제 하나면 상당 부분 치료될 종기 같은 것을 못 잡아서 왕이 세상을 떠나던 시기였으니 일반 백성들 의료 환경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듯 합니다. 거기에 농업생산력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고요.
  • Gesserit

    Gesserit Lv.1 → 해방두텁바위 작성자

    25.11.05 · 121.♡.34.203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일기 주인공이 병문안을 많이 가는데, 주인공이 보기에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며칠 후에 (반드시라도 생각해도 될 정도로) 죽었다는 소식이 도착하더군요. 정말 극히 운이 좋으면 몸의 면역 체계가 승리해서 살아나고요.
  • 박스엔

    박스엔 Lv.1 → 해방두텁바위

    25.11.05 · 210.♡.46.70

    비누와 락스만 잘 활용해도 생활환경 위생은 궁궐보다 높게 유지할 수 있었을테고
    말씀처럼 감염병 같은 것도 병원비 얼마 안 들이고 임금보다 더 높은 효과의 약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제리아스

    제리아스 Lv.1

    25.11.05 · 106.♡.205.81

    홍길동은 작가가 동기를 만들려고 살짝 억지를 첨가한걸수도 있겠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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