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18.♡.6.21)
2024년 5월 6일 PM 07:59 · 수정됨(23:32)
주막입니다.
주막이란 게 별거 없는게 집만 있으면 딱히 창업자금이 필요없었습니다.
집 한칸 손님에게 빌려주면 그걸로 끝이거든요.
그라다보니 농민부터 해서 퇴직한 기생이나 궁녀까지 너도나도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숙박비는 국밥과 술을 사먹으면 거기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음식 가격은 지금으로 치면 치킨이나 피자 수준으로 비싸지만요.
그래도 2~5만원 가치로 숙박료+식사 치곤 싼데, 방에 손님을 닭장처럼 쑤셔넣기 때문이죠.
만약 독방을 원하면 추가 요금을 주는 구조였죠.
그러다보니 양반들은 관아나 양반 집에 총해서 머물렀고, 정 그럴 수 없는 경우 주막으로 갔죠.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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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icards
24.05.06 · 218.♡.201.9
그렇게 너도나도 주막업에 뛰어들 정도로 여행자가 많았던 걸까요? -
코코미
→ Picards 작성자
24.05.06 · 118.♡.6.21
저기가 지금으로 치면 호텔겸 술집겸 식당겸 우체국겸 회의실겸 편의점입니다.. -
66미리
→ Picards
24.05.06 · 211.♡.220.186
인천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직선거리로 40km 정도 됩니다. (전라도에서 배타고 인천에서 내려 걸어갔을거라 생각하면요)
인간이 1시간에 잘 걸어야 5km고 하루에 잘 해야 최고 컨디션일 경우 8시간 걸어 겨우 40km이동일테니 인천에서 서울가는 거리만으로도 중간에 반드시 주막이 있어야 했을겁니다.
인천의 대불호텔이 그 엉망진창 평가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었던 이유가 이런 이유겠죠. -
AAppleAde
24.05.06 · 155.♡.121.56
천것 귀한 것 구분 없이 너도나도 옹기종기 직소퍼즐 하듯 누워 자는데 온돌 바닥은 왜 이리 뜨거운지...
뜬눈으로 밤을 새는 날이 더 많았어요. ㅠ_ㅠ) -
PPicards
→ AppleAde
24.05.06 · 218.♡.201.9
경험담이십니까???ㄷㄷㄷㄷ -
AAppleAde
→ Picards
24.05.06 · 155.♡.121.56
에이 설마요.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해방 후 난리통에 있던 곳도 다 사라졌다지요. ㅠ_ㅠ)
그나마 남아있던 나루터 주막도 없어진지 50년은 되었어요... ㅠ_ㅠ) -
LLunaMaria®
→ AppleAde
24.05.06 · 118.♡.27.94
이분 조선시대 후 환싱하심 - 요
요해
24.05.06 · 116.♡.80.44
퇴직기생이나 궁녀들이 현대로 치면 상위 중산층 쯤 되는 자본금이 있던 사람들입죠... 오히려 체면 차려야 해서 각종 부대비용 깨지는, 지방에 농지 없이 녹봉만 받아 관직하는 양반들보다 주머니사정은 더 좋았다 하더군요.
개나 소까진 아니고 현대로 치면 BMW 오너 정도는 되지 않나 싶습니다. -
코코미
→ 요해 작성자
24.05.06 · 118.♡.7.71
가래서 여성들이 가장 크게 출세 가능한 직업이었죠. - 요
요해
→ 코미
24.05.06 · 116.♡.80.44
자격요건도 꽤나 까다로웠습니다. 남편이 있는 집안이면 파락호나 검계 같은 인간들이 봐주질 않아서 보통 드세고 생활력 있는 홀어미나 과부, 말씀하신 것처럼 퇴직 기생이나 궁녀(늦은 나이에 퇴직하고, 혼기를 놓치기 때문에)들만 할 수 있었다고들 하죠. 그래서 '주모'는 있어도 '주부'는 없다는 모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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