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58.♡.90.32)
2025년 11월 21일 PM 03:53 · 수정됨(11. 30. 03:06)
안녕하세요.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무너져 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도 잘 풀리지 않고, 생활도 무기력해지면서 오랫동안 우울감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주식과 블로그를 통해 정말 오랜만에
도파민처럼 마음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그동안 겪으며 깨달은 생각들을
블로그에 자서전처럼 차근차근 남겨보고 있습니다.
아래 글은 그 자서전의 첫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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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와 진흙으로 지어진 집에서 보낸 어린 날 — 하늘84의 따뜻한 기억
강원도 정선의 작은 흙집에서 시작된 하늘84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온돌의 열기, 벽 틈의 작은 벌들, 그리고 다정했던 산고양이까지—
사라져 버린 그 집의 풍경 속에서 살아 있는 기억을 기록합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은 참 자연에 가까운 형태였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싸리나무를 촘촘히 엮은 뒤 진흙을 발라 두드려 만든 벽.
비가 오면 벽은 부드럽게 숨 쉬듯 젖어 들고, 해가 뜨면 다시 단단히 굳어지는 그런 집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집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집에는 작은 방이 두 개 있었다.
한쪽은 부모님과 내가 함께 뒤엉켜 자던 구들목 안방이었다.
엄마와 껌딱지가 되어 몸을 맞대고 자는 그 시간은 언제나 포근했고
아이였던 나는 그 온기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자리였다.
다른 방에는 어머니가 결혼할 때 들고 온 장농이 놓여 있었다.
그 장농 옆에는 꽤 높이가 있는 서랍장이 있었고
그 위에는 접어 둔 이불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나는 그 서랍장 위에 올라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누가 올라간다고 말리거나 꾸중을 하는 이도 없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곳은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되었다.
그 위에 올라가 누워 있으면
세상과 조금 멀어진 듯한 고요함이 있었고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낮은 천장이었지만
그마저도 내겐 이상한 안도감을 주었다.
어린 나에게 그 장소는 아주 특별한 놀이터였다.
내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정선이라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운 계절이 많았다.
그래서 저녁마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돌을 데웠다.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와 함께 온돌은 천천히 열을 품었고
그 열기는 한밤중 내내 방을 따뜻하게 지켜 주었다.
이 온돌 시스템에는 지금처럼 온도 조절장치라는 것이 없었다.
불을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방의 온도가 달라졌고
가끔은 너무 뜨거워져서 내가 덥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조용히 아궁이로 가서
숯불 위에 물을 부어 온기를 식혀 주었다.
아무 말 없이 물을 붓고 조용히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는 참 좋았다.
방 바닥에는 비닐 장판이 깔려 있었는데
온돌의 열기가 가장 강하게 닿는 구들장 부분은
늘 뜨거움에 검게 타 있었다.
그곳에 누우면 몸살 기운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어른들은 이 뜨끈한 자리 위에
발효가 필요한 재료들을 올려두곤 했다.
된장, 막걸리처럼 온도가 필요한 것들은 이곳에서 익어갔고,
콩나물을 기르기 위해 시루를 올려 콩을 넣고
매일 물을 주며 천으로 덮어두는 모습도 흔했다.
나는 직접 콩나물을 길러 먹었고
달걀은 집에서 키운 닭이 낳아 준 것이었으며
배추, 감자, 무 같은 채소들도 밭에서 바로 가져다 먹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의 식탁은
사람의 손과 흙, 자연의 온기에서 바로 자라난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집 뒤편에는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이 있었다.
하지만 굴뚝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은 아니어서
장작이 잘 타지 않는 날이면
흰 연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눈이 시큰거리고 코끝이 따가웠지만
나는 그 연기를 집이 숨 쉬는 소리처럼 느꼈다.
집 벽 역시 살아 있었다.
여름이면 싸리와 진흙으로 만든 벽의 작은 틈 사이로
작은 벌들이 여러 마리 모여 지냈다.
꿀벌도, 말벌도 아닌
어떤 야생 고독성 벌이었는데
작은 노란색 머리를 하고 있었고
여럿이서 틈을 차지하며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참 귀여운 풍경이었다.
벽 틈마다 작은 노란 머리들이 쪼르르 나란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무섭기보다는
우리 집 벽에도 작은 생명들이 함께 산다는 느낌이 들어
신기하고 정겨웠다.
그러나 우리가 이사를 가면서
그 벌들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고
그 작은 생명들과의 인연도 그렇게 끝났다.
이제는 그 집도 사라져
벌도, 벽도, 아궁이의 냄새도
모두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다.
그 집에서의 기억 중 가장 따뜻한 장면은 산고양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아궁이의 온기를 좋아했던 고양이는
마치 오래된 가족처럼 집을 드나들었다.
아궁이 옆에서 잠들다가 털이 그을린 채로 돌아오곤 했는데
나는 그 고양이를 이불 속에 넣고 쓰다듬어 주며 놀았다.
고양이는 내 손길이 좋았는지
그릉, 그릉—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그러다 머리를 내 쪽으로 가져와 가볍게 부비거나
내 곁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듯
얼굴과 앞발을 조용히 오물거리곤 했다.
그 모습은 어린 나에게 더없이 따뜻하고 정서적인 경험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 고양이를 통해 처음 배웠다.
그 당시 나는 고양이에게 야옹 소리로 말을 걸었고
고양이도 나름의 방식으로 응답했다.
그 서툴고 단순한 교감의 경험은
훗날 내가 아이를 키울 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울음소리만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그 감각의 뿌리가 되었던 것 같다.
그 고양이는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서서히 발길을 줄였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그러다 더는 오지 않았다.
어린 나는 이별의 의미를 잘 모르면서도
마음 한쪽이 허전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내가 처음 겪은 가장 다정한 이별이었다.
그리고 훗날 나는, 그 고양이는 아니지만
또 다른 고양이를 아주 슬픈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려주겠다.
댓글 (2)
- S
someshine
25.11.21 · 61.♡.87.225
-
느느림보
→ someshine 작성자
25.11.30 · 58.♡.90.32
정성스러운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이나 생명의 흐름을 몸으로 경험하기보다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만 보고 자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변화가 때로는 아쉽고, 그래서 더 기록의 가치가 커지는 것 같아요.
'저도 블로그를 쓰면서
언젠가 제 아이가 한 사람의 부모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저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말씀을 해주셔서 더 힘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따뜻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자란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 의견에 너무 동의하거든요.. 쓰신 분의 글도 그런 경험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아주 소중한 경험이죠..
우리 때만 해도 비오면 빗물 받아 엄마가 그 물로 걸레도 빨고 여기 저기 걸쳐진 전깃줄 그런거 보고 자랐거든요. 그런데 아파트로 바뀌면서 모든 배수 그런거 전기 그런거 다 숨어 있잖아요? 삶과 환경 안에서의 생명의 순환 그런걸 볼수가 없어요.
저도 나중에 아이들에게 공유할 맘으로 일상을 일기처럼 블로그에 기록합니다. 사진이 있는 날은 더욱 그렇고요.
중요한 사건이나 그런 것에 대한 제 의견 정도 남기고요.
그냥 저에게도 좋은 것 같고 나중에 아이들이 저를 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멋진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