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V4030 (210.♡.27.130)
2025년 11월 21일 PM 04:19
다 아시다시피 1943년 후반에 미육군항공대와 영국 공군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독일 전역에 폭탄을 뿌려대곤 있었지만... 아래 영상과 같이 미군 폭격기는 뮌스터에서 폭격대 13기 중 1기만 돌아오는 등, 연합군 폭격기의 피해는 장난 아니었죠. 영국공군도 좀 성과를 보나 싶었지만, 독일군의 야간 방공 전술 강화로 많은 피를 보는 중이었습니다.
{video: https://youtu.be/CXFvdvG1JJs?si=isCz3R09ANpeQsYY }
그러나 희망적인 소식은 1943년 말에 폭격대를 충분히 호위할 항속거리를 가진 전투기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P-51B 머스탱이었구요. 얼마 안 있으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치뤄야했기 때문에, 연합군은 독일군 항공전력을 갈아놔야 한다는 생각 하에 1944년 2월 20일~25일, 약 1주일간 논쟁작전으로 독일 항공전력을 타격하기로 합니다.
항공전력을 타격한다는 건, 항공기 생산력을 떨구는 방법이 있겠죠. 이것은 폭격기들의 몫이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기존의 독일 요격전력들을 맞받아쳐서 전투기와 파일럿들의 수를 줄이는 방법이 있겠죠. 이건 P-51 등의 전투기들의 몫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목표한 항공기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했습니다. 공장을 부수긴 했는데, 다른 데 이전해서 더 많이 뽑았거든요. 폭격대의 피해도 매우 컸습니다. 미 폭격기 226대, 영 폭격기 130대 가량이 격추되었으니 말이죠. 그러나, 호위 항공기가 붙었기에, 이전 슈바인푸르트 공습마냥 30퍼센트의 손실이 아닌, 16퍼센트의 손실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손실률은 후술할 독일 전투기 손실과 파일럿 손실로 인해 점점 줄어들게 되죠.

<ww2 독일의 항공기 생산량, 독일은 1944년에 항공기를 최대로 많이 뽑습니다. 절대 다수는 BF-109, FW-190 전투기였구요>
두번째 목표는 독일의 기존 전투기와 파일럿 수를 줄이는 거였죠. 이를 위해 둘리틀 장군(네 둘리틀 특공대의 그 분 맞습니다) 등은 머리를 썼습니다. 이는 폭격기에 붙어 호위하는 게 아니라, 긴 항속거리를 이용하여 앞서 가서 적 전투기 등을 쓸어버리는 거였죠.
이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연합군 전투기가 20대 가량 격추되는 동안, 독일군 전투기들은 260대 가량이 격추되었고, 사망한 독일 파일럿들은 100명이 넘었습니다. 전투기는 공장에서 그나마 쉽게 뽑을 수 있었습니다만, 숙련된 전투기 파일럿들은 그렇지 못했고, 이제 양성될 햇병아리 독일 파일럿들은 손쉬운 표적이 될 운명이었죠. 에곤 마이어 같은 100기를 넘게 격추한 슈퍼 에이스도 대주간 이후에 P-47에 의해 격추될 판이니... 독일의 하늘은 이제 연합군의 것이 되었습니다.
독일군의 그 어떤 것도 맑은 하늘 대낮 아래에서는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거죠. 이런 철저한 공중장악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이 노르망디 작전 후 처절하게 버티지만 서부전선에서 어느 틈엔가 쭉쭉 밀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P-51이 아무리 WW2 최고의 전투기가 아니네 하지만, 이런 항공 장악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줬기 때문에, 지금도 P-51이 2차 세계대전 최강의 전투기로 꼽히는 겁니다. 독일이 이거 잡으려고 Me 262를 뽑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였죠. 또 Me 262 나와도 이미 빼앗긴 하늘을 가져올 수 없었던 거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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