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sserit (219.♡.191.66)
2025년 11월 6일 PM 05:51 · 수정됨(20:08)
어제 조선시대 일기를 읽고 느낀 점을 몇 자 적었는데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셨네요. 그 일기 가운데 인상깊었던 부분 하나를 소개해 봅니다.
영조 시대를 살았던 노철(盧𣻂)이라는 인물의 1753년(영조 29년) 11월 19일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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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경오일),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림.
아침에 들으니 거무리(居茂里)의 인척 윤계백(尹季伯)의 집에서 밤에 호환(虎患)을 당했다고 한다.
그 사연을 자세히 들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지난밤에 윤계백 인척은 아이들을 데리고 사랑방에 가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있었고, 부인은 딸과 함께 등불을 밝히고 길쌈(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호랑이가 동쪽 창문을 두들기니 부인이 처음에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호환임을 알아차리고 도끼를 가져와서 동쪽 창문 앞에서 막았다.
그러자 호랑이가 방향을 돌려서 큰 문으로 와서 머리를 문에 부딪치자 문살이 부서지면서 호랑이 머리가 방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집안 장정들이 동쪽 창문의 변고에 전념하느라 호랑이가 큰 문으로 돌입하는 것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부인이 도끼로 호랑이 머리를 한번 때리자 이에 뒤로 물러났다.
부인이 물동이와 놋주발을 호랑이가 들어오는 구멍에 번갈아 던져서 공격하니, 한참 후에 호랑이가 멀리 물러났다.
부인이 호환을 막는 것을 능히 이처럼 했으니 장하고 장하도다. 그렇지만 생각하면 더욱 몸이 떨린다.
이날 아침에 윤씨 인척이 (호환을 당한 후) 갑자기 이사할 생각을 하고서 문동(文洞)에 와서 달수(達壽, 일기를 쓴 노철의 친척) 집의 빈 방을 얻었다.
(중략)
지난 밤에 호랑이가 고남(古南) 마을에서 큰 돼지를 물고 갔는데, 그 흔적을 보니 매우 큰 호랑이였다. 또한 들으니, 어젯밤에 큰 호랑이가 강창촌(江倉村)에 나타나서 그 마을에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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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와 함께 있는 방에 창호지를 바른 문을 깨고 호랑이가 들어오려 하자, 도끼로 호랑이 머리를 내려치고 손에 잡히는 물동이와 놋주발을 던져서 저항했던 그 어머니라는 분은 얼마나 겁이 났을까요. 당시 호랑이는 거의 소나 말처럼 컸다고 하니 말입니다. 모성애가 극한으로 발휘된 결과겠지요.
참 살아가기 힘들던 조선시대였습니다. 이땅의 모든 조상분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살아 계셨기에 후손인 우리들이 지금 존재합니다.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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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피자왕버거
25.11.06 · 59.♡.61.212
으아... 상상만 해도... ㄷㄷㄷ -
GGesserit
→ 피자왕버거 작성자
25.11.06 · 121.♡.34.203
막상 당하면 손발이 얼어 붙어서 아무 것도 못할 듯 한데, 그 어머님이라는 분의 기개와 행동이 정말 대단합니다. 강속구로 물동이와 주발을 던졌을까요. ㅎㅎ -
피피자왕버거
→ Gesserit
25.11.06 · 59.♡.61.212
옆에 있는 딸을 생각하면
아마 죽을 힘을 다해 던지셨을 겁니다! 😭 -
다다마스커
25.11.06 · 220.♡.246.38
[https://s3.damoang.net/data/editor/2511/a191c29.jpg]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ㄷㄷ - S
serious
25.11.06 · 118.♡.74.72
글이 엄청 생생하네요. 호랑이와 전염병이면, 호환 마마 네요. 무서움의 대명사 처럼 쓰였나봅니다. -
일일렁이는그림자
25.11.06 · 175.♡.103.230
방에 도끼가 있었습니다? -
GGesserit
→ 일렁이는그림자 작성자
25.11.06 · 219.♡.191.66
방문 밖에 있었지 않을까 싶네요. 장정(하인들?)이 나무를 하고 온 후에 벽에 기대 두었겠죠. 동쪽 창문쪽에서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자 얼른 도끼를 챙긴 그 어머님의 현명함에 감탄하네요. -
핑핑크연합
25.11.06 · 221.♡.214.31
와아… 놀라며 읽었습니다. 일기가 생생하네요 -
MMoonKnight
25.11.06 · 211.♡.181.76
승병이 살생을 결정 했다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저식을 지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 푸
푸른미르
25.11.06 · 118.♡.3.121
우리나라 마귀,요괴들이 사람들을 직접 해치지 않는 이유죠
호랑이 미만 잡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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