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조선업의 시작
따따블이

Lv.1 따따블이 (211.♡.206.224)

2025년 11월 20일 PM 12:27 · 수정됨(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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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shorts/RguhOw8Anb8?si=XjBDAHC0_rWzmRpC



박정희 : 외화도 벌고, 여러 산업을 다 키우려면 조선업 하자. 다른 나라는 없어서 못판데더라. 정주영 일 잘 한다며? 쟤한테 맡겨


정주영 : 국가 산업이 필요하긴한데 돈이 많이 드네. 빌려야지


영국은행 : ???? 조선소가 없는데 배 팔아서 돈 갚겠다고?? 누가 사준데? 사준다는 계약서 갖고 와

( 돌려까기하며 거절)


정주영 : 기횐가?


정주영 수행원 : 그리스 선박왕 리바노스가 영국은행이랑 사이 안좋다는데요. 제안하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선박왕 리바노스 : ??? 영국은행이 그런 제안을 했어? (영국은행 이 놈들 혼 좀 내줘야하는데..)


정주영 : 계약서 써주면 내가 배는 원가에 팔음


선박왕 리바노스 : 까짓거 계약서 써줄게 (진짜 돈 빌려주겠어? 영국은행 곤란하게 만들어야지)


영국은행 : ??? 하... 뭐야 이건. 옛다 돈 (되겠어? 리바노스 ㅈ되어봐라)


결국 삼자간 빅엿을 나누다가 모두가 승리한 해피한 스토리네요. ㄷㄷㄷ


아래는 GPT에게 물어본 조선업 선정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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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박정희는 “조선업”을 지시했나?


①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의 핵심 축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국정 전략은 중화학공업이었다.

철강–조선–기계–화학–자동차를 묶어 “수출 중심의 산업클러스터”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


조선업은 철강(포항제철)과 기계·전기·화학 산업이 함께 성장해야 가능


국가 차원에서는 “산업기지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산업



→ 조선업은 단순한 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산업구조의 ‘결정판’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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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빠르게 외화 벌 수 있는 산업’ 필요


1970년대 한국은 외화 부족이 치명적이었다.

조선업은 특성상 계약금 + 중도금 + 인도 시 잔금 형식이라 초기 투자 없이도 외화가 들어오는 구조.


계약만 하면 외화가 한국으로 들어온다


최소한의 인프라로 대형 계약이 가능


일본·유럽 조선소는 이미 풀가동이라 한국 같은 신흥국이 낄 틈이 생김



→ 박정희에게 조선업은 “초고속 외화 공급 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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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일본을 따라잡기 위한 국가적 의지


당시 한국은 일본의 산업구조를 벤치마킹했다.

일본이 전후 부흥의 핵심 산업이 조선업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박정희는 한국도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73년, 일본은 세계 1위 조선국


한국은 아직 산업 기반 취약


“일본의 성공 공식을 한국식으로 구현”이 박정희 경제 전략의 큰 틀이었음



→ 조선업은 “일본을 좇아가는 단계를 뛰어넘는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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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왜 ‘정주영’에게 맡겼나?


박정희는 왜 다른 재벌이 아니라 정주영을 선택했을까?

여기엔 세 가지 결정적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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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주영의 ‘불가능을 실행하는’ 평판


당시 정주영은 이미 다음 같은 성과로 유명했다.


평택~부산 경부고속도로 공사


압도적인 속도로 대형 토목·건설 사업 완성


국내에서 “대형 프로젝트는 현대만이 할 수 있다”는 평가


박정희 정부가 요구하는 속도·완성도·규모를 따라갈 유일한 기업



박정희가 가장 중요하게 본 자질은 실행력이었다.

현대는 말 그대로 죽도록 하면 해내는 회사라고 알려져 있었다.


→ 조선업은 국가적 모험이었고, 그 모험을 책임질 인물로 정주영이 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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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현대의 조직력·건설역량 → 조선소 건설에 직결


조선업은 단순 기술보다 조선소 인프라부터 지어야 한다.


방대한 부지


도크 시설


크레인


부대시설


배후 인프라



현대는 이미 대형 플랜트·토목·건설에서 압도적인 실적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소를 빨리 짓고, 빨리 배를 만들어 수출하라”는 국가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었다.


→ 조선소는 공장이 아니라 ‘국가적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현대의 역량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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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정주영의 대담한 제안 — 영국 조선기술회사에 ‘설득’


유명한 일화지만 매우 핵심적인 포인트다.


정주영은 영국의 J. Slatter & Co.가 조선소 건설 기술을 제공할지 타진하기 위해 도면도 없는 ‘믿음의 시추선’ 계약서를 가져갔다고 한다.


없는 조선소


없는 기술


없는 도면


없는 선박 제작 경험



그런데도 계약을 따왔다.


박정희는 이 대담함을 높이 평가했다.

국가 전략에서 가장 필요한 인물은 계획을 넘어 현실을 ‘뚫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 정주영은 기술보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드는 추진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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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왜 다른 재벌은 아니었나?


삼성


당시 전자·무역 중심.

대규모 건설·산업플랜트 경험이 적었고 risk-taking이 현대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LG(금성)


전자·화학 중심 구조.

대규모 조선소 건설 경험이 없었고 조직문화가 공격적이지 않았음.


대우


대우조선업은 나중에 참여했으며, 박정희 초기 국면에서는 역량이 부족한 단계.


결론: 조선업은 “미친 추진력 + 대형 건설 능력 + 국가적 모험 수행”이 가능한 기업만 할 수 있었고, 그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은 현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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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정리


박정희가 조선업을 지시한 이유


중화학공업 완성도 확보


외화 확보를 위한 수출 전략산업


일본의 산업성장 모델 추종


국가 위상 제고


세계 조선시장의 공급 공백(일본 조선소 포화) 활용



왜 정주영이었는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드는 실행력


경부고속도로 등 대규모 프로젝트 경험


현대 건설의 조직력과 추진력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인프라 건설 역량


정주영 특유의 담대한 성격과 책임감


정주영–박정희 관계의 실제 성격


두 사람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각본 없는 공조”에 가깝다.

여기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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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서로가 서로의 ‘결핍’을 메워줬다


박정희에게 부족한 것:


민간의 실전 경험


현장 감각


속도


리스크를 짊어지고 뛰어드는 기업가 정신



정주영에게 부족한 것:


국가 전략


정책 지원


외화 공급


국제금융권 신뢰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진 결핍을 채워주는 구조로 연결됐다.


박정희는 “산업 전략의 그림”을,

정주영은 “그림을 현실화하는 장인 정신”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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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박정희가 본 정주영의 본질: ‘실패 공포가 없는 사람’


정주영은 경부고속도로, 삼호중공업, 울산공장 등 당시 한국 누구도 감히 “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을 그냥 해냈다.


▶ 박정희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 리스크를 민간이 대신 짊어져 주는” 드문 인물이었다.


한국 조선업은 외교, 기술, 금융, 건설이 총동원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실패하면 국가도, 기업도 파산할 수준의 위험이었다.


정주영만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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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둘 다 ‘속도’를 신뢰했다


두 사람의 판단 구조는 똑같다.


속도 → 선점 → 외화 → 경제력 → 국가 체력 강화


느림 → 실패나 마찬가지



이 속도가 당시 한국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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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한민국 조선업의 초기 투자 구조


“조선소 짓는다”고 하면 멀리서 보면 산업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 단위 인프라 공사다.

초기 구성은 아래와 같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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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도크 건설 (Dry Dock)


조선소의 핵심은 선박을 조립하는 ‘웅덩이’다.


길이 400~500m


폭 60~70m


깊이 10m 이상


콘크리트 수만 톤


배를 띄우기 위한 해수유입장치 필요



이건 건설회사 아니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래서 정부는 자연스럽게 “현대”를 떠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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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골리앗 크레인 설치


조선업의 상징인 초대형 크레인.


높이 80~100m


한 번에 수백 톤을 들어올림


한국 조선 기술의 ‘속도 혁명’의 핵심



정주영은 일본에서 중고 크레인을 들여와 새 걸로 바꿨다고 말하며 영국 금융권을 설득했다.

(실제로는 중고가 아니라 거의 폐기 직전 크레인이었다.)


이런 현실 왜곡 수준의 극단적 낙관성이 현대 조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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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용접·철판 가공 인프라


조선업 기술의 핵심은 용접인데,

초기 한국에는 숙련 용접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현대는 직접 학교를 세워 용접공을 양성했다.


사내 기술자


사내 도장공


사내 배관공


사내 배선공



말 그대로 조선업 인재 생태계를 현대가 스스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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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자재(철판) 공급망


조선은 철판(후판) 산업이 핵심인데,

1973년 당시 포항제철이 막 출발한 단계.


현대 조선은 일본 철강사로부터 철판을 신용으로 사오며 성장했다.

한국 조선업 초기엔 기술뿐 아니라 공급망까지 일본 의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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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금융 구조 — 국가 보증 + 영국 기술회사 신뢰


여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조선업은 계약금이 들어오지만, 도크 짓고 공장 짓고 작업자 양성하려면 돈이 먼저 나간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입은행·제3국 금융권을 통한 지급보증까지 활용해 현대를 지원했다.


정주영은 영국 기술회사(J. Slatter Co.)에 이렇게 말했다.


> “조선소는 이미 거의 완공 단계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모래밭




댓글 (5)

  • 5호라

    5호라 Lv.1

    25.11.20 · 175.♡.154.96

    뭐.. 예능만 msg 치는건 아니져..
    대필 고스트 작가들도.. 구슬 들으면서.. 이렇게 쓰면 재미 없을텐데.. 하고
    각색이 많이 들어갈거 같습니다.
  • 따따블이

    따따블이 Lv.1 → 5호라 작성자

    25.11.20 · 211.♡.206.224

    그쵸. 자서전 대필 작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인으로 만들죠 ㅎㅎ
  • corhydrae

    corhydrae Lv.1

    25.11.20 · 211.♡.245.220

    펜앤경제라는 이름이 수상해서 찾아보니 정규재의 우파 매체 펜앤마이크 소속인 모앙이네요.
    영상은 안 봤지만 정규재의 과거 이력상 어차피 믿을 만한 내용은 아닐 것 같습니다.
  • 따따블이

    따따블이 Lv.1 → corhydrae 작성자

    25.11.20 · 211.♡.206.224

    매체가 좀 문제가 있군요. 이 내용은 정주영 저서전을 통해서 워낙 많이 알려진 내용이긴합니다 ^^;
  • corhydrae

    corhydrae Lv.1 → 따따블이

    25.11.20 · 211.♡.245.220

    정주영의 자서전으로 잘 알려진 내용이긴 하지요. 그런데 자서전이라는 건 대개 자기 업적을 부풀리기 마련이라 검증이 필요한 텍스트죠. 그리고 저들이 사실 확인에 적극적이었을 거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고요. 개인적으로는 저런 내용은 믿지 않고 무시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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