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 (175.♡.147.253)
2025년 12월 7일 PM 07:23 · 수정됨(22:33)
쿠팡플레이로 아이들과 함께 위키드를 보는데, 초반부터 마음속에 작은 걸림돌이 생겼습니다. 평소엔 취미로 글을 쓰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배경을 다 내려놓고 그저 한 명의 관객—그리고 아이 옆에 앉은 어른—으로서 느낀 솔직한 불편함을 적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이라고 하지만, 정작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건 원작의 결을 이어받기보다 정면으로 뒤집는 방향에 더 가까웠습니다. 전복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인 장치죠. 하지만 전복은 기본적으로 ‘익숙함을 깨고 낯섦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에, 그만큼의 개연성과 감정적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번 작품은 그 지점을 조금 가볍게 넘어간 듯 보였습니다.
선악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깊은 재해석이라기보다, 새로움 자체가 목적이 된 선택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동문학 기반의 원작을 생각하면 더 아쉬운 지점이었죠. 옆에서 집중해서 보던 아이가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고, 저 역시 마음이 찌릿했습니다. 이건 좀… 아이랑 보기에 석연찮은데?
그 순간 들었던 감정은 ‘문제적 장면’에 대한 불쾌함이라기보다, 서사가 흔들리는 탓에 아이가 이야기의 기준점을 잃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더군요.
가장 오래 남은 건 글린다의 변화였습니다. 원작에서 밝고 선한 존재였던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는 자기보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물로 나타날 때, 저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아이도 살짝 멈칫했습니다. 캐릭터 재해석은 창작자의 자유지만, 그 자유가 설득력 없이 행사되면 관객은 감정의 근거를 잃습니다. 글린다가 엘파바의 비극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될 때, 제 안에서도 불편함이 올라왔습니다. 아이에게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굳이 이런 방식으로 한 캐릭터를 희생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질문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결국 이 영화의 전복은 용감한 선택이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할 서사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해 공허함을 남겼습니다. 저는 취미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작품을 보는 관객으로서 정서적 완결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위키드의 선택들은 신선한 변주라기보다 다소 무리한 뒤틀기에 가까웠고, 감정의 흐름보다 장치의 의도가 먼저 드러난 점이 특히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가 앞으로 더 나은 변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다음에는 전복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보아도 기꺼이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재해석을 만나길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댓글 (8)
- 나
나옹
25.12.07 · 223.♡.54.27
-
FF3YNM4N
→ 나옹 작성자
25.12.07 · 61.♡.185.51
모르겠네요 착한마녀는 나쁜 사람이고 나쁜마녀는 착한 사람이다? 어른 영화라면 납득 전체 관람가면
글쎄여 이게 파트2도 있다니 착한사람은
착한척이라는건지요 ㅎㅎㅎ 자신담 있게
살자라는 말응 하려면 다른 사람은 나쁜이라고 생각한다고 가르쳐야하나요 - 나
나옹
→ F3YNM4N
25.12.07 · 223.♡.54.27
스포입니다만 글린다는 착한 척하는 글린다가 아닙니다. 파트2를 다 보고 나면 글린다가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파트 2에서의 엘파바도 마냥 선은 아니구요. 글린다는 현실을 사는 사람이고 엘파바는 이상을 쫓는 사람이죠.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서로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친구입니다
저는 글린다를 이재명 대통령같고 엘파바는 유시민작가 같다고 생각했어요. 두분이 친구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위키드의 디파잉 그래비티 처럼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거죠. 이재명은 국민을 위한 도구가 되길 자처했고 글린다도 도구가 되길 마다하지 않습니다. -
FF3YNM4N
→ 나옹 작성자
25.12.07 · 61.♡.185.51
1편 보고 2편은 글쎄다 싶네요 나중에 ott에 풀리면 볼지도요. 유명 뮤지컬 원작이라는데 대충 예상해보면 도로시는 조연급이겠네요 그러면 착한 마녀를괴롭히는 소녀겠네요ㅎㅎ
원작을 비틀려면 그거빆에 없어보이네요
반전의 매력이라도 지켜야 할건 원작에 대한 예의가 필요한거죠
원작 비튼다고 원균과 이순신을 바꿔선 안되죠⠀ - 나
나옹
→ F3YNM4N
25.12.07 · 223.♡.54.27
도로시는 거의 안 나와요.
오즈의 마법사의 적인 위키드가 주인공인 작품이니까요.
착한 마녀를 괴롭히는 소녀 수준으로 너프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원작을 존중하는 의미라고 해야 할까요. 영화는 뮤지칼 위키드를 거의 충실히 따르고 있고 뮤지컬 위키드의 작가는 원작을 무시한 게 아니라 다른 시각에서 본 겁니다. 엘파바의 이름도 원작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원작자인 L. 프랭크 바움 의 앞글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키드는 파트 2까지를 봐야 뮤지컬본의 전체를 보는 것이니까. 파트 1만 보시는 건 완결을 보신게 아니라서 실망하시기엔 이른 것 같아요. 파트2에서의 드라마틱한 성장을 위해서 파트1의 글린다는 단점이 강조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로시를 그렇게 지워버리는 건 심하다는 의견을 가진분도 꽤 있긴 한 것 같은데 뮤지컬 작가는 이야기의 중심을 마법사와 도로시가 아니라 엘파바와 글린다의 이야기로 가져온 겁니다 - 나
나옹
→ F3YNM4N
25.12.07 · 223.♡.54.27
원작의 엄청난 팬이라면 속상하실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저는 위키드의 재해석 쪽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저서 좋았습니다. -
FF3YNM4N
→ 나옹 작성자
25.12.07 · 175.♡.147.253
엄청난 팬은 아닙니다. 다만... 느낌이 그렇다는거죠. 원작자체도 세상을 비판하는 작품인데 말이죠.. -
한한글이름
25.12.07 · 140.♡.29.1
애초에 뮤지컬의 전반부만 영화화한 게 쿠플에 나온 영화입니다 ㅋㅋ
따라서 플롯의 전체를 보신 게 아니라 전반부만 감상하셨고
그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아직 어리고 미숙하죠.
제 최애 뮤지컬이기도 해서 2부인 포굿을 보시거나 뮤지컬을 함께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ㅎㅎ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글린다가 도구로 소비된게 아니냐라는 부분은 위키드 포굿을 보신다면 해소가 되실 거 같아요.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 원작은 소재 정도로 활용하고 거기에 정치와 사회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담았죠. 새로운 작품이라고 봐야하고 제가 보기엔 위키드가 끼친 영향 또한 오즈의 마법사 못지 않아요.
겨울왕국이나 케이팝 데몬헌터스는 위키드에 빚진 부분이 많습니다. 여성의 진지한 자기 성찰과 성장 그리고 연대를 담은 작품이라는 공통점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