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드라마 산업 문제점
최모군

Lv.1 최모군 (49.♡.109.155)

2026년 1월 15일 AM 02:35 · 수정됨(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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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방송사의 일을 좀 오래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2010년대 후반에 알았던 그 방송사 조연출들 중에...지금 드라마 감독이 된 사람도 있고 못 된 사람도 있죠.


예전하고 지금하고 드라마 산업이 달라진 게 뭐냐 하면,


<예전>

예전에는 드라마 산업 호황기였습니다. 사랑이 뭐길래나 모래시계 같은 거...시청률 60퍼센트도 넘기고 막 그랬죠. 아무튼 그 땐 호황기였기 때문에, 드라마 일이 정말 많았고, (드라마 감독이나 작가가 삽질해서) 시청률이 좀 안 나와도 기회가 또 주어지고 또 주어지고 그랬습니다. 


이 때도 드라마 조연출이 드라마 감독으로 되어가는 인재육성 프로세스는 주먹구구 그 잡채였습니다. 그냥 현장에서 일을 막 합니다. 감독이 야 이거 가져와 저거 가져와 일을 막 미친듯이 시킵니다. 그렇게 조연출로 구르다가 어느 날 되면 덜컥 감독이 됩니다. 조연출 7년 했으니 이제 한 번 연출을 해 보라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 드라마 감독이 되면 처음엔 연출을 드럽게 못 하죠. 처음에 몇 개 말아 먹습니다. 하지만 이 때는 하도 드라마 산업 호황기이기 때문에 몇 개 말아먹어도 기회가 또 주어지고 또 주어집니다. 


그렇게, 기회가 또 주어지고 또 주어지고 하면서, 점점 연출 드럽게 못하는 신인감독에서 원숙한 감독으로 변해갑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드라마 감독님들이 다 이 과정을 거쳐서 연출 잘 하시는 분들이 된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 인력 양성 체계는 주먹구구 그 잡채입니다. 인재육성 프로세스 자체는 바보인데 그냥 "경험의 힘"으로 유능한 인재들이 되어갔던 겁니다. (유명 탤런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화면에 나올 때는 발연기 그 잡채였는데 하도 작품이 많이 주어지다 보니 경험의 힘으로 명연기자 됨)


한마디로 그 때의 인재육성은 2차 대전 같은 겁니다. 2차 대전 때 미군에서 군인 징집할 때 아무 교육도 안 시키고 마구잡이로 전장에 투입했지만, 2차 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이 하도 짧은 기간에 빡세게 다양한 경험을 했다 보니...거기서 살아남아 돌아온 사람들은 엄청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죠.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미군도 체계적인 인재육성 프로세스를 개발해서, 2차 대전 같은 특수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인재를 육성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데 지금은 방송사 드라마 사업이 미친듯이 불황입니다. 일단 방송사에서 공채 PD를 안 뽑습니다. 정규직 PD를 안 뽑는다는 이야기죠. 그냥 4년 계약직 조연출만 뽑고, 4년 계약 만료되면 그냥 휴지처럼 버립니다. 


일단 지금 채용되고 있는 이 4년 계약직들이 드라마 감독이 될 확률은 거의 0프로입니다. 4년 동안 특출난 점을 많이 보여줘서 어쩌다 감독이 될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한두작품 하고 나면 업계에서 사라지겠죠.


일단 4년 계약직 조연출들은 그렇고, 방송사 공채가 아직 남아있을 때 들어온 정규직 PD들 중에서 비교적 좀 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80년대생 정도의 나이인 사람들이 있죠.


이 사람들은 정규직이라서 드라마를 안 하고 있어도 기본급은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경험의 힘" 버프를 못 받게 되었죠. 공중파 드라마 산업이 불황기로 접어들면서, 옛날처럼 짧은 기간에 다양한 작품이 또 주어지고 또 주어지고 하는 "경험의 힘" 버프를 못 받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시간이 좀 더 흐르면 좀 더 고수가 될 수는 있겠죠.


이 80년대생 PD들이 지금 3,4 작품 정도 연출해 본 상태인데(하도 산업이 불황이라), 지금 아직도 하수 드라마 감독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작품을 또 하고 또 해서 고수 감독들로 변해가려면...아마 10년은 더 있어야 될 겁니다. 


요즘에 하도 어이없는 작품들이 많은 게 딱 이 분들 때문이죠 ^^ 

(우리나라 드라마 요즘 왜 이렇게 엉성하지?...라는 생각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이 80년대생 PD들이 원숙한 감독으로 변하고 나면, 그 다음은 없습니다. 인재 공백이죠. 


<문제점>

여기서 제일 큰 문제점이 뭐냐 하면, 이제 공중파 방송사들은 장사가 잘 안 되고 있고 넷플릭스가 장사를 잘 하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인재육성을 안 한다는 점입니다. 이 사람들이 드라마 조연출들을 뽑아서 드라마 감독으로 육성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것도 검찰개혁 문제와 비슷합니다. "아 그냥 옛날부터 이런 식으로 해왔는데 뭘 개혁을 해" 딱 이 마인드인 겁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검사가 수사 기소 다 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하자는 것처럼, 우리나라 드라마 산업은 원래 주먹구구였는데 뭘 그렇게 개혁을 외치냐는 마인드가 이 쪽에도 있습니다. 아무도 개선할 생각을 안 하죠.


인재육성 프로세스는 옛날부터 개판이었지만, 옛날에는 호황이어서 짧은 시간에 다양한 작품이 또 주어지고 또 주어지고 하면서 "경험의 힘" 내지는 "호황의 힘"으로 고수가 되어갔지만, 방송사 드라마 사업이 잘 안 되고 있는 지금은 인재육성이 완전히 멈춰버렸습니다. 지금이라도...호황의 힘으로 다양한 작품이 미친듯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제대로 된 인재를 육성하는 제대로 된 프로세스의 개발이 시급하건만...(2차 대전 같은 게 일어나면 우수한 인재들이 우루루 육성된다고 해서 인류가 매년 2차 대전 같은 전쟁을 할 수는 없진 않습니까? 2차 대전 같은 특수에 기대지 말고, 체계적인 인재육성 프로세스를 개발해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생각할 때 하나의 해결법은 뭐냐면, 이제는 유튜브가 대세이니, 너무 100억짜리 120억짜리 공중파 드라마 제작에만 목메지 말고, 그냥 공중파 방송사에서도 유튜브 드라마 제작에 나섰으면 합니다. 알렉사나 레드 같은 걸로 찍지 말고 소니 A7 같은 미러리스로 찍으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유튜브 생태계에서 좀 굴리다가 거기서 두각을 나타내면 넷플릭스와 공중파에서 동시에 공개되는 100억짜리 드라마 감독을 맡기는 그런 프로세스로 갔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현장에서 막일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드라마 감독 되서 2작품 3작품 정도 해 본 사람에게 100억짜리 16부작 드라마를 연출하라고 하는 건...너무나 리스크가 큰 도박입니다. 그런 식으로 처참하게 실패한 드라마를 저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작품 이름을 말할 순 없지만).


참고: 그리고 다른 문제점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단 드라마 작가 되는 과정이 정말 족같습니다. 일단 방송사 극본 공모전을 통과해야 되는데, 무능한 방송사 사람들에게 일단 인정을 받아야 드라마 작가로 정식 데뷔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족같죠. 나는 대중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데 왜 무능한 방송사 간부들에게 먼저 인정을 받아야 되는 건지...도대체 무능한 사람이 봐서 만족할만한 대본이 어떤 건지 아무도 모르죠 ㅠ 


참고: 참고로 드라마 제작사들은, 정규직은 제작부 밖에 안 뽑습니다. 예산 관리하시는 분들...그 분들만 정규직이죠. 연출부(감독과 조감독)는 무조건 3.3프로 프리랜서 계약이죠 ㅠ 드라마 제작사에서 조연출을 정규직으로 뽑아서 인재육성을 해 줄 날은 아마 영원히 오지 않을 겁니다. 

댓글 (18)

  • todesto

    todesto Lv.1

    01.15 · 76.♡.120.245

    업계에서 계시던 분이 말씀하신거라 공감이 많이 됩니다. 미래가 불투명한건 확실합니다.
  • 운하영웅전설A Lv.1

    01.15 · 222.♡.179.249

    AI에 의한 시니어의 숙성(?)과 주니어의 절멸(!)이 동일한 방식으로 전 분야에서 진행되겠군요..
  • 최작가

    최작가 Lv.1 → 운하영웅전설A 작성자

    01.15 · 49.♡.109.155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 있는 주체들(방송사 등)이, 계약직 조연출들을 너무 휴지처럼 버리지 말고 유튜브 생태계에서 놀아볼 수 있는 기회를 좀 줬으면 좋겠어요. MBC라디오도 유튜브로 진출했고 MBC시사도 유튜브로 진출했는데 왜 드라마만 무조건 전파로 보라고 하는지...한 에피당 20분 정도 되는 유튜브 시리즈를 만들어서 계약직들을 거기서 좀 연출하는 연습을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 운하영웅전설A Lv.1 → 최작가

    01.15 · 222.♡.179.249

    김태호에게 다소 간의 반감이 있긴 하지만 무도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놀뭐의 초반 런칭은 정말 감이 좋은 거였다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확실히 유튜브도 많이 정형화되어가고 있긴 합니다.
    마이너 하거나 방송 하위 호환이거나...
  • 하늘걷기

    하늘걷기 Lv.1

    01.15 · 211.♡.97.42

    거의 외주 제작 시스템이니 사람을 키우기보다 검증받은 사람들을 쓰려고 하죠.
    자본이 필요한 콘텐츠들이니 새로운 도전을 꺼려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활황일 때야 모르겠지만 불황인 지금은 더 지갑을 열지 않겠죠.
    그래서 예전에는 방송사들에서 단막극을 꾸준히 만들어서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한다고들이 야기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웹드라마들이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너무 매니악하거나
    타겟층이 명확한 드라마들이 대부분이라는 한계가 있긴 한 것 같더군요.

    우리나라는 어느 분야나 치열한 경쟁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소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힘겹게 끌고 가는 것 같습니다.
    예체능 분야가 특히 그렇죠.
  • 트라팔가야

    트라팔가야 Lv.1

    01.15 · 58.♡.217.6

  • 트라팔가야

    트라팔가야 Lv.1

    01.15 · 58.♡.217.6

    DGA 만드셔야겠네요.

    DGA(Directors Guild of America)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미국 영화·TV 산업에서 연출 인력을 체계적으로 길러내는 매우 핵심적인 파이프라인입니다. 특히 “감독이 되는 공식 루트”에 가장 가까운 제도들입니다.

    아래에서 실제로 업계에서 의미 있는 프로그램만 정리합니다.



    1. DGA Assistant Director Training Program (ADTP)

    가장 대표적이고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개요
    • 목적: 1st AD / 2nd AD / UPM 양성
    • 지역: LA 프로그램 / NY 프로그램
    • 기간: 약 12–24개월
    • 경쟁률: 극도로 높음 (수백~수천 명 지원)
    (후략)
  • 최작가

    최작가 Lv.1 → 트라팔가야 작성자

    01.15 · 211.♡.192.68

    맞습니다. 이런 게 필요합니다. 방송사의 인재육성 프로세스가 개판이어도 호황의 힘에
    의해 고수로 변해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 과정만 거치면 안정적인 아웃풋을 뽑아낼 수 있게 된다”고 하는 안정적인 커리큘럼이 필요합니다.
  • 디즈니랜드

    디즈니랜드 Lv.1

    01.15 · 97.♡.46.68

    미국에 살면서 한국드라마 보는데 정말 한심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다 이유가 있군요.
  • S

    Stillivng Lv.1

    01.15 · 175.♡.183.168

    다른 맥락 일 수 있는데 김태호 나영석 pd가 유튜브에서 이야기 하는 컨텐츠에서 우리가 마지막 스타pd일지도 모른다고 했는게 ..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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