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은 커녕, 어찌 지나온지 모를 터널같은 시절
여름숲1

Lv.1 여름숲1 (58.♡.71.151)

2025년 11월 9일 PM 03:18 · 수정됨(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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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 IMF직격타를 맞은 학번인데요. 

졸업할 때.. 40명 정원에 (복학생 선배들 땜에 졸업정원이야 좀 들쑥날쑥하겠지만) 졸업 후 유학으로 진로를 튼 몇명 제외하곤 단 1명이 취업에 성공했었으니까요. 

나중에 들은 카더라이긴 한데 그 동기 마저도 가족이 밀어넣은 거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실질적 취업율은 0%라고 봐야겠지요.

사기업의 공채는 거의 없었고(공채는 커녕 정리해고의 광풍이 엄청나게 불고 있었고), 대폭 줄었지만 그래도 전형이 살아있었던 공기업에 저도 엄청나게 지원서를 밀어넣었지만 서류 광탈이 대부분이고 시험 볼 기회조차 얻기 힘든 4학년 2학기를 보내고 그냥 사회에 맨몸뚱이로 내동댕이 쳐졌었죠. 

대학 들어갈때만 해도 선배들처럼 그냥 졸업하면 회사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뭐 대안이 없었죠. 그렇다고 집에 있을 수도 없어서 아침이면 점심도시락을 싸들고 집 근처 도서관으로 매일 출근했네요. 하루 쓰는 경비라곤 오전 오후에 마시는 자판기 커피값 300원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도서관 식당에서 팔던 우동국물 50원 , 네 우동본품이 아닌 우동국물이예요. 50원을 내면 디포리 비린내가 풀풀 풍기는 우동국물을 내어줘서 거기에 고춧가루를 풀고 우동먹는 사람들이 넣는 썰어놓은 대파를 눈치껏 추가해서 찬 도시락과 함께 먹을 수 있었죠.  

그러다 우연히 구청에서 모집하는 3/4분기 공공근로사업 사무보조에 지원하게 되어 그나마 밥벌이를 잠시나마 하게되었다고 안도하기에는 웃픈 일이 생깁니다. 저는 사무보조를 지원하였는데 가보니 할매할배들 사이에서 폐지를 줍고 잡초를 뽑으라는 겁니다? 담당 주사에게 어필을 해봤지만 뭐 싫으면 관두든지.. 정도의 반응인지라.. 잠시의 고민도 없이 그냥 수용했습니다. 뭘하든 무위도식보다는 좋은게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동네 길거리에서 정말 폐지를 주웠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시던 어르신들은 그게 아녔어요. 아니 젊은이가 이런 일 하고 있으면 안된다고.. 하루종일 관리직 공무원들에게 엄청 어필을 하셔서 정말 다음날 동사무소에 제 자리가 생기게 됩니다. 그때가 행정망 전산화 후 이러저러한 오류를 많이 잡던 때라 오프라인 서류와 행정망에 등록된 자료의 대사작업이 필요해 그 일을 하게 됐었죠. 3개월짜리 일이지만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했죠. 그때 외웠던 군주특기번호로 술자리가서 한동안 군필여고생놀이도 좀 했었는데 이제 다까먹었네요 ㅋㅋㅋ 

여튼 거기서도 절 잘봤을까요? 3개월 기간이 끝난 후 바로 연결되어 모 공공기관에 사무직(여기 역시 일용직)으로 소개받아 가게 됩니다. 물론 열심히 했죠. 몇개월 만에 계약직 계약을 하게 되고, 부서의 분들이 엄청 잘 챙겨주시고 일은 쉬워도 재미가 있었지만 끝없이 탈출을 시도했죠. 몇개 없는 취업 자리를 다음 년도 졸업생과 경쟁해야 했지만, 지치지 않고 열심히 지원을 했고, 또 번번히 낙방했고 ㅋㅋㅋ 

그러다 또 어떤 시절인연이 저를 인도하여 제 평생직장으로 데려다 줍니다. 나중에 듣자하나 그 공공기관에 있었으면 무기계약직이 되고, 내부의 조금 간소한 절차를 통한 정규직 공무원이 되는 루트를 타는 사람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2년 가까이 그때는 정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같다고 생각하고 지나왔는데 

또 지나고 보니 저처럼 운이 좋았던 사람도 없었던 거 같고요. 

친한 대학동기들이 너무 고생을 하며 아주 늦게 자리를 잡게되는 그 과정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 공통의 아픔을 가지고 있어서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나서 나온 영화 "국가부도의 날"도 차마 볼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 올곧은 성정의 친구들이 가끔은 날카롭게 벼려져 자신과 주변에 날을 세우고, 또 가끔은 무너지기 전 자신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날것 그대로 지켜본 저로서는 저런 영화를 차마 보고 즐길 수 없었거든요. 

꿀빤 학번 꿀빤 40~50대라.. 뭐 그런게 어디있어요?

다 나름의 치열함으로 살아갔죠. 

우리 모두.. 고생 많았어요. 토닥토닥

댓글 (17)

  • 즐거운하루

    즐거운하루 Lv.1

    25.11.09 · 58.♡.71.147

    맞아요

    그 imf를 현장계약직(임시직)으로 정규직2~3명? 3~4명? 짤려나간 일을 도맡아 하면서 버텼는데
    정규직이 되는 자리도 아니라 탈출했지만 전 잘 안풀렸어요

    뭔 꿀을 빨아요.
    빨아본적이 없어서 꿀맛을 모르겠네요
  • 여름숲

    여름숲 Lv.1 → 즐거운하루 작성자

    25.11.09 · 58.♡.71.151

    어느분 말씀마따나 꿀빤 세대가 아닌 꿀빤 계층 일부가 있을 뿐이죠.
    고생 많으셨어요 ㅌㄷㅌㄷ
  • 핑크연합

    핑크연합 Lv.1

    25.11.09 · 221.♡.214.31

    공감합니다.

    “… 그로부터 20년이나 지나서 나온 영화 "국가부도의 날"도 차마 볼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저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무척 좋아하지만… Imf 시절을 흉흉하게 지나온 각 개인의, 가정의 아픔을,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가 너무나 크고 무서웠습니다. 구겨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였습니다.
  • 여름숲

    여름숲 Lv.1 → 핑크연합 작성자

    25.11.09 · 58.♡.71.151

    헙...
    구겨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이 글을 쓰면서 담담하게 썼는데 댓글 보는 순간 눈물이 터져나옵니다
    정말 표현이 적확하시네요.
    저도 구겨지고 또 구겨져도 구져지지 않은척 하고 다니느라 더 경직된 삶을 살았던거 같아요.
  • 고물개 Lv.1

    25.11.09 · 211.♡.151.201

    취직하고 6일근무하면서 집에 두번정도 퇴근했어요
  • 여름숲

    여름숲 Lv.1 → 고물개 작성자

    25.11.09 · 58.♡.71.151

    회사가 어려울수록 일은 더 많아지더라구요.
    고생 많으셨어요. ㅠㅜ
  • F

    fiftystone Lv.1

    25.11.09 · 58.♡.42.21

    끝모를 터널이라 하니 반푼이가 당선되던 날 숨막히는 기분을 느낀 4년이 생각나네요. 이후 멧돼지 당선후엔 충격이 너무커서 무슨 정신으로 보냈는지도 모르겠고요
  • 여름숲

    여름숲 Lv.1 → fiftystone 작성자

    25.11.09 · 58.♡.71.151

    저도 그날 너무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전날 엄마가 간단한 수술을 하셔서 병원에서 밤을 새고 담날 잠깐 가서 투표하고 돌아와 보호자침대에서 개표방송을 보며 팔로 눈을 가리고 눈물을 훔쳤습니다.
    다인실 병실에서 엄마를 혼자 두고 나갈 수도 없고 티비를 끌수도 없던 고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ㅠㅜ
  • 수나리지나리

    수나리지나리 Lv.1

    25.11.09 · 39.♡.232.85

    92학번 또는 93학번 이겠네요.
    제가 92라서 잘압니다.
  • 여름숲

    여름숲 Lv.1 → 수나리지나리 작성자

    25.11.09 · 58.♡.71.151

    제가 조금 더 뒤입니다.
    92면 복학생 남선배님들이 직격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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