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대에 어준이 형이 있다면, 이전 세대에는 조영래 변호사가 계셨죠. 35주기 글을 보고 퍼와 봅니다.
욕처럼남은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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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5일 AM 08:23 · 수정됨(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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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벗 조영래 변호사 35주기 (1947~1990.12.12.) 그를 기록하다

1947년 3월 26일,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훗날 그의 벗 전태일은 1948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경기고 3학년이던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주도했다. ‘이것이 민족적 민주주의드냐’는 문구도 그가 만들었다. 1천명의 시위대를 이끄는 사진 속 원 안의 학생이 바로 조영래다.

1965년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법대에 입학했다. 손학규 김근태 등과 3선개헌반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경찰에게 학생운동 정보를 누설한 법대 선배 정형근에게 주먹을 날려 정형근은 재학 시절 내내 조영래를 피해다녔다. 정형근은 훗날 악명높은 공안검사, 안기부 요원이 된다.

1970년 전태일 분신 직후 서울대 추도시위를 주도했다. 그는 전태일의 영원한 벗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전태일이 기다리던 “대학생 친구”가 되기로...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재학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돼 1년6월의 옥고를 치렀다. 1973년 만기출소했으나 곧장 민청학련의 배후인물로 수배됐다. 1980년까지 6년간 수배생활을 하며 전태일평전을 집필했다. '전태일평전'은 노동자의 일생을 다룬 우리나라 최초의 평전이다.

1977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구속됐을 때, 여동생 전순옥에게 결혼반지와 목걸이를 쥐어주며 옥바라지에 쓰라고 했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김앤장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한 법률가가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1983년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 개업,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병설했다.

1984년 망원동 수해사건을 접하고 최초의 집단소송을 진행했다. 5년 10개월의 소송에서 국가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1985년 결혼 퇴직 관련 여성 조기정년 사건에서 승소했다. 직장 내 성차별을 깬 여성인권의 수호자도 조영래였다.

1986년 노동운동가 권인숙 씨 성고문사건 변호인단을 이끌었다. “권 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저 유명한 변론 원고는 조영래의 손에 의해 그렇게 탄생했다.

1986년 대한변협 인권보고서 발간의 산파역을 하고 인권변호사들의 상설조직인 정법회를 창립하였다. 1988년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87년 대선 야권후보단일화를 위해 노력하다 좌절했고, 1988년 민주세력 통합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좌절했다.

1990년 미국 컬럼비아대에 유학해 인권법을 공부하다가 폐암 3기 진단을 받고 귀국해 그해 12월12일 43세로 타계했다. 조영래, 그를 일찍 데려간 건 시대라는 암(癌)이었다.

고 조영래 변호사 35주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임 이재명 대통령이 쓴 조영래 변호사와의 인연

연수원 시절 변호사 시보(試補)를 조영래(趙英來) 변호사 사무실로 나갔다. 조영래는 누구인가? 《전태일 평전》을 썼던 그분이 맞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최우수로 나온 수재였지만 인권변호사로서, 민주화운동가로서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불멸의 삶을 살았던 분.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을 자원봉사했다. 변호사 개업을 해야 하는데 사무실 임대료가 없어 고민하던 중이었다. 하루는 변호사님이 부르더니 개업에 쓸 500만원을 빌릴 수 있게 해주셨다. 판검사 임용을 마다하고 갈 길을 가겠다는 스물다섯 살짜리 어린 변호사의 무모한 도전과 용기가 가상했던 모양이다. 뿌듯했다. 전태일 열사를 평전으로 우리 안에 되살린 조영래 변호사님이 나를 믿고 인정해 준 것 같았다.

출처: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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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과실에 책 표지가 안 보이게 꼭 포장을 해 놔야 했던

"어느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


압수도서 였다는..선배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으로 봤던 그 책한권이 노동자와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충분히 기득권으로 살아왔던 나의 생활 자체를 뒤 흔든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게 했죠.


노통 장례식때 부터 검은 넥타이를 메고 살아온 어준이 형처럼, 


전태일 열사의 죽음 뒤 전태일의 친구가 되어 주기로 한 조변이 있었던 ..


댓글 (5)

  • magicdice

    magicdice Lv.1

    25.12.15 · 112.♡.98.202

    디스켓을 복사기로 복사했던 그 정형근...
    조영래 변호사와 이렇게 엮여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요...
  • 히어로즈

    히어로즈 Lv.1

    25.12.15 · 1.♡.236.166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 파이프스코티

    파이프스코티 Lv.1

    25.12.15 · 119.♡.160.160

    늘 안타까운 인물 입니다.
  • 달그림자

    달그림자 Lv.1

    25.12.15 · 210.♡.17.116

    광주사태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 욕처럼남은목숨

    욕처럼남은목숨 Lv.1 → 달그림자 작성자

    25.12.15 · 175.♡.17.194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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