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V4030 (175.♡.215.27)
2025년 11월 23일 AM 11:39 · 수정됨(16:01)
주일에 이 시를 들으며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하..
감사한 죄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을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 아들딸들은
정권 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을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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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일두유
25.11.23 · 59.♡.175.39
가슴아파요 -
FFV4030
→ 매일두유 작성자
25.11.23 · 175.♡.215.27
교회도 저도 이런 죄를 너무 지은터라...회개하고 반성하고 바뀌어야죠.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
감감정노동자
25.11.23 · 116.♡.18.168
용서와 화해로 포장한 침묵과 방관을 잘못 가르친 교회의 죄가 큽니다 -
FFV4030
→ 감정노동자 작성자
25.11.23 · 61.♡.172.161
저부터 죄가 크지요 ㅠㅠ -
좋좋은생각
25.11.23 · 106.♡.137.37
너무 슬프네요..ㅠㅠ 감사함도 잊혀져 가는 세상인데.. -
FFV4030
→ 좋은생각 작성자
25.11.23 · 106.♡.197.73
교과서에 이런 시가 많이 실리면 좋겠습니다.. -
매매일두유
25.11.23 · 140.♡.29.3
이 시는 **가난하고 억압된 시대를 살아온 한 어머니의 ‘죄의식’**을 다룹니다.
하지만 그 죄는 실제 죄가 아니라, 감사할 수 있었던 삶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가능했다는 데서 생긴 마음의 무거움입니다. -
FFV4030
→ 매일두유 작성자
25.11.23 · 106.♡.200.82
법적인 죄는 아니지요. 그런데 선하시고 한없는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이 앞에서 이웃의 비극과 슬픔을 외면하고 나 혼자 잘 살았다고 감사한다는 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아셨다는 거죠. 법만 어기지 않고 나만 살면 돼... 라는 이 시대...한번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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