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영화 (124.♡.238.30)
2024년 5월 6일 PM 05:46 · 수정됨(20:10)
연휴의 마지막 날을 맞아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보호자>와 <대외비>를 봤습니다.
두 영화 모두 나름대로 (넷플릭스로 보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고 쭉 볼 정도로 기본적인 만듦새는 괜찮았고,
거기에는 좋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흥행이 신통치 않아 예상했지만) 이야기가 헐거웠습니다.
특히, 주인공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행하는 중요한 선택/변화에 대해 영화가 설득할 생각이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 점이 신기했습니다.
---------- 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호자>는 범죄/액션/구출 장르로 보이는데,
이야기의 동력은 10년 만에 출소한 주인공이, 속했던 조직으로부터 빠져나와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하는 선택이 조직과 빚는 갈등입니다.
조직이 왜 굳이 주인공을 제거하려 하는지는 그래 그냥 조직이 그렇지 하고 넘어가겠는데,
범죄자였던 주인공은 왜 범죄 세계를 떠나려 하는지, 10년 전에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이전부터 저질러 온 범죄/악행에 대해 어떤 죄책감과 반성을 했는지, 보여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대략 느껴지는 건 피로하다 하나 인 것 같습니다.
범죄를 씻으려는 캐릭터의 고난은 보여주는데, 이유가 없습니다. 관객은 이런 캐릭터에 공감할 수 없고, 장르라는 가상 세계의 논리로 적당히 눙치면서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외비>는 정치/범죄/스릴러 장르로 보이고,
이야기의 동력은 1992년 총선을 배경으로, 20 여 년 동안 해운대 지역 정가에서 굴러온 주인공이 이제 막 여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려다가, 자신을 키워줬던 부산 정치계 거물로부터 버림받고 사채 깡패와 손잡고 거물과 정치 이권을 두고 벌이는 갈등 입니다. 대외비인 해운대 재개발 계획을 둘러싸고 벌이는 암투 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범죄자나 다름 없는 숨은 정치계 거물이 왜 주인공을 내치려 하는지는 그래 뭐 쓰고 버리는거지 하고 넘어가겠는데,
해운대 산동네에 함께 살고, 동네 주민들의 신망도 받고 있는 '평범한' 정치지망생인 주인공이 어떻게 사채꾼과 손잡고 돈봉투를 뿌리는 선택을 하는지, 상황이 나빠지자 사람을 죽도록 때리고, 결국에는 죽이는 선택을 하는지
그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설득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놈이 그놈이지 하는 논리고,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럽다'고 부장님이나 할 법한 푸념으로 설득하려 합니다.
범죄의 세계로 접어드는 캐릭터의 술책을 보여주는데, (내적) 괴로움이 없습니다. 역시 이런 캐릭터에 공감하기 어렵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권 정치의 주고 받는 암투를 그러려니 하고 보기 됩니다.
두 영화는 각각 액션과 정치를 주요 장르로 내세우고,
공히 평범한 사람과 범죄 세계를 다루려고 했지만, 제대로 다루는데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범죄'를 일상의 지루함을 떠나, 자극적이고 에너지가 큰 이야깃거리로만 취급하고,
범죄가 타인을 해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떻게 인간의 내면을 파괴하고, 주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지
평범한 사람도 어떻게 범죄에 빠져들어 내면이 망가져가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래서 범죄에 대한 시선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범죄를 다루는데, 범죄에 대한 시선은 없고, 어디선가 보고 흉내내는 디테일과 기술로 만들어낸 멋만 있달까요.
(일부) 한국 범죄영화의 이 성찰 없는 게으름이,
투자자 중심으로 재편된 한국 영화계가 캐릭터 보다는 장르와 플롯으로 성공을 담보하려 해서인지,
(일부) 창작자들의 능력 부족으로 인한 것인지
우리 사회가 어떤 범죄에 대해서는 이만큼 무감각해서인지
여러 생각이 드는 두 편의 영화였습니다.
p.s 여담으로 두 영화의 핵심 조연인 김남길, 이성민 두 배우의 연기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이성민 배우는 어찌 보면 뻔한 역할이고, 뻔한 접근처럼 보이는데 굉장히 파워풀했고,
김남길 배우는 특이한 접근으로 특이한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첫 등장에서 목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붕 뜬 듯한 연기 톤이 상투적으로 느껴졌는데 계속 보다 보니 설득이 되더라구요.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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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열린눈
24.05.06 · 223.♡.162.174
게으른걸로 치면 범죄도시 3, 4편도 빼놓을 수 없죠.. -
동동시영화
→ 열린눈 작성자
24.05.06 · 124.♡.238.30
범죄도시 시리즈도 시리즈를 더 확장시키지 않고 부품을 갈아끼듯 반복하는 건 게으르다 할 수 있겠으나,
플롯의 동력과 주인공 캐릭터를 설득하는데는 언제나 성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과 악의 대결로 쉽고 단순하게 액션의 쾌감과 강력한 빌런 그리고 그 반대편의 지극히 남루한 현실 형사를 보여주는 공식인데, 계속 성공하고 있어서 공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빌런 캐릭터의 창의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은데 관객들은 '이번엔 어떻게 하나 보자'하고 연례 행사처럼 보러 가는 것 같습니다. 신기해요. -
바바세린
24.05.06 · 223.♡.46.67
옛날에 도색영화를 만들면 규제를 받으니 교육적인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명시했다쟎아요.
범죄묘사도 그런 거 같습니다. 목적은 질주하는 일탈의 쾌감인데... 대놓고 그러기엔 뻘쭘허니 문제의식이 있는 것처럼 슬그머니 거드는 거죠.
우리도 그렇쟎아요.
그 이상한 거 나오는 사이트 절대 안가려면 일단 주소를 알아놔야한다면서... -
동동시영화
→ 바세린 작성자
24.05.06 · 124.♡.238.30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다만, 두 영화 모두 범죄와 평범함을 플롯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데, 우당탕탕 사건의 전개만 신경쓰느라 이야기의 핵심을 설득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다보니 다른 이야기의 플롯을 비슷하게 가져다 시작해서 문제의식 같은 건 전혀 없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애초에 범죄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떠나서 캐릭터의 변화를 설득할 생각이 없는게 신기했습니다. -
바바세린
→ 동시영화
24.05.06 · 124.♡.201.168
쓰다보니 말길을 못알아듣고 대충 끄적인 거 같은데...
말씀하신, 게으르고 재능없어보이는 플롯이 만연한 거 같기도 합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도 지나버렸는지 빛이 바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애초에 한국적인 서사라는 게 대부분은 양념빨로 승부를 봐왔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히트쳤던 감독들의 후기작들이 줄줄이 엉망인 것만 봐도
어떻게 한두개 소재 얻어걸려서 크게 한탕 친 경우라고 생각할 수 밖에요.
외국비평가들도 한국영화의 플롯 자체엔 보통 박한 평가를 내립니다만,
한국적 현실이 녹아든 괴상하고, 불편하고, 찜찜한 테마와 설정이 세계 보편정서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나봐요.
창작의 단초와 기발함, 그 이상을 넘어서려면 말씀하신 치밀한 플롯이 필요한데
거기서 늘 주춤거리더라구요. 매력적인 훅을 걸었는데 뒷심이 약한 게 아니라...아예 없어요. -
동동시영화
→ 바세린 작성자
24.05.06 · 124.♡.238.30
본문에 잠깐 언급했듯 투자/제작/상영/배급이 일원화되며 과점 체제가 만들어지고, 투자사들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제작자나 감독의 다양성 보다는 산업 논리가 강해져서 이기도 하고,
대 OTT 시대 이후에는 영화에서 시리즈물로 넘어간 감독, 작가들이 많은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신인 감독/작가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는게 가장 중요할텐데, 당장 내년부터 영화관람료 인하(3%)를 핑계로 영화발전기금이 쪼그라들기로 정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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