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란디르 (182.♡.58.25)
2026년 1월 28일 AM 09:08 · 수정됨(22:42)
<페친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보내온 편지입니다. >
- 누구든 기꺼이 너를 돕고자 하는 마을 -
지난 주 일요일 세다 에비뉴 레이크가.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22번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이 곳이 버스 정류장임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만 위태롭게 서 있는 빈 도로.
르네 굿 살인 사건이 일어난지 열흘째. 도시는 3천명의 이민단속국 요원, 아이스들이 활개 치는 중이었다. 내가 서 있는 커다란 길 세다 에비뉴의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브루탈 건축 양식의 리버사이드 플라자를 볼 수 있는데 그 곳 주변이 트럼프 정부의 미네소타 테러 암묵적 배경이 된 소말리아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었다. 같은 길을 쭉 낀 채로 남쪽으로 오면, 내 교회가 있는 그리고 내가 그 당시 서있던 버스 정류장이 있는 사우스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하게 된다.
사우스 미니애폴리스 가운데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은 히스패닉 인구가 많고, 스페인어로 된 안내문을 흔히 볼 수 있는 동네다. '브라운'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사는 이 공간을 거점으로 몇 블럭씩 왼쪽, 오른쪽, 윗쪽으로 각각 조지 플루이드, 르네 굿, 알렉스 프레티의 살해 현장이 위치해 있다. 두 명의 백인과 한 명의 흑인이 이 근처에서 죽었다.
소말리아 사람을 소탕한다는 목적과 함께 트럼프가 개시한 "메트로 서지 작전"은 사우스 미니애폴리스 브라운 상권을 마비시켰고, 올 해에만 두명의 미니애폴리스 시민을 연속으로 사살했다. 그 과정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잡혀갔다. 섬광탄을 맞고, 최루탄을 맞고, 페퍼 스프레이를 맞고 기절할 것 같은 이들을 요원들이 달려들어 짓밟은 채로 텍사스로 끌고갔다. 직선 거리 기준, 서울에서 체포한 사람을 타이페이까지 데려가는 셈이었다.
서릿발 눈이 펑펑 내리고, 목도리 안 입김이 나오는 날씨 속 안경 주변에 살얼음 반, 서리 반으로 시야가 전부 가려졌던 그 때 홀로 서 있는 버스정류장 너머 자동차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기!" "여기!" 모르는 차량의 운전자가 나를 세 번째쯤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는 급히 차량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낡은 회색 SUV.
'혹시 아이스 요원일까." 경계하며 그를 쳐다보는 사이, 운전자는 백미러가 부숴진 조수석 쪽 창문을 간신히 내려 나에게 힘겹게 손짓했다. 어서 여기로 오라고. 6-70대 여성이었다. 나는 잠깐 주변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니?" 여성이 안쓰러운듯 물었다.
"네?" 의심을 품은 채로 답했다.
"내 차에 타. 눈 맞고 있으면 감기 걸려. 그리고..." 목도리로 전부 가리지 못한 내 얼굴 피부색을 보더니 유색인종임을 확신하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위험해. 지금. 혼자 버스를 기다리기에는."
말을 마친 그녀는 운전석의 안전띠를 풀고 몸을 조수석쪽으로 길게 뻗어 끙끙 거리더니, 조수석 쪽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순순히 그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 앞 발판에 올랐다.
"어디로 가던 중이니." "웨스트 뱅크요." 대답을 들은 여성은 그 근처에 한번 가본 적은 있지만, 정확한 경로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휴대폰을 켜서 목소리로 길을 안내해달라고 했다. 오래된 자동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었고, 주변에 휴대폰 거치대도 없었기에 내 말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제안에 나는 네 대답하고는 구글 지도를 켜 목적지로 설정한 뒤, 길 안내를 시작했다.
"이스트 레이크 가 미드타운 방향으로 가다가 외곽도로로 빠지라고 알려주네요."
그녀는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차에 가만히 앉은 채 어느 어느 도로로 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곧장 이해하는 미국 운전자들이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도로 기준 주소를 대체 어떻게 외우는걸까.
얼추 경로가 정해지고 나서 그녀는 한껏 긴장을 놓은 채 왼손만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뒷좌석에 있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다 끌고 오고는 비닐봉지를 간신히 꺼냈다. 수십여개의 알록달록한 호루라기가 뭉치 째로 담겨있었다.
"호루라기 없지? 하나 챙겨야 해." 그녀는 호루라기를 하나 집으라고 권했다. 호루라기는 이 도시의 생존 수단이다. 어느 시민이건 아이스 요원이 보이면 호루라기를 불러 주변 사람들에게 도망갈 것을, 또 도와줄 것을 동시에 요청한다. 주로 추방 위기가 큰 유색인종들은 도망가고 현장에서 풀려날 가능성이 높은 백인들은 도와주러 온다. 용감한 이들은 유색인종 시민의 체포를 두고 아이스 요원과 설전을 치룬다. 일부 남성들은 육탄전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잡혀갔다. 어제 다섯여명의 아이스 요원에게 공개 처형이나 다름없는 총살을 당한 알렉스 프레티와 같은 사람들이 소수자를 지키기 위해 육탄전을 기꺼이 감내하는 시민이다. 아이스의 무소불위 권력 앞에서 유색인종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처지에 놓였음을 자각하는 미네소타 백인 주민들은 몸을 던져 유색인종 대신 전면에 나서 저항하고 있다. 그 지점에서 올해 들어 두 명의 백인이 죽은 건 우연이 아니다.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 둘 다 유색인종 주민들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용감한 백인 시민들이었다.
다시 호루라기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그녀의 제안을 듣고 파란색 호루라기를 하나 집었다. 그는 나에게 우선 목에 걸라고 말하며, 소리가 잘 나는지 불어보라고 말했다. 호루라기 시범 소리를 들은 그는 이어서 버스 정류장에 혼자 서 있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아이스 요원들은 불법이민자건 아니건 우선 수천명의 구금 인원 할당을 실적삼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너도 발견되면 즉시 잡혀갈지 모른다고.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위험에 처하면 호루라기를 삑삑 힘껏 불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아이스 행적을 몰래 감시하던 시민들이 나타나 도와줄 거라고. 그럼 도망가라고.
다소 섬찟한 조언을 듣고, 여성과 나는 한동안 별 말을 하지 않은 채로 외곽도로로 빠져나가는 길을 향했다. 잠깐의 침묵을 깨고는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를 향한 조언이라기보다는 그 자신 스스로 분노에 찬 말을 쏟았다. "빼앗긴 땅(stolen land)에서 주인 행세하는 녀석들..."
여성은 자신이 아메리카 원주민임을 밝혔다. 미국 북동쪽 일대, 더 정확히 미네소타의 왼편에는 다코타, 오른편 위스콘신 방향에는 오지브웨 족등이 사는데, 그 중 한 부족으로 보였다. 유럽인들이 침략하여 땅을 강탈하기 전까지 미국은 원주민의 땅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성은 아이스가 트럼프의 명령을 받아 불법 이민자를 쫓아낸다는 사명을 앞장세운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애시당초 저들 자신이 '불법 이민자들'인데, 대체 무슨 점령군 행세를 하는거냐고. 그는 외곽도로를 달리는 내내 모욕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참 말하던 그는 분노를 삭힌 채 다시 내 쪽을 바라본 뒤 나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아가야. 정말 조심해야 해. 나도, 너도 둘 다 잡히면 끝이야. 미네소타 이민자 옹호 네트워크에서 하는 수업은 들어봤니? 알아보렴. 혹시라도 붙잡히면 네가 해야 할 말과 묵비권을 행사해야 하는 순간을 알려줄거야. 변호사에게 연락하는 방법도."
내 안위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한 말은 이내 소박한 점심으로 옮겨왔다. "점심은 먹었니? 집에 식재료는 충분하니? 눈이 이렇게 펑펑 오는데, 바깥에는 아이스 요원들이 활개치고 있는데 시장은 어떻게 보고 있니. 괜찮다면 집으로 가는 길 내가 네 장보기를 도와주고 싶어." 걱정은 끊이지 않은 채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옷차림이었다. "아가야. 네 옷차림을 봐. 지금 영하 25도야. 다리도 아픈데 그렇게 구멍난 청바지를 입으면 어떡하니. 동상에 걸릴지도 몰라." 불과 10분 전에 만난 여성은 이제 나의 엄마가 된 듯 나의 식사와 옷을 차례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떤 걱정을 하건 나는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며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지만, 그녀의 강경함 앞에 장보러 향했다. 사실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집에 가고 싶었을 뿐, 나는 요즘 장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혹여나 휠체어를 타고 장보러 나갔다가, 아이스 요원에게 잡히면 영락없이 텍사스 구금시설로 끌려갈 지도 모르기에 외출을 삼가고 있었다. 더구나 나는 아시아인이자, 장애인이다. 언제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다.
미네소타에서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고 있다. 당장 내 집 건물 1층에 입주민 중 자원봉사자들이 "무엇이든 제게 시켜만 주세요. 제가 당신 대신 약국에도, 시장에도 다녀올 수 있습니다. 서로 도와가며 이 시기를 이겨내요. 망설이지 말고 연락주세요." 하는 전단지가 여러개 있지만, 나는 차마 미안해 누구에게도 연락해보지 못했다. 그저 비어가는 냉장고 속,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녀의 강건한 제안 덕분에 나는 그녀의 차를 타고 귀가 전 트레이더 조로 향했다.
주차장쯤 이르렀을 때. "고맙습니다. 차 타고 시장 보러 가는 건, 아니 슈퍼마켓에 누군가와 함께 장으롭러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돌아가신 어머니와는 십몇년 전에 마지막으로 해본 것 같아요."하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내 감사 인사에 그녀의 긴장된 표정이 그제서야 한껏 풀렸다. 그녀는 자기의 기쁨이라고 말하고는 주차를 시작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린 순간,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고나서야 깨달았다. 운전할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 그녀 또한 나처럼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라는 사실. 그녀는 비록 나처럼 목발을 짚지는 않지만, 절뚝거리며 걸음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절뚝거리며 그녀는 주차장을 나서 쇼핑카트 더미로 향해 한 대를 끌고 왔고, 우리는 가게 안에서 만나 함께 간단히 장을 보기 시작했다. 김치, 계란, 사과, 햄, 치즈, 양배추, 채소, 식빵,요거트. 식재료를 하나씩 집어 카트에 하나씩 옮겨 담아 끝내 카운터로 향하던 그때. 계산대 직전에 놓인 간식 코너 앞에서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가야. 너에게 뭐라도 하나 사주고 싶어. 이 당근케익은 간식으로 어떠겠니." 그녀는 당근 케익을 집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저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나의 감사 인사를 듣자마자 그녀는 카트에 작은 케익이 담긴 박스를 함께 넣고는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바로 계산대 앞에 오르지 않고, 몇 명의 직원 얼굴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하더니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한 여성 직원에게 다가가 계산을 시작하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트레이더 조에서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줄 때 초콜렛을 주는 걸로 알아요. 이 친구는 요즘 미네소타에 닥친 어려운 상황,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 상황 때문에 무척 힘들어요. 당신이 이 친구에게 달콤한 초콜렛을 선물해주면 어떨까요." 그녀는 계산대 직원에게 역으로 제안했다. 계산대의 여성 직원은 나와 여성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서로의 표정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제 기쁨입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객님, 여기 놓인 초콜렛 중에 먹고 싶은 걸 하나 가져가세요. 당신을 위한 제 선물이에요."
나는 짐짓 놀라면서 두 여성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분위기를 살피다가, 결국 가장 눈앞에 놓인 피넛 버터 초콜렛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손가락을 바라보던 계산대 직원은 초콜렛을 즉시 시장 바구니에 함께 담아주었다. 여성과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계산대를 빠져나왔다.
"어떻게 초콜렛 선물이 있다는 걸 아셨어요?" 나는 여성에게 물었다. 여성은 나에게 언젠가 트레이더 조의 서비스에 대해 신문기사를 읽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선물은 오롯이 계산대 직원의 재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선물을 줄 법한 직원을 골라 그의 계산대로 향하는 과정에 고민을 좀 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무척 뿌듯한 표정으로 "자. 이제 가자. 집으로."하고 말했다. 같이 살지도 않는데 마치 가족인 것처럼.
부츠에 낀 녹은 눈으로 물기가 있는 주차장을 향해 절뚝거리는 두 사람, 원주민 아주머니와 한국인 나. 두 장애인은 함께 조심히 걸으며 축축한 아스팔트를 지나 자동차에 도달했고, 시동을 걸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아까와 같았다. 나는 다시 구글 지도를 켰고, 마치 열번은 해본 것처럼 네비게이션 안내를 대신 소리내어 읽었고, 그녀는 나의 목소리를 벗으로 삼아 내 집으로 향하는 초행길을 운전했다.
집 근처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 여성은 나에게 말했다. "아가야. 로비에 들어가 있어." 그는 차를 세워 시장 바구니를 챙겨 가겠다며, 춥고 미끄러우니 주차장 근처까지 따라오지 말고 먼저 건물 안에서 몸을 녹이고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순순히 그의 말을 따라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자동차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천천히 절뚝거리며 시장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힘겹게 문을 열어 들어왔다.
"여기 앞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 방으로 갈 수 있어요." 그녀에게 로비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안내하며 함께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가 내게 걱정하며 물었다. "다음 장보기는 어떻게 할 예정이니?"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휠체어타고 가보려고요."
그녀는 내 말에 깜짝 놀란듯 손사래치며 말했다. "아가야. 안돼. 너무 위험해." 그녀는 난민이나 이민자를 대상으로 봉사하는 미니애폴리스 지역 사회복지사를 알아봐주겠다고 말하며,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집에 도착해 시장바구니 짐을 풀면서 그녀가 허리 숙여 짐을 꺼내다 내 뜯어진 청바지를 보며 말했다.
"바지를 하나 새로 사는 게 좋겠어. 그리고 자켓도 좀 더 두툼한걸로. 장갑도 필요할 것 같고. 너 지금 차림으로는 미네소타의 겨울이 너무 가혹할거야. 혹시 남이 입던 옷도 괜찮니?" 그녀의 이어지는 질문 속 나는 괜찮다고 손사레쳤다.
그러나 그녀는 시장 가방을 다 풀고도 한사코 물러나지 않았다.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하나였다. "주시면 감사히 입겠습니다." 그제서야 그녀의 안쓰러운 미간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내일 이 시간쯤 여기로 다시 올게. 중고 옷가게 가서 네가 입을만한 옷이 있을지 좀 보고, 주변 친구들한테도 좀 알아보고 옷좀 챙겨다 줄게. 왠만하면 그 차림으로는 오늘 내일 나가지 않는게 좋겠어. 올해 겨울은 너무 춥고 혹독해."
그녀는 약속처럼 다음 날 비슷한 시간, 그러니까 마틴루터킹 기념일인 공휴일에 회사를 쉬는 날 통째로 중고 옷을 구하러 다니고는 오후가 되어서 옷을 한보따리 싸들고 내 집으로 찾아왔다. 검은 비닐 봉지에 한가득 담긴 옷들. 그녀는 특히 친구로부터 안입는 중고 폴로 자켓을 구할 수 있었다며 너무 기뻐하며 말하고는 비닐봉지에서 하나씩 자켓, 장갑, 바라클라바, 내복을 꺼냈다. 비닐봉지에서 옷을 꺼내는 그녀 앞에서 옷을 한벌씩 걸쳐 입어보고는 사이즈가 딱 맞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옷을 새롭게 입으며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어 고맙다고 진심을 담아 안아주었다.
그녀가 비닐봉지를 주섬주섬 챙기고는 절뚝거리며 나가기 전에 돌아보고는 나에게 말했다. "아가야.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장애가 있건, 무엇이건. 여긴 미네소타야. 잊지마. 누구든 기꺼이 너를 돕고자 하는 마을이야. 비록 상황이 좋진 않지만, 넌 제대로 된 마을에 잘 찾아 왔어. 모두가 널 응원하는 커뮤니티가 있는 곳 말야. 그러니까 너 혼자 살면서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 안돼. 위험하고 나쁜 사람들에게 네 안전을 내어주면 안돼. 알겠지?"
그녀가 떠난 자리, 중고 옷에 스며든 제습제와 타인의 살갗 그리고 약간의 땀 냄새가 뒤섞인 물품들을 옷장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러면서 그녀와 이 도시의 따뜻한 마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오늘까지도. 추운 날에 한번, 사람이 죽은 날에 한번, 누군가 잡혀간 날에는 한번씩 안부 문자가 온다. "아가야. 잘 있지. 이 위기가 정리되고 나면 아시안 마트에 가서 김치도 사러가자. 너를 도와주겠다는 사회복지사가 정해졌어. 그가 곧 너에게 연락할거야. 그동안 몸조심하고 잘 숨어있어."
그녀의 안부 문자가 올 때마다 나도 늘 답장을 보낸다. "잘 지내죠? 메시지 고맙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 꼭 잡히지 말고 살아남아요. 몸조심하세요. 저도 조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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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에폴리스의 현 상황에 대해, 또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그 연대에 대해 피부로 와닿는 글입니다.
그곳에도 한국인이 살고 있었고....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남일 같지 않네요.
** 메일 웹진 형태로 받는 글이고, 페북 공유하신 분이 원작자 분께 공유 허락을 받았다 합니다.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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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스까르고
01.28 · 183.♡.12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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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붕이
01.28 · 211.♡.4.50
하. 이건 무슨 안네의 일기잖아요.
미국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걸까요 ㅠㅠ -
라라라랄랄라
01.28 · 218.♡.245.24
너무 잘 읽었습니다 ㅠ. 정말 윗분 말처럼 안네의 일기를 읽는 느낌이네요. 저도 얼마전 미국 지인과 통화했는데 뉴저지도 단속이 심하다고 그러더라구요. - 다
다모앙뉴비
01.28 · 218.♡.172.2
번역이 잘 된 '분노의 포도'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의 필체네요. 생생하게 그곳의 사람들이 느껴집니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
만만화처럼
01.28 · 210.♡.76.166
이게 어떻게 평시에 도시 상황이라니... 윗분 말씀처럼 진짜 나치치하의 안네도 아니고 미국이 미쳐돌아가는군요. ㅠㅠ -
블블루밍턴
01.28 · 1.♡.19.138
미니애폴리스 겨울에 살아봤던 사람으로써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트윈씨티 메트로 전체가 생각이 나는군요. - 다
다시시작하는민주주의
01.28 · 106.♡.3.101
미네소타에서 광주의 희생이 반복되지 않길 기원합니다. -
토토마토DH
01.28 · 222.♡.71.178
앞글만 읽을려 들어왔다가 정독하고 갑니다.
ICE가 게쉬타포라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
BBlizz
01.28 · 17.♡.41.106
백인들 희생이 많은게 막연히 상대적으로 덜 험한 취급을 당할 위치에 있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줘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랬군요. 이런분들이 진정한 미국의 가치를 지키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철철벽뮐러
01.28 · 221.♡.67.203
이게 21세기 안네의 일기같은건가요. 왜 이런꼴을 소위 '위대한 미국'에서 봐야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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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