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칠이 (172.♡.95.40)
2024년 5월 7일 AM 12:31 · 수정됨(11:48)
*일기장에 쓰던 글이라 존칭이 없는 점 미리 양해 바랍니다.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나의 형 이야기-
형이 죽은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나는 형을 점점 잊어가는듯 하다. 올해는 형의 기일도 그냥 지나가고, 형을 보냈던 그 산에도 가지 못했다.
형을 떠올리면 두가지 장면이 대비가 되며 떠오른다.
먼저 아파했던 마지막 장면이 많이 생각난다.
그래서 형을 기억하는 것은 아프고 마음이 아려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대학 졸업사진 찍을 때 입을 양복이 없는 것을 알고 갓 취직한 형이 첫 월급으로 백화점에서 아주 고급 양복을 사줬던 기억이다.
그때 형은 진짜 멋있었다. 당시 가난한 형편에 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을까 고민까지 했었다. 형도 제대로 된 양복이 없었으니까. 그때 그 양복 값이 형 월급의 절반을 털었던 걸로 기억난다.
20대 중반 한창때의 몸에 맞는 사이즈라 지금은 입을 수도 없이 작아졌지만 우리집 장농에는 여전히 그 양복이 있다.
졸업사진을 찍고 얼마 후 형이 백혈병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큰 병이 걸릴리 없다는 생각에 오진이라 생각하고 더 큰 병원을 찾아갔었다. 하지만 백혈병이 맞았다.
대학 졸업식 날에도 학교를 안가고 형을 간병했던 기억이 난다. 졸업식은 가라는 형의 말도 듣지 않고 병원에 있었다. 형에게 말은 안했지만 학교에 가면 왠지 슬픈표정을 숨길수 없을것 같아 더 가기 싫었다.
밤에는 간병을 하고 낮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잠시 들러 형 병실 물품을 챙겨서
스쿠터를 타고 병원에 가는 것이 내 일상이었다.
10층 암병동. 형의 침상 옆 간이 침대에서 잠드는 것도 익숙해졌다.
내가 갈 때면 형은 병상에 누워서 나를 은근 기다린 듯 동그란 눈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형이 좋아할만한 만화나 드라마를 시디에 구워서 갔었는데 종종 형은 나보다 그것을 더 기다리는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형이 좋아하니 기뻤다.
형은 프리즌브레이크와 원피스를 무척 좋아했다.
어느날은 이어폰 때문에 귀가 아프다고 해서 귀에 살짝 걸면 들을 수 있는 안아픈 헤드폰을 사갔더니 엄청 좋아하던 모습이 생각 난다.
그 헤드폰을 귀에 걸고 살았을 정도다.
같이 그 병원의 작은 옥상 산책코스에서 바람을 쐬러 나갈때면 감기에 걸릴까봐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주렁주렁 링거봉을 끌고 함께 걸었던게 기억난다.
백혈병이었던 형은 면역이 극도로 약해서 병원 밖을 나갈 수 없었는데 그럴때면 병실 복도에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갔다 같이 걸었다녔다.
나는 형이 약기운에 잠들면 10층 암병동에서 내려와 종종 5층 병동을 서성였다.
생명이 탄생하는 5층은 인테리어부터 아기자기했다. (다들 아파서 온거겠지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있어 지나는 아이들을 보고만 있어도 힐링되는듯 했다.
우리는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나타날때까지 병원에서 버티는 중이었다. 그렇게 1년이 다 되도록 기다렸다.
면역력은 갈수록 약해져 병세가 악화되었고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장담하기 힘든 상황였다.
대학을 금방 졸업한 나는 당시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형의 병에 대한 걱정들로 지치고 있었고 우리는 점점 무표정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즈음 기증자가 나타났다.
코디네이터의 밝은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 난다.
조혈모세포 수술을 받고 형이 회복한 후 아주 오랜만에 퇴원하는 날. 형의 무표정함 속에 숨길수 없는 기쁜 감정이 느껴졌다. 날씨는 겨울이라 추운 시점였다.
하지만 퇴원 후 따뜻한 곳에서 몸을 보호해야 했을 중요한 시점에 가난했던 우리 집의 기름 보일러는 너무 구식이었고 우리집의 외풍은 심각했다.
형이 감기에 걸린것이다. 면역력이 약한 형이 감기에 걸리면서 얼굴에 마비증세까지 생겼다. 그 마비 이후 형이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어제까지 말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할수없게 된것이다.
감기로 다시 병원에 입원한 형은 그길로 점점 악화되어갔다. 나중에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았는데 조금만 숨이 차도 힘들어 했다. 화장실조차 갈수 없었던 형의 대소변을 내가 다 받았다.
형이 죽던날이 기억난다.
그날은 날씨가 흐렸다.
간호사들이 형을 배려해서인지 아니면 형의 상태가 심각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6인실에서 텅빈 3인실로 옮겨줬다.
그 병실은 전에 형과 친했던 다른 분이 죽었던 병상이라 조금 꺼렸던 기억이 난다.
그 분도 우리 형과 같은 공학도 였는데 전기차를 연구하는 박사과정 때 백혈병에 걸려서 왔다고 했다. 그분이 죽고 형도 충격이 컸었다.
그래서 그 병실을 지날때 마다 마음에 걸렸다.
형이 죽기 직전, 나는 형의 대변을 받으러 침상 위로 올라갔고 그때 움직이다가 산소 호스가 빠진것이다. 대변통을 씻던 나는 엄마의 다급한 소리에 뒤늦게 뛰어나갔고 그때 호스가 빠진것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호스를 끼우고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눌렀지만 형의 숨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왜 호스를 보지 못했지? 그후로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아갔다. 자지러지는 엄마에게도 왜 옆에 있으면서 호스빠진걸 못봤나고 소리까지 쳤었다.
다 내가 못 본 탓인데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까지 한 것이다.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어미의 가슴에 또 다른 자식이 대못 박는 말까지 한 것 같아 아직도 후회된다.
폐혈증으로 인한 쇼크사. 백혈병으로 2년 가까이 싸웠던 형의 사망원인이다.
형은 마지막에 말도 하지 못하고 숨도 쉬지 못하는 고통속에서 동생에게 대변을 받게하는 미안함까지 가진채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나는 형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보냈다.
그게 그렇게 후회가 된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려고 한다.
형의 흔적들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집안 곳곳에 남겨져 있다. 나도 이제는 엄마에게 형의 물건들을 버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집 욕실에 가면 형이 월급타서 엄마에게 선물한 유통기한이 15년이나 지난 발케어크림이 있다.
큰아들이 첫월급 선물로 샀던 그 제품은 갈라진 엄마의 뒷꿈치를 생각했던 형의 소중한 마음이니까.
엄마는 미술한다고 말안듣는 작은 아들보다 공대간 큰아들을 더 믿고 의지했었다. 나도 그런 형이 있어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온 아들이 서른이 채 되지 못하고 29살에 하늘나라에 갔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
병원에 입원하기 몇 달 전 구매했던 형의 중고차는 집 앞 골목길에 세워져 있었는데 무척 아꼈던 형의 첫 차에 먼지가 쌓이는게 보여서 지날때마다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주차 된 차를 지나가던 차가 긁고 가서 차가 점점 상하는게 보여서 결국 팔기로 결정했다. 파는 것을 형도 허락했던 건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결국 형이 죽고나서 팔았으니 아마도 형과 상의조차 못했던것 같다.
형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래서 일기장에 기록을 남겨본다.이번 어버이날에는 엄마에게 또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에 대한 제 가물가물한 기억을 여기서라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좋은밤 되세요.
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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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ava
24.05.07 · 116.♡.6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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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아온칠이
→ Java 작성자
24.05.07 · 211.♡.125.32
감사합니다. -
홍홍반장
24.05.07 · 218.♡.56.136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ㅜㅜ -
돌돌아온칠이
→ 홍반장 작성자
24.05.07 · 211.♡.125.32
음력 3월 어느날 형의 기일였는데 5월이 된 지금 갑자기 형이 떠올라서 여기라도 올려봅니다. 기억에서 잊혀지면 그땐 진짜 사라질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뻘뻘글젖문가
24.05.07 · 211.♡.195.225
첫 몇문장만 읽었는데도..
제 맘이 너무 아플거 같에서...
차마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ㅠㅠ
추천만 누르고 갈께요~~
좋은 밤 되시길 바랄께요{emo:damoang-emo-006.gif:50} -
돌돌아온칠이
→ 뻘글젖문가 작성자
24.05.07 · 211.♡.125.32
감사합니다^^ - 다
다모앙뉴비
24.05.07 · 39.♡.95.166
저도 아버지 병원 생활하시던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어요.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왔다 갔다하시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던 그 시절 기억이죠. 지나고 나니 아쉬운 순간들과 미안한 기억들만 자꾸 떠오르네요.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라는 것이 진짜 존재해서, 나중에 아프지 않은 모습으로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웃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
돌돌아온칠이
→ 다모앙뉴비 작성자
24.05.07 · 211.♡.125.32
내세가 있으면 건강하게 누군가의 아이로 태어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님께 죄송했던 기억이 올라오네요... -
스스위스쵸코
24.05.07 · 211.♡.120.164
저도 26-7년전에 20대 중반에 사고로 형을 먼저 보내었는데 세월이 약이죠. 이젠 기억만 남았고 아이에게 삼촌에대해 가끔 이야기해줄 뿐이네요.
@swchoco -
돌돌아온칠이
→ 스위스쵸코 작성자
24.05.07 · 211.♡.125.32
시간만큼 강력한 약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언젠간 내 아이에게 삼촌 얘기 해주며 추억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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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