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V4030 (210.♡.27.130)
2026년 1월 23일 PM 04:46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본의 최초 축적 및 생산수단과 노동의 최초 분리는 어디에서 출발하느냐 하는 거죠.
모리스 돕이란 학자는 이게 농업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반대로, 스위지라는 학자는 당시 영국에서 잘 나가던 상업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지적합니다.
이 논쟁이 사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에도 많이 영향을 미칩니다. 당대 구한말 조선의 상황에서는 외재적인 충격 없이는 자본 축적을 가능할 조건이 없었다고 말하는데... 조선의 경우 토지에 노동이 분리되지 않고 묶여 있었고, 상업도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을 최초 축적할 여력이 없었다고 얕잡아보고 일본은 그럴 조건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강변하는 거죠.
이제부터 제 생각인데요... 저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대다수에는 그딴 조건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방대한 식민지, 특히 인도의 공물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북미/서인도제도 플랜테이션과 아프리카의 노예 무역에서 막대한 이윤을 빨아먹으면서, 덤으로 아일랜드에서 식량도 가혹하게 공급받아 인클로저 운동 등으로 농민들을 토지에서 쫓아내버릴 정도로 가능했던 나라는 사실상 영국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유럽 대부분은 어떻게 식민지가 되지 않았냐 이러면...
당대 제국이었던 영국이 그렇게 결정했다고 봅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도 봤지만 프랑스나 기타 유럽 국가의 군사력은 높은 비용을 초래하니... 상품 판매와 자본투자 등으로 이득을 보자는 수준이었고, 나머지 동네는 얄짤없이 식민지 만들어서 상품을 팔아먹자 방식인거죠.
그럼 식민지 근대화론이 사실상 찬양하는 당대 일본의 경제적 시스템을 보자면...
일본의 20세기 초 경제와 산업 발전도 전반적인 틀은 영국의 세계체제 내에 있었던고.. 자체적으로 쥐어짜봐도 나올 수 있는 자본적 잉여가 턱없이 제한적인데, 청일전쟁 배상금 맛을 보니 돌아버려서 러일전쟁 치르고 식민지 통해서 뭐 좀 뽑아먹으려고 난리를 치고 해도, 지들 상품 사줄 곳이 없고 하니 계속 경제불황에 시달립니다. 거기다가 초슈-사츠마 군벌 체제가 원래 메이지 유신의 본질이니, 대공황 터지고 더더욱 미쳐 날뛰는 거구요. 그만큼 당대 일제 자본주의는 너무나도 취약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한계를 극복 못했어요.
일본이 결국 경제 시스템 한계를 어느 정도 돌파하는 것은 한국전쟁 즈음해서 일본을 태평양 거점기지로 삼겠다는 미국의 의지 때문이었고, 무관세로 일본 상품을 사줬던 데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잊고 거만해져서 미국 무시하다가 프라자 협정 맺고 그냥 잃어버린 10년으로 나락행 익스프레스를 타는 거죠. 일본 스스로가 잘 나서 경제 발전한 줄 알았고, 자체적으로 내재적 자본주의 경제 성장을 이룬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 기반은 영국이든 미국이었던 것이죠.
이 모든 과정들을 알면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게 실상은 일뽕 맞은 2등 제국 논리에서 본, 일제 3등 신민의 대체역사놀이 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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