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장례식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시간
여름숲1

Lv.1 여름숲1 (58.♡.71.151)

2026년 1월 16일 PM 01:50 · 수정됨(16:51)

조회 1,822 공감 0

엄마의 첫번째 기일이 다가옵니다. 

엄마 돌아가시고 1년 참 많고 많은 일들이 저를 지나쳐가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장례식을 치루면서 만난 친구 친척 지인들, 그때의 분위기 등등을 가끔 떠올리는데 가장 흐믓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이틀째 밤..12시도 넘어서 아침 발인을 앞두고 조문 온 문상객들은 다 가고 

외삼촌 이모는 이미 잠자리를 잡으시고 직계가족과 사촌동생하나 그리고 내일 운구할 오빠 친구들만 남아서 술을 한잔 나누고 있었어요. 유치원 동창들인 오빠의 베프들은 가까이는 서울 동네에서 이틀내 함께한 오빠도 있고, 멀리는 대전에서 태백에서 허덕허덕 밤이 깊어 올라온 오빠들도 있었어요. 

그때 오빠친구 하나가 훌쩍 커서 대학생이 된 조카들(오빠 딸,아들)을 앉혀두고 술을 한잔씩 따라주며 

" 아빠랑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아냐?" 

하시는데 저도 그냥 사십여년 그렇게 당연히 옆에 있던 오빠 친구들이었는데 그 처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귀가 쫑긋..

" 유치원 처음 등원하는 날 유치원을 향해 걸어가는데 예쁜 원피를 입은 OO이네 엄마(우리엄마)가 니들 다 XX유치원 가는구나. 너희들 다 같이 친구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 해 하면서 한손에는 내손, 한손에는 니네 아빠 손을 잡고 같이 유치원으로 가셨어. 가시면서 만나는 원복입은 애들을 다 챙겨서 유치원으로 데려가셨지. 그렇게 처음 만나 우리는 지금껏 만나오고 있지"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그날의 정경이 눈에 떠오르더라구요. 그즈음 엄마가 입으셨던 쑥색 사각 네크라인 긴 원피스와 사진속의 오빠가 입었던 하얀셔츠와 남색 반바지 삘간 빵모자, 맨날 밖으로 돌아다녀 쌔까맣게 끄을은 오빠의 얼굴. 지금도 장난기가 가득한 오빠친구의 어렸을적 얼굴.


오빠가 그렇게 우리 엄마와의 처음을 좋은 기억으로 애들한테까지 얘기해주니..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는 이런게 정말 장례식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더군요. 


PS. 그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새벽까지 취하도록 마신 오빠들은 근처 찜질방에서 잠깐자고 씻고 오겠다고 나갔고

다음날 아침 꽤죄죄한 얼굴, 떡진 머리, 술냄새 풀풀 나타났는데 

술마셨다고 사우나에서 받아주지도 않으려는데 사정사정해서 탕에는 안들어가고 눈만 붙이고 가겠다고 해서 잠만 자고 왔다고..장례식장 내실의 욕실에서 돌아가며 씻는다고 부산을 떨고 컵라면 해장을 하는걸 보고.. 
아~~ 이사람들 나이 들어도 똑같이 늙는구나... 웃음을 주었었죠 ㅋㅋㅋ


댓글 (10)

  • 해방두텁바위

    해방두텁바위 Lv.1

    01.16 · 166.♡.5.43

    어머님께서 오라버니 친구분들을 참 살뜰하게 챙겨주셨던 것 같습니다. 좋은 어른이셔서 저렇게 마지막 모시는 길을 함께하려 다들 모이셨나 싶습니다.
  • 여름숲

    여름숲 Lv.1 → 해방두텁바위 작성자

    01.16 · 223.♡.85.20

    한동네에서 오래도록 내아들 니아들 없이 그냥 있는대로 먹이며 컸던거 같아요.
  • 아브람 Lv.1

    01.16 · 210.♡.108.130

    찐 조문객들의 유쾌한 장례식이 되셨나봅니다...
    엄마의 추억과 함께할 수 있는 분들이시니 어머님께서도 즐거워하셨을듯 합니다...
    저도 편찮으신 어머니가 계신지라...
    남의 일이 아닌듯 해서 들러보았습니다...
  • 여름숲

    여름숲 Lv.1 → 아브람 작성자

    01.16 · 223.♡.85.20

    그쵸 오빠들이 워낙 유쾌해서
    사회에서는 사장님, 공기업의 책임자 막 그런데 친구들끼리 만나면 세상 찌질이들처럼 노니까 즐겁죠 ㅋ
  • PTSD

    PTSD Lv.1

    01.16 · 122.♡.137.113

    원래 어려울때 와서 같이 뭉게주는 사람들이 귀한 사람들인거죠. ㅋ
    덕분에 저희 어머니 장례식때 생각에 잠시 잠겨볼수 있었습니다.
  • 여름숲

    여름숲 Lv.1 → PTSD 작성자

    01.16 · 223.♡.85.20

    맞아요.
    오래오래 뭉개주는 사람들이 기억에 남고 두고두고 고맙습니다.
  • 우라레지 Lv.1

    01.16 · 116.♡.50.145

    저는 엄마 장례식때 뜻하지 않은 대학 동창회 자리가 됐는데 몇몇 친구들은 이틀 연속으로 오기도 하고 술잔을 나누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 여름숲

    여름숲 Lv.1 → 우라레지 작성자

    01.16 · 223.♡.85.20

    맞아요.
    저도 선배들과 동기들이 장례식 내내 시간 비지않게 릴레이조문을 해줘서 두고두고 고마웠어요. 요샌 정말 드문데 밤을 새워주는 여자 선배들이 있어서 든든했어요.
  • 길벗

    길벗 Lv.1

    01.16 · 153.♡.138.5

    어려울 때 슬플 때 오는 지인과 친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경사는 혹시 거를지라도 조사는 꼭 참여 해야 한다 라는 말이 맞네요.

    이역만리에 타국에 사니 모든 인간관계가 소원해집니다.
    안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네요.
  • 여름숲

    여름숲 Lv.1 → 길벗 작성자

    01.16 · 112.♡.91.89

    저도 경사는 못챙겨도 애사는 꼭 챙기자 생각으로 다니는데
    코로나 이후 장례문화가 많이 달라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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