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과 역사적 쟁점 두가지(내용 길어요)
김오우무아

Lv.1 김오우무아 (203.♡.220.25)

2025년 12월 14일 PM 04:38 · 수정됨(12. 2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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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단고기’와 ‘환빠’를 화두로 던진 장면을 보며, 정치·경제뿐 아니라 우리 고대사에도 관심을 두고 계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저희나라 아니고) 상고사에 저 역시 조금은 관심이 있는 터라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이 놀라우면서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기자들도 대통령의 '환단고기'와 '환빠'라는 발언에만 집중을 하는데 그 맥락을 짚어내는 기자들은 보이지 않네요.


우리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저는 두 개의 논쟁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쟁점을,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E. H. Carr)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제시한 관점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카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과거의 어떤 사실이 역사로 선택되고, 어떻게 해석되는가는 결국 역사가가 처한 시대적 조건과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첫째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불신 논란입니다.

둘째는 고조선 멸망 이후 한사군의 위치 비정 문제입니다.


첫 번째 쟁점인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삼국사기』는 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정사로, 삼국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입니다. 다만 기원전과 기원후 초기 기록, 특히 신라 초기 왕계와 연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신뢰성 논란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강단 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이 후대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정리되거나 보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왕의 재위 기간이 지나치게 길게 나타나거나, 국가 형성 초기 단계에 비해 제도와 국가 체제가 과도하게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됩니다. 이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삼국사기』의 기록 가운데 4세기 이후의 내용부터 상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재야 사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비판합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경우 한국 고대사의 상당 부분이 공백으로 남게 되며, 중국 사서를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에 의존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게다가 초기불신론이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의(지금은 폐기된) 근거가 되는게 문제입니다.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이 모두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더라도, 당대의 전승과 인식을 담고 있는 사료로서 일정한 역사적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두번째 쟁점은 한사군의 위치 비정 문제입니다. 한사군 위치 비정은 가장 뜨거운 쟁점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설치되었다고 전해지는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중국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뒤 설치한 네 개의 군현, 즉 낙랑군·현도군·진번군·임둔군과 그 속현을 의미합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낙랑군의 위치를 둘러싸고 학계 안팎에서 오랜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단 사학계의 통설은 한사군, 그중에서도 낙랑군의 중심지가 오늘날 북한의 평양 일대에 설치되었다는 입장입니다. 그 근거로는 평양과 대동강 유역에서 출토된 한나라 계통의 유물과 무덤 양식 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반면 재야 사학자들과 일부 강단 연구자들, 예컨대 윤한택(인하대 고조선연구소) 등은 한사군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 요동 일대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고고학적 유물보다 당시 작성된 문헌 사료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한서』 「지리지」와 『후한서』 「군국지」 등 중국의 고대 사료를 통해 낙랑군의 위치를 요동 지역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상고사』를 집필한 신채호 선생 역시 한사군의 평양 설치설을 강하게 부정하였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한사군이 한반도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인식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관과 맞물려 형성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한사군의 위치 비정 문제는 단순한 지명 논쟁을 넘어, 고대 한국사의 영토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그리고 문헌 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해석할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삼국사기』 초기 기록 논란, 한사군의 위치 비정 문제는 역사학자들이 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입니다. 이 관점들이 일제 강점기 조선사 편수회부터 이병도와 그 제자들이 주도해왔고 여전히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재야사학계는 주류 사학자들의 관점을 사료와 당시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합리적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사군의 위치 비정 문제나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비판은, 고고학 자료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 해야 하며, 중국 사서(검증된)를 참고하여 우리 고대사를 연구해야 합니다. 이를 단지 음모론으로 치부할게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고대사는 사료가 많이 없기에 역사 학자들도 확정된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런 만큼 하나의 학설을 정답으로 고정하기보다는, 재야와 강단을 막론하고 논란이 되는 주제를 사료와 자료를 통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이 두가지 쟁점에 대한 재야사학계의 비판은 우리 고대사의 진실에 더 가까이 갈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봅니다.

댓글 (17)

  • kita

    kita Lv.1

    25.12.14 · 125.♡.203.162

    https://damoang.net/free/5448258

    오전에 한 번 지우시고는 다시 올리시네요?
  • 김오우무아

    김오우무아 Lv.1 → kita 작성자

    25.12.14 · 203.♡.220.25

    내용이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 침묵의미래

    침묵의미래 Lv.1

    25.12.14 · 211.♡.188.94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옹호한다
    이런식으로 펨무위키 사관들은 벌써 프레이밍 했더라고요 이들의 악의를 보아하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일말의 아량도 사라진 것 같습니다 지선때 밟아야할 것 같아요
  • 김오우무아

    김오우무아 Lv.1 → 침묵의미래 작성자

    25.12.14 · 203.♡.220.25

    대통령실 소속 기자들이 계속 '환단고기만'을 물고 늘어지더군요. 기자들도 대통령 발언의 맥락을 모르지 않았을텐데....일부러 그러는 거겠죠.
  • O

    orbit0 Lv.1

    25.12.14 · 121.♡.239.202

    고대사에 더 밝혀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명이나 위치만 해도 다양한 학설이 있더군요
    한국이 남쪽에 고립되어 있다보니 연구하는데 한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분단이 되지 않았디면 고대사 연구가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었을 거라는 이쉬움이 있습니다
  • 김오우무아

    김오우무아 Lv.1 → orbit0 작성자

    25.12.14 · 203.♡.220.25

    맞습니다. 이번 글은 조선 상고사 중 학계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두가지 사항만 다루었습니다. 모두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문제 들입니다.
  • 준석펨코그만봐라

    준석펨코그만봐라 Lv.1

    25.12.14 · 104.♡.68.24

    환단고기를 언급했다 != 환단고기를 믿는다는 다른 거죠, 펨코애들과 이재명 까고 싶은 집단은 이미 기정사실화함.

    웃긴건 그 동영상 안에 이미 함께 연구를 하고 토의를 했다는 것이 나오져. 동북아역사재단에서요. 그런건 애초 볼 생각이 없죠
  • 김오우무아

    김오우무아 Lv.1 → 준석펨코그만봐라 작성자

    25.12.14 · 203.♡.220.25

    동북아역사재단도 동북공정에 맞서자는 설립취지와는 많이 망가져 있죠.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미 마무리 되었고...제발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역할을 맡아야 할텐데요.
  • 아브람 Lv.1

    25.12.14 · 221.♡.220.75

    낙랑군의 평양비정은 이병도가 주도한 식민사학의 메인테마였는데...
    이병도는 조선사편수회 직원으로서 이마니시 류의 제자였습니다.
    당연히 이마니시 류가 이뻐하면서 조선사의 왜곡을 두둔했었지요.
    이병도는 죽을 때 낙랑군의 평양비정을 후회했었다는 신문기사를 지나가며 본것 같습니다.
    이걸 네이버 모 역사카페에서 제가 지적을 하니...
    카페가 들끓어서 저를 욕을 하고 결국 쫓겨난적도 있습니다.
    강단사학자들이 각성하기에는 아직도 갈길이 멉니다...
  • 김오우무아

    김오우무아 Lv.1 → 아브람 작성자

    25.12.14 · 203.♡.220.25

    이병도와 조선사편수회, 그리고 이마니시 류를 알고 계시면 우리나라의 역사에 상당한 관심이 있는 분이신듯 하네요. 이병도가 낙랑군의 평양비정을 후회했다는 말은 처음 듣네요. 저도 주류사학계의 역사관점을 달리하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면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욕먹을 각오로 올리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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