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때 일본이 조선&명 기병에 털린 후의 기묘한 전술변화
코미

Lv.1 코미 (104.♡.68.24)

2025년 11월 10일 PM 04:31 · 수정됨(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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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조선과 명의 기병대의 돌격 및 스웜 전술에 대응하기 위해 기병을 양성하기보다 장창병대를 줄이고 조총병대의 비중을 40%가량 대폭 증가시키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언듯 보면 기병을 늘리거나, 장창병을 이용한 대기병 전술을 구사해야 하는데 왜 조총병대를 늘렸을까요?
이유는 3가지입니다.

1. 일본은 기병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무로마치 시대 이후 전국시대가 전개되면서 이전의 사무라이를 중심으로 한 궁기병이 쇠퇴합니다. 그 이유는 말을 기르는 비용도 비싼데다가, 전국시대 당시 일본은 기병 비용도 비싸고 대규모 보병 전술이 발전해서입니다. 그래서 다테 마사무네의 기마철포대 같은 극히 일부 외에는 기병은 거의 없고, 어쩌다 말을 가진 사무라이를 긁어모아 소규모로 기병 역할을 맡일 뿐이었죠.

2. 의외로 조총이 기병에 강하다는 점입니다.

일본군은 조총이 기병을 상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병이 근접하기 전에 사격을 통해 기병의 돌격을 저지할 수 있었고, 다단 사격(三段撃ち) 전술을 활용하여 지속적인 화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일본군이 쓰는 창인 야리는 대기병전에 불리한데다가 대기병 전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조선군과 명군의 스웜 전술에 쉽게 박살나 섬멸당할 위험이 컸죠. 


3. 기병 양성보다 조총병 양성이 쉽다는 점입니다.

기병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군마를 기르고 기사술에 능한 병사나 무사를 데려와야 하는데, 전국시대 내내 기병전술이 쇠퇴한 일본 입장에서는 이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일본은 산악지대가 많아서 다케다 신겐이나 다테 마사무네 등 극일부의 다이묘를 빼면 기병을 대량 운용조차 못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조총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병사들에게 쥐어준 후 마방책이나 창병, 다케타바(대나무 묶음) 같은 것으로 기병을 저지한 후 화망을 펼치는 게 나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전술은 일본군이 벽제관 전투나 탄금대 전투 등 미리 잘 준비하고 기병 대책을 마련한 후의 대회전애서는 매우 잘 먹혔지만, 문제는 기습이나 기동전에서는 매우 불리했습니다.

더구나 조선군과 명군도 이러한 일본의 전술을 잘 알아서 대비를 못하게 기습하거나, 적절한 시기에 기병을 보내 일본군 대열을 박살내거나, 로켓과 화포를 이용한 화력전으로 밀고나갔죠.

그럼에도 이 조총 중심 전술은 나름 효과가 있는지라 나중에 명나라와 조선도 적극 연구한 바 있는데, 문제는 만주족과 청나라의 기병대도 진작에 이런 문제를 알아서 강력한 기병 전술과 홍이포 등의 최신 무기를 동원하는 등의 대응을 해서 사르후 전투와 병자호란에서 많은 피해를 보아야 했죠.

테르시오 전술이나 선형진 같은 좀 더 근대화된 전술이 도입되었다면 아마 이런 기병에 대한 약점은 극복되었을 것이기에 수많은 대체역사 소설가들이 이 시기 동아시아의 왕이나 장군을 주인공으로 삼는다면 반드시 스페인이나 네덜란드, 스웨덴의 대기병 전술을 도입한다고 설정하는 경우가 많죠. 


요약 : 일본의 대기병 보병진과 장창은 약했고, 기병으로 맞대응하자니 말도 기사도 없어 조총을 늘려 대응함.

댓글 (7)

  • 제리아스

    제리아스 Lv.1

    25.11.10 · 106.♡.197.47

    일본은 말한마리가 사람 열명분은 능히 먹었을듯 하니 무서워서 못길렀을거 같습니다 ㄷㄷ
  • 코미

    코미 Lv.1 → 제리아스 작성자

    25.11.10 · 104.♡.68.24

    사실 초기 가마쿠라~남북조시대엔 나름 기병도 양성하고 사무라이는 말 타고 활을 쐈는데 전국시대가 되며 메타가 소수의 사무라이 기병 대신 대규모의 보병간 집단전으로 유행이 바뀌었오요. 기병 한 명이면 10명의 보병을 무장시키니까요.
  • 달짝지근

    달짝지근 Lv.1

    25.11.10 · 49.♡.149.207

    화약 무기가 등장 발전하고 기병이라는 병과는 점진적으로 쇠퇴&사라지게 되죠
    그러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전차로 부활합니다?
  • 코미

    코미 Lv.1 → 달짝지근 작성자

    25.11.10 · 104.♡.68.24

    전 전차보다는 헬리콥터를 타고 강습하는 헬리본 부대가 기병의 후계자 같고 전차는 좀 더 고대의 중기병 내지는 낫전차와 비숫히게 여겨지더군요.
  • gracy2999

    gracy2999 Lv.1

    25.11.10 · 106.♡.11.30

    조총병을 늘린 큰 이유중의 하나는,
    당시 조선 보병 훈련이 안되어서 백병전에 많은 인력이 필요 없었다는데 있겠죠. 조총병은 보병을 붙이면 와해되는데 거기까지 갈 수 있는 보병이 없으니...조총으로 조선 기병만 잡으면 나머지는 자동 와해되어 버리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초기 조선군은 지도부가 조총으로 제거된 후 후퇴하다가 큰 피해를 봤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결국 병종 차이라기 보다는 수백년동안 전국시대에서 전쟁하던 군대 vs 평화롭게 농사짓다 갑자기 끌려온 군대
    의 차이에서 온거라고 보긴 합니다.
  • 푸른미르 Lv.1

    25.11.10 · 118.♡.4.202

    근래에 연구로 다케다 신겐의 기마부대도 짐을 싣고,
    중무장한 장수를 이동시키는 정도 였고
    실제 기마돌격은 없었다는게 정설이죠
    일본 토종마는 작아서 기마돌격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네요
    이동은 말을 타고 이동해서 전투는 말에서 내려서 했다고 하죠
  • kmaster

    kmaster Lv.1

    25.11.10 · 1.♡.134.157

    뭐 테르시오도 초기에는 중기병위협 대비해서 장창병을 늘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총병비중이 계속 늘어났죠 후열 총병이 전열 총병이 사격후 재장전 하는 사이에 앞열로 달려나와 연속으로 사격하면서 전열을 돌파하는 방법도 사용하면서 창병의 기병저지 능력에 대한 필요성은 더 줄어들기도 했고요 기병보다는 적 전열 검병을 상대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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