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211.♡.64.83)
2025년 12월 17일 PM 01:13 · 수정됨(14:05)

외국어로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묘한 위화감을 느낍니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고, 문법이 틀려서도 아닙니다.
분명 전달은 했는데, 말하고 나면 어딘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평소보다 무뚝뚝해진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죠.
외국어로 말하는 나는 모국어로 말하는 나와 미묘하게 다릅니다.
이 감각은 착각이 아닙니다.
외국어를 사용하면 실제로 사람은 달라지게 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언어는 감정을 그대로 옮겨 담는 그릇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규정하기 때문이죠.
외국어를 쓰면 감정 표현이 줄어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국어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오는 농담이나 짜증, 미묘한 불만이 외국어에서는 급격히 사라집니다.
표현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표현하는 방식이 아직 몸에 배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외국어 화자는 안전한 표현만 고릅니다.
단정적인 말은 피하고, 강한 감정은 누르고, 최대한 중립적인 어조로 말합니다.
그 결과 평소보다 차분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외국어로 말할 때 오히려 감정이 과장됩니다.
단순한 어휘와 표현으로는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표정이나 억양, 몸짓에 더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크게 웃고, 더 강하게 사과하고, 더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게 됩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정반대의 인상을 주는 이유입니다.
존댓말 체계가 있는 언어와 없는 언어의 차이는 성격 변화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한국어나 일본어처럼 말 속에 관계가 자동으로 새겨지는 언어에서는, 말하는 순간 이미 상대와의 거리와 위계가 정해집니다.
그래서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표현은 조심스러워 집니다.
반면 영어처럼 존댓말 체계가 없는 언어에서는, 최소한 언어 차원에서는 모두가 같은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 결과 평소보다 솔직해지고, 직접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머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모국어에서는 분위기와 맥락을 읽어가며 농담을 던질 수 있지만, 외국어에서는 그 감각이 쉽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담을 아예 하지 않거나, 준비된 유머만 사용하게 됩니다.
사과와 부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국어에서는 말의 강약과 뉘앙스로 자연스럽게 조절하던 것이, 외국어에서는 공식적인 문장으로 바뀌죠.
그 순간 우리는 평소보다 더 딱딱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공손한 사람이 됩니다.
이 모든 변화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언어는 단순한 표현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을 전환하는 스위치라는 점이죠.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규칙, 다른 기대, 다른 관계망 속으로 들어갑니다.
말투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태도와 판단 기준, 감정 조절 방식까지 함께 바뀝니다.
그래서 다중언어 사용자(사용하는 외국어에 대해 유럽언어기준 C1 이상의 실력을 가진 분)는 종종 말합니다.
“이 언어로 말할 때의 내가 따로 있다”고.
이는 언어 실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언어의 규칙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각 언어는 서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고, 우리는 그 요구에 맞춰 다른 얼굴을 꺼내 듭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성격을 연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가지고 있던 성격의 다른 단면을 활성화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어떤 언어에서는 신중한 내가 나오고, 어떤 언어에서는 솔직한 내가 나옵니다.
그 차이는 진짜와 가짜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맞춰 선택된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어로 말할 때 느끼는 이질감은 실패의 신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언어가 요구하는 사회적 역할에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느 순간 그 이질감이 줄어들고, 그 언어로 말하는 나도 자연스러워 지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또 하나의 방식을 몸에 들이게 됩니다.
요약 : 외국어로 말하면 내가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언어가 말투뿐 아니라 관계 맺는 방식과 역할까지 바꾸기 때문이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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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ngolemongole
25.12.17 · 112.♡.33.238
물론이죠 적극 동의합니다 -
모모노마토
25.12.17 · 211.♡.12.174
그래서 우리 아테나가 영어 할때는 어른 스럽고 한국어 할땐 막내 스럽고 그런거군요. -
핫핫산V4
25.12.17 · 222.♡.78.168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영어로 이야기 할떄 한국어를 말하던 습관 때문인가...
(회피식...)
I think~~ 과할 정도로 많이 쓰는 습관이 있더라구요
뭐뭐 하러 가자 말할때도
내 생각엔 뭐뭐 하러 가는거 어때? 이런식으로요
회사에서 맨날
제 생각엔... , @@한거 같아요 호호
이러고 살아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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