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80.♡.243.17)
2024년 5월 6일 PM 03:18 · 수정됨(19:11)
그건 프랑스 가톨릭의 특수성에서 기인합니다.
프랑스 가톨릭은 멀리는 샤를마뉴 시기부터, 가까이는 아비뇽 유수때부터 프랑스 왕실과 귀족과 친하고 정치권력과 유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장 아비뇽 유수만 해도 프랑스 가톨릭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자신의 상위기관인 바티칸을 습격하고 교황을 아비뇽에 가둬버리는 걸 도와줄 정도였고, 리슐리외는 가톨릭 추기경이면서도 프랑스의 재상 역할을 우선해서 아예 개신교 편을 들면서 스페인 등 가톨릭 세력을 공격하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도 그 반대급부로 프랑스 가톨릭에 막대한 지원을 했죠. 성당과 토지 수여, 가톨릭 성직자와 왕족과 귀족간의 수평적인 인적교류는 당연이 이루어졌고 이보다 더한 일도 일어납니다. 군대에 군종신부를 배치해 이를 명분으로 막대한 재정지원을 하고, 출생신고부터 사망까지의 행정절차도 유아세례와 종부성사(병자성사)를 명분으로 대행하고 대가를 받고, 각종 교육이나 문화행사도 각 지역의 성당이나 거기서 만든 시설에서 하는 정도였죠.
그리고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은 이러한 프랑스 가톨릭을 명분으로 삼아서 알비파와 카타리파, 위그노 등 거슬리는 세력을 제거한다거나 신성 로마 제국과 스페인 및 이탈리아를 공격하는 걸 정당화하였고, 식민지 확장이나 전쟁 등에 프랑스 가톨릭을 끌여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덤터기를 쓴 사례가 한국에도 있는데, 한국 가톨릭의 박해가 프랑스 가톨릭이 주축이던 도미니크회와 스페인 가톨릭이 주축이던 예수회간의 전례 논쟁이 원인이었거든요.
당연히 이러다보니 앙시앙레짐의 가장 핵심 역할을 담당하던 곳도 프랑스 가톨릭 세력이고, 프랑스 혁명 당시 가장 혁명을 반대하던 세력이 바로 프랑스 가톨릭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강경하게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고 세속주의를 강조하는 라이시테를 내세우게 되죠.
그리고 그렇게 했음에도 왕당파의 본거지로서 왕정복고가 두차례나 일어나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드뤼피스 사건과 같은 참사가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후 파시즘의 대두와 비시 프랑스의 등장 등에도 끼어들게 되죠. 그래서 더더욱 라이시테가 강조되게 되었죠.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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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anomA
24.05.06 · 125.♡.92.52
어쨌거나 정교 분리는 현대에 와서는 매우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
FFV4030
24.05.06 · 119.♡.11.174
프랑스 혁명 3정신마저 결국은 기독교에서 가져온 게 함정. 여전히 프랑스 주류 문화는 가톨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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