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자 (172.♡.252.30)
2025년 12월 19일 PM 09:22 · 수정됨(12. 21. 21:59)
어머니와 작별했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어머니와 작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나봅니다. 월요일 새벽에 병원에서 온 전화에서는 어머니의 위독함을 전달했지만, 저는 큰 심적 동요가 없었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해온대로, 빨리 어머니에게 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요. 그것은 내가 해야할 업무의 일종같은 성격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가서 아들의 자격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감정이라고는 없는,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가장 슬펐던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어머니가 치료가 불가능한 변종 파킨슨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입니다. ‘피질기저핵변성(CBD)’이라는 이름도 생경한 이 파킨슨 증후군은 증세의 진행속도가 빠르며 레보토바 약물에 대한 반응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저 병의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의료조치가 없습니다.
다리쪽에 마비가 시작된 3년전 쯤 어머니는 저에게 같이 산책을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7월의 무더운 여름에 어머니와 아파트 단지 산책을 시작하였고, 마비가 있어 불편한 다리를 부축하면서 단지 한바퀴를 도는데 약 2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얼굴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게 된 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습니다. 혼자서는 거동을 못하시게 되었기 때문에 회사일을 마치면 부모님댁으로 가서 집안일과 식사를 차려드리고 집에 왔습니다. 다행히도 동생이 부모님과 가까이 살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등급도 신청하여서 4시간씩 재가요양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몇달 후에는 아버지도 급성 폐섬유화로 입원하시게 되면서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신께서 요양보호사로 잠시 일하셨던 요양원에 수급자로 들어가셨던 기분은 어떠셨을까요. 파킨슨은 뇌의 도파민 수용체를 파괴하여 환자의 감정을 무디게 만듦니다. 부디 큰 상심이 아니셨기를 바랄 뿐 입니다.
퇴원을 한 아버지도 폐질환이 호전되지 않아 거동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요양등급을 받아 요양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두 분이 한 요양원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조치하였고 틈나는대로 최대한 많이 찾아뵈었습니다. 산소포화도가 낮아 산소주입기를 코에 24시간 착용하고 계신 아버지와, CBD로 인해 한 손이 마비되고 다리가 뒤틀려서 와상생활밖에 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한 방에서 지내셨습니다.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으로 인해 사그러드는 부모님을 저는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2023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부모님을 많이 뵈려고 노력하면서요.
아버지는 2023년 결국 요양원에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바로 옆에 누워계셨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차가워지는 손을 잡아주는 것도 제가 침대에서 어머니를 내려 휠체어를 태워서 같이 갔을 때 가능하셨죠.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 어머니의 일그러지는 얼굴에서 슬픔은 볼 수 있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혼자 남겨진 어머니는 요양원 방에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텔레비전을 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몸의 마비는 점점 심해졌고 양 팔 모두 굳어갔습니다. 저와 제 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일주일에 한번씩 꼭 찾아뵙고 맛있는 음식을 드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단백질이 부족할 것으로 생각하여 고기 위주의 음식과 당분이 많이 함유된 디저트도 가져다 드렸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가끔씩은 어머니와 외출해서 바깥 구경도 시켜드렸습니다. 치료가 안되면 요양이라도 부족하지 않게 시켜드릴 수 밖에요. 파킨슨으로 인해 언어장애가 있던 어머니는 저와 동생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고맙다’와 ‘미안해’밖에 없었습니다. 제 2024년은 이렇게 채워졌습니다.
2025년 들어 어머니는 연하장애 (삼킴 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와서 돌아보건대, 긴 와병생활로 인한 근육감소와 CBD의 마비증상이 식도의 움직임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음식을 드실 때마다 사레가 들었고 더 이상 정상적인 음식을 드실 수가 없는 상태가 되셨습니다. 드리는 모든 음식은 믹서기로 갈아서 삼키기 좋게 연하제를 첨가하여 드릴 수 밖에 없었고, 물도 연하제를 타서 젤리같은 상태로 밖에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건 사람이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냥 매주 빠지지 않고 찾아뵙고 얼굴을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자식들이 매주 잊지 않고 찾아오고 있다고. 그냥 그것만 알아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쯤 되어 어머니는 말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셨거든요. 나쁜 CBD.
지난 달 말, 어머니는 고열과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가셨습니다. 검진결과 폐렴이 발견되었습니다. 가래와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간 것이 원인입니다. CBD의 전형적인 종착점이 찾아왔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쯤되면 저는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저 닥친 상황에 대응할 뿐 미래를 짐작하지 않습니다. 제 짐작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고, 감정의 동요는 대응에 방해가 될 뿐 입니다. 담담히 입원 절차를 밟았고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어머니가 2021년에 이미 사전에 동의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코를 통해 음식을 주입받고, 떨어진 폐 기능으로 인해 숨도 쉬기 힘들어하십니다. 저는 많이 슬프지 않았고, 다만 매일 일 끝나고 병원에 가서 옆에 앉아서 어머니를 지켜봅니다. 많이 드시지도 못하는 분이 땀은 어디서 계속 나오고 가래는 왜이리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땀과 가래를 만드는데 신체의 모든 에너지를 쓰시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월요일 새벽, 어머니는 만 70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작고하셨습니다. 저는 3일동안 상을 치루었고, 오늘 삼우제를 지내서 어머니를 저승으로 모셨습니다. 사후 저 세상이라는 것이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 며칠 많이 합니다. 그래야 제 부모님 두분이 해후하시어 멀쩡한 두다리를 앞으로 내딛으며 두 손 꼭 잡고 지내실 테니까요.
저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 많습니다. 음악 듣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셨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한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었고, 여행의 즐거움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어머니가 건강할 때 해 드린게 별로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저와 제 동생이 편찮으신 부모님께 신경을 많이 쓰는게 대견하다고 하지만, 그 때마다 저는 부끄럽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저는 부모님께 번듯한 여행도 보내드리지 못하였고 당신들이 저를 키우면서 바라던 모습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그저 나약한 소시민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저 부모님의 짐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범인에 불과할 뿐이죠. 편찮으신 후의 제 태도는 아마도 이런 후회가 반영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죠.
2022년 여름 즈음부터 시작한 부모님 돌봄이 이제서야 끝났습니다. 제가 자주오는 이 곳에라도 한번은 정리를 하고 싶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덧 :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도입하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공무원분들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 (223)
-
ㅡㅡIUㅡ
25.12.19 · 223.♡.51.244
-
할할랴
25.12.19 · 122.♡.93.206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SShue
25.12.19 · 141.♡.148.192
고생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이루리라
25.12.19 · 58.♡.94.201
애 쓰셨습니다. 할 만큼 하신 보수주의자님 안아드리고 싶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갈갈색낙엽
25.12.19 · 61.♡.0.13
편히 쉬시기를... -
살살아야겠다
25.12.19 · 211.♡.202.11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몬몬테크리스토
25.12.19 · 210.♡.232.102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잇
잇츠
25.12.19 · 211.♡.35.23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기기로로다
25.12.19 · 106.♡.7.244
ㅠ.ㅠ 고생 많으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사사자바람연꽃
25.12.19 · 221.♡.34.113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런가요.
어머니도 편히 생각하실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