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 시절, 지원한 대학에 가서 시험 쳤던 분들 있지 않나요?
또비온다

Lv.1 또비온다 (118.♡.201.36)

2025년 11월 13일 PM 01:46 · 수정됨(18:59)

조회 1,467 공감 0

1993년까지 몇년 반짝 하다가 없어진 제도로 알고 있는데 

그때는 눈치작전을 없앤다는 미명하에 , 수험자가 시험 치기 전에 먼저 대학지원을 하고 나중에 시험을 치렀던 시절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대입고사에서 몇점을 받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먼저 대학, 학과를 정해야 하는 이상한 제도( 2지망, 3지망도 없음. 무조건 한번!)


저는 그 때 종로에 있는 모 대학에 생전 처음가서 시험을 봤는데

시험장에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땐 입시한파가 여전했을 때라 대학교 강의실 고사장 한 가운데에 큰 난로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난로 주위에 있는 수험생들이 시험 보기 전에  

"너무 뜨거워서 시험을 볼 수가 없다" 고 항의를 한 거예요. 난로 가까이 가면 얼굴이 막 익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대학 측에서 날씨가 춥다며 난로에 엄청나게 불을 땐 모양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난로는 온도 조절하는게 불가능하대요.  


그래서 감독관들이 난감해 하다가 임시방편으로 

수험생들을 난로 주위에서 멀찍이 떨어지게 책상을 비뚤비뚤 재배치 해서 시험을 치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긴거에요. 


그땐 시험 치는 사람이 많아서 안 그래도 고사장이 좁았는데

그렇게 가운데를 텅 비워 놓으니 옆 책상과의 거리가 거의 10cm~20cm 정도밖에 안 떨어져서

거의 옆사람하고 어깨를 붙이고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가형, 나형 시험지가 달라 보고 쓸 염려는 없었지만


1교시 끝날 때 쯤 되자, 

제 옆에 있던 예쁜 여고생이(저는 남자 학교를 다녀서 그렇게 예쁜 여고생은 처음 봄)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는 겁니다(오징어가 자기 어깨에 촉수를 붙이고 앉아있어서 우는건 아닙니다 ㅜㅠ) 그 여고생이  1교시 국어를 엄청 망친 모양.

그런데 

2교시, 3교시 때도, 끝날 때까지도 계속 훌쩍훌쩍 울면서 중간중간 코를 팽팽 풀면서 문제를 풉니다. 

버스 옆자리 승객마냥 가까이서 어깨를 붙이고 있던 저로서는 정말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야, 좀 그만 울면 안 되냐??"
이럴 수도 없고

"감독관님,  자리 좀 바꿔 주세요!" 

이럴 수도 없고


저 나름대로는 신경쓰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하면서 멘탈 관리에 엄청 노력하면서 시험을 치렀습니다.

몇번은 진짜 신경 쓰여서,  말은 안 했지만 그냥 잠시 노려 보기도 했는데 본체도 안 하더라고요.  


그냥 꾹 참고 시험을 다 치르고 난 뒤에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 그 여고생에게

"야!!! 너 때문에 수학 개 망했잖아!!"

이러고 싶었는데 사실 수학은 늘 망쳐서요 . 헤헤. 


암튼 그러고 나서 한달인가 지나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신입생 O.T에 갔는데 

그 여학생 있는 겁니다. 너무 예쁘게 생겨서 잊혀지지도 않아요. 사복 입고 화장 하니까 더 예쁨. 


'야이 기집애야, 어차피 붙을 거면 도대체 왜 시험날 그렇게 질질 짜면서 남 시험도 못 치게 난리 친거니...'

라고 하고 싶었으나 뭐 둘 다 붙었으면 된 거죠. 


나중에 제가 아르바이트하던 주점에 손님으로 자주 와서, 사장님 몰래 술값도 빼주고, 이름도 알고 말도 트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요. 

제가 물어 봤습니다. 


"너 입시 날 기억 나? 너 1교시부터 울면서 시험 봤지? 그때 니 옆자리에 있던게 나다. 너 무조건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하니까

"기억나지. 그때 너 시험지는 안 보고 시험 보는 내내, 계속 곁눈질 하면서 내 얼굴만 훔쳐 보더라. 너도 그 정신머리로는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아니, 내가 언제... 생사람 잡네

댓글 (48)

  • 온더로드 Lv.1

    25.11.13 · 218.♡.160.70

    흥미진진한데요, 이게 끝인가요?
  • 또비온다

    또비온다 Lv.1 → 온더로드 작성자

    25.11.13 · 118.♡.201.36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온더로드 Lv.1 → 또비온다

    25.11.13 · 218.♡.160.70

    댓글보니 대학로 근처 성모대 이신듯 한데, 비슷한 연배니 대학로 모처 술집에서 마주친 적도 있겠군요 ㅋㅋ. 저는 96년부터 그 일대 술집에서 거의 저녁마다 살았던 ....ㅎㅎ
  • 또비온다

    또비온다 Lv.1 → 온더로드 작성자

    25.11.13 · 118.♡.201.36

    제 주 서식지는
    조선주막, 성대호프, 은행잎둘, 부부식당, 정문옆애기뽀곱창, 곱창골목홍당무,삼성당구장, 대성당구장, 2000당구장... ㅋ
  • 온더로드 Lv.1 → 또비온다

    25.11.13 · 218.♡.160.70

    성대호프, 부부식당, 슈바빙, 캠브리지호프 요런데 많이 갔던 기억이 있네요. 도어스도 자주갔구요 ㅋ
  • 젖소

    젖소 Lv.1 → 온더로드

    25.11.13 · 112.♡.147.178

    '라면 일번지'가 빠졌습니다. 다락방에서 술 마실 때 누나들 엉덩이 밀어 올리느라 힘들었고..술 마시고 꽐라된 선배들은 제가 머물던 하숙집에 단체 합숙을 했었습니다...아참..'불국사'도 있었지요^^;
  • Arch

    Arch Lv.1

    25.11.13 · 121.♡.95.149

    그 이후가 더 궁금해지는데요?
  • 대로대로

    대로대로 Lv.1

    25.11.13 · 222.♡.13.28

    그 고약한 제도 첫 해에 시험 봤더랬죠.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 시험 치는 수험생들은 돈이 수십 깨졌더랬습니다. ㅠㅠ
    게다가 딱 그해 선지원 후시험이라는 초유의 제도였어서 재수생이 어마어마하게 나오는 최악의 해였다지요.

    근데 저도 그 이후가 궁금합니다. 그래서요?
  • 쿠리어

    쿠리어 Lv.1

    25.11.13 · 118.♡.91.197

    그땐 1지망 2지망이 아니였지요.
    전기, 후기 지원이였죠. 전기에 떨어지면 후기 지원 ^^.
    그나저나 이쁜 사랑하셨나요???
  • RanomA

    RanomA Lv.1 → 쿠리어

    25.11.13 · 223.♡.81.21

    2지망으로 간신히 붙은 사람 여기 있습니다. 90%는 1지민끼리 경쟁, 10%는 1지망 떨어진 2지망과 1지망이 함께 경쟁했죠. 저희과에 낙법회라고 법대 떨어진 애가 4명인가 되고, 낙경회라고 경영학과 떨어진 애가 하나 있었죠. 마지막 학력고사다 보니 다들 2지망이라도 다니자였어요. 물론 말씀하신 후기대, 전문대 시험은 따로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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