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숲1 (58.♡.71.151)
2025년 12월 13일 PM 02:18 · 수정됨(18:55)
고아가 될 때까지 어른이 아니다..
어디선가 이런 얘길 들어도 본거 같은데..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버린 웃자란 어른이입니다.
언제나 부모님의 그늘에서 살다가 온전히 모든 의사결정을 내 판단으로 해야하는 한해였습니다.
물론 간간히 고아 동기 오라방의 조언을 듣긴 했지만요.
그렇게 고아가 되고나니 겨울철 김장온정의 손길이 답지합니다.
처음은 외삼촌
언젠가 여기에 글을 쓰기도 했지만 젊은 시절 아프실때 우리 집에서 간병을 했던 적도 있고 해서 누님 매형 대신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시나보다 감사히 받았죠.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 선배
늘 시댁에서 김장해오더니 올해는 자기가 직접한다고 너 좀 가져다 주마..하더니 정말 맛깔진 김장김치와 김치속까지 챙겨와 제가 했던 보쌈과 아주 찰떡으로 함께 잘 먹고 가셨더랬죠.

또 우연히 만났던 친구부모님이 정말 우리집 인근에 살고 계셔서 거기서 밥얻어먹고 받아온 알타리김치 한통..
그런데 어제는 기대는 했지만 그래도 염치가 없어서 또 기댈 수는 없는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가 초등학교 시절 같은 집에 세들어 살던 옆집 새댁이었던 아줌마는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중반의 정말 애기였는데..
어린시절 그 아줌마한테 참 많이 의지하고 살았었어요. 당시는 엄마아빠가 장사를 하시느라 저희를 알뜰히 돌보기는 힘드셨었는데 그때 제2의 엄마역할을 해주셨어요. 없는 살림에 숫가락 두벌(울 오빠까지. ㅠㅜ)더 놓아 밥을 챙겨주시기도 하고, 빨래도 같이 빨아주시고, 그집 단칸방에 들어가 아저씨 애기 같이 티비도 보고 그랬네요.
몇년을 이웃으로 살다 이사를 가시고 난 뒤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교류했는데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니 생판 모르는 남도 명절이면 굴비다 과일상자다 주고 받는데 내 어린시절 큰 도움을 받은 분께 가만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명절에 조금씩 성의를 표하기 시작했어요. 아줌마는 니가 그렇게 여겨줘서 고맙다면서 울엄마까지 함께 가끔 만나 밥이나 함께 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요.
5년전쯤 엄마가 여기저기 아프시기 시작하니 아줌마는 선언하셨어요.
김장은 내가 해줄테니 신경쓰지 말라고
그리고 매해 배추김치, 알타리김치, 깍두기, 갓김치, 파김치, 동치미까지 구색갖춰 우리집은 물론 오빠집까지 먹을 정도로 김치를 해주셔서 정말 잘 먹었었는데.. 작년엔 허리 시술을 하시고 이젠 힘들어 그것도 못하겠다 하시기도 하고, 더구나 엄마마져 돌아가신 마당에 뭘 주시겠어? 싶던 중이었는데 어제 김치통 들고 우리집 오니라.. 연락이 왔어요.
가보니 허리뿐 아니라 족저근막염이 왔다고 걸음도 불편하신데 무슨 김치를 그리 많이 하셨는지..
너 통은 왜 이리 작은거 들고왔냐며 한통 가득 채우고 비닐팩 뜯어 더 넣어주시고
너 밥에 넣어먹게 완두콩좀 주랴? 완두콩 한봉지
대파있냐? 다듬어 얼려놓은거 있는데 가져가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어라 하아아~~~~안 봉지
잔뜩 싸주시고 또 같이 엄마얘기 한참하며 둘이 엉엉 울다가 집에 왔네요.
생각해보면 이분들은 짧게는 20여년 길게는 제 평생에 걸친 인연으로 엮어진 사람들이네요.
어떻게보면 과거의 우물에만 잠겨 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가 요즘 만나는 인연들은 그런 관계로 가는게 어렵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여튼 연말 따뜻한 온정의 손길로 마음과 김치냉장고가 풍족해진 고아의 변이었습니다 ㅎㅎ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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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oknbeer
25.12.13 · 61.♡.162.10
뜬금 없지만 응답하라 1988이 인기 있었던 이유가 그런거 같아요 남이지만 남이 아니게 된 사람의 인연을 모두가 그리워하게되어서요 숟가락 하나 더 놓는게 뭐 대수냐 라는 말속에 숨어있는 이웃간의 정이요 -
여여름숲
→ booknbeer 작성자
25.12.13 · 58.♡.71.151
남이지만 남이 아니게 된 사람의 인연
맞네요 딱 그래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정을 기반한 아낌과 챙김.
그런 것이 요즘의 시대에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어요, -
Ssamdol
25.12.13 · 220.♡.239.126
고아가 될 때까지 어른이 아니다. 생각이 깊어지는 말이네요. -
여여름숲
→ samdol 작성자
25.12.13 · 58.♡.71.151
저도 어디선가 듣고 인상깊어 기억하고 있는데
이제 당사자가 되니 더 생각이 많아집니다. -
이이루리라
25.12.13 · 211.♡.227.85
참 따뜻하게 잘 살아오셨나 봅니다.
거 여름숲1님 이야기 너무 따뜻합니다^^ -
여여름숲
→ 이루리라 작성자
25.12.13 · 58.♡.71.151
그냥 나이 먹은 사람이라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 살다보니 이런 얘기를 썼나 봅니다 ㅎㅎㅎ -
핑핑크연합
25.12.13 · 63.♡.1.215
ㅠㅠ 뭉클한 글입니다. 따뜻합니다. -
여여름숲
→ 핑크연합 작성자
25.12.13 · 58.♡.71.151
고아에게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주변이 있어 저도 따뜻합니다. - S
sojs
25.12.13 · 125.♡.210.2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은 김장김치를 정말 아껴가며 먹다가 마지막 한포기는 차마 못먹고 냉동실에 아직 들어있습니다.ㅠㅠ
다음 해부터 혼자 하기 엄두가 안나서 양념까지 사서 김장 시늉만 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지네요. 고아가 되고부터 김장을 해봅니다.ㅠㅠ -
여여름숲
→ sojs 작성자
25.12.13 · 58.♡.71.151
역시 고아가 되어야 어른이 됩니다.
저는 받은 김치 아껴먹다가 진짜 어른(김장)은 몇년 후에나 도전해 볼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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