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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일 PM 01:15 · 수정됨(02. 04. 15:13)
유시민
김: 자, 이해찬 전 총리 평생의 동지 유시민 작가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유: 안녕하세요.
김: 이리 장례식 끝내고 주말에 연락을 하셨는데 나오겠다고 먼저 나오겠다고 연락하신 건 처음 해요. 예, 그런 거 같아요. 다른 얘기 하기 전에 김정옥 사모는 왜 다들 국립 묘지를 모셔야 한다고 했는데 안 모시고 가족 묘를 모셨답니까?
유: 이게 원래 그 청양에 선산이 있었는데 그 이해찬 대표께서 생전에 부모님을 포함해서 그 조상들 묘소를 이미 그 은하수 공원으로 다 들였어요. 아 본인이 그로 가겠다. 예. 그 그렇게 된 거라 또 생전에도 번거로운 거 이런 거 어 격식 의전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부모님 곁으로 가신 거죠.
김: 그리고 저도 갔다가 아 왜 이거 안 받으시냐고 했었는데 부조금도 조금도 끝까지 안 받으셨던데
유: 예
김: 왜 끝까지 안 받으셨어요? 어떻게 알고 계세요?
유: 그것도 이제 무슨 말할 수 있잖아요
김: 그게 아니 이게 마음을 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잖아.
유: 그럼 뭐 회고록을 하나씩 사시던가 그러면 되죠.
김: 그러니까 왜 들고 나오셨는데 어떻게 하냐 하니까 아니 책이라도 읽으시든가 이렇게 되더라고 주변분들이 회고라
유: 사실 그것 때문에 사셔야 될 건 아니고 사실 제가 좀 출연했으면 좋겠다 싶었던게이 책이 사실은 3년 전에 나오긴 했지만 아 3년 반 전에 이게 정치인 이해찬의 그 정치적 장이에요.
김: 음. 아니 그 말씀하시니까 이게 너무 일찍 쓰신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왜 2022년에 이걸 쓰신 거예요?
유: 그게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그때 그 대통령 선거가 마지막 시간이 될 거라고 예측하셨어요. 어. 그래서 자신의 정치 활동이 그때 끝날걸로 보고 2022년에 어. 예. 그런데 윤석열이 돼 버렸죠. 어. 그래서 저하고 얘기하실 때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라고 이제 정말 제가 살면서 가장 우울해 하셨어요. 예. 다른 일 겪었을 때 그렇게 우울했던 적이 없는데 그래서 그때 그 책을이 책을 내지 말자는 얘기도 하셨고요. 음. 근데 함께 한 사람들이 내야 한다고 그래서 3년 연장이 되어서 어 어 내란 때까지 활동을 하시고 그리고 떠나신 거죠. 그러니까 유언장을 이미 3년 전에 내놓으신 거예요.
김: 음. 그런 의미의 책이구나. 예.
유: 그러니까 좀 더 오래 살려는 노력을 전혀 안 하셨어요. 그니까 라이브 라이프스타일을 몸이 편찬 많이 편찮아지시고 나서도 그대로 가져가셨거든요.이 책을 쓸 때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건강이.
김: 그 술을 계속 드셨더라고.
유: 그거는 이제 옛날 고문 후효증으로 인한 그런 고통 이런 것도 좀 있었고 그 본인 스스로가 좀 더 연명하기 위해서 라이브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걸 분명히 하셨기 때문에 저희가 뭐...
김: 이게 건강이 안 좋습니다. 담대 안 좋습니다. 술이 안 좋습니다. 해도 나는 이대로 그냥 살다 갈래.
유: 그러니까 이제 이해찬 대표님 떠나신 거를 보면 그 바람 벌어서 촛불 꺼질 때 말고 초가 다 타서 어 촌농이 다 없어져서 심지만 남았을 때 있잖아요.
김: 완전 연소.
유: 예. 맨 마지막에 화를 해서 심지가 타면서 꺼지거든요. 음. 딱 저는 그런 모습으로 좀 생각해요. 그러니까 슬프긴 한데 음. 그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같은 그런 아픔 그때는 진짜 물리적으로 가슴이 아팠고요. 지금은 이제 그런 건 없고 그냥 슬픈 거죠. 좀 일찍 가셔서...
김: 일찍 헤어져서 헤어져서 슬픈 거고 근데 이제 본인 답게 가셨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거.
유: 그럼요. 그 정말 예. 깔끔하세요. 음.
김: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공적인 일을 하다가
유: 그럼요.
김: 그 뒤에 사실 이렇게 해서 반년이고 1년이고 계속 연명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예. 가셨어.
유: 그러니까 이제 노병이 전선에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딘 거하고 비슷한 거예요, 이거는. 음. 저도 비슷한데. 뭐 그렇게 저는 받아들이고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예.
김: 자, 그러면 언제 만났는지 얘기부터 한번 보셨으니까 학생운동 시절 80년대 만났다고만 전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1980년 그때 서울대 법대죠. 그러니까 저는 뭐 소문 들어서 이미 그분을 알고 있었고
김: 어떻게 소문이 난 거예요, 그분이? 그러니까 이제 학교 안에서 이렇게 기자들을 몇 명 여러 명 이렇게 그 몰고 다녔어요. 그 서울대 출입 기자들을. 그때 이제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그 소문을 들어서 이해찬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 알고 있었고 음 그런데 그 5월 초에 무슨 학교에 집회할 때 그 저희 이제 지하 지도부 형들이 복학생들한테 마이크 주지 말라고 그래 가지고 그 제가 신호를 딱 보내 아 이제 우리가... 학내 지도부가 있는데 형님들이 와서 자꾸 다른 방향으로 으로 얘기를 하시니까 제가 사회 보는데 발언권 주지 말라 그래가지고 그래서 제가 미리 사람들을 배치해 놓고 내가 무슨 말로 신호를 딱 하면 전원을 끄라.
김: ㅋㅋㅋㅋ
유: 그래서 마이크 전원을 꺼버렸죠. 그런데 이제 말씀하시려고 올라와서 해 보니까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화가 나서 저보 공부를 하셨죠. 멱살을 잡았다. 매일 처음에 만남은 복학생이 발언 계회를 차단하려고 했고
김: 그때 올라온 복학생이 이해찬 복학생 회장이었고 "너 뭐야이 자식아." ㅋㅋㅋㅋㅋ
유: 예. 그래서 며칠 후에 만나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면대면으로 알게 됐고요. 처음부터 좋았어요 저는. 예.
김: 처음에는 왜 좋아하셨어요?
유: 되게 말씀이 이렇게 알아듣기 쉽고 취지가 뚜렷했어요. 그러니까 뭐 대화를 해 보면 어 무슨 말을 하는지 분명한 분을 저는 좋아하거든요. 그때부터 그 연을 맺어서 생각해 보니까 한 한 45년 넘게 이리저리 연결해서 인생을 함께 살았더라고요. 저도
김: 예. 그 김현 그 입당동기인 김현 의원 얘기를 들어보면 그때 자기가 학창 시절에 이미 전설적인 분이었고 이해찬 총리가. 그리고 학생 운동하다가 한겨레 들어가서 언론 운동하려고 했다 이렇게 알고 계시더라고.
유: 꼭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그 당시에 이제 6월 항쟁이 성공하면서 드디어 이제 민주 사회 쪽으로 우리가 진입을 했잖아. 전환이 됐잖아요. 예. 그러면 학생동, 민주화 운동 하던 청년들이 앞으로 뭘 할 거냐가 문제가 된 거죠. 큰 흐름이 세 개로 가는데 첫 번째가 시민 단체하고 지역 운동, 시민 단체하고 지역 운동 쪽으로 간 사람들이 있고 그러니까 지역 시민 운동 또는 전국 시민 운동. 두 번째가 언론 운동 이게 한겨레 창간으로 이어지고요. 세 번째 정치. 음. 이렇게 간 거고. 이제 이해찬 대표가 대표님이 그 정치를 택한 거는 김대중 총재의 권유도 있었고 그러니까 87년 대선 때 그 재야가 김대중 후보 비판적 지지를 했고 그래서 제야의 대선 캠프도 뿌렸고 저도 그 말석에서 잔신부름하면서 그 캠프에 있었는데요. 그 그걸 겪고 나서 그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 국민 저항권을 행사하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 주로 전국 모든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인 시위를 하는 방식으로 했던 그 운동이 끝나고 나서 이제는 역사의 전장이 어디에 될 것인가? 어디가 될 것인가? 라고 봤을 때 이제 정치다. 그러니까 민주화를 위해서 어 아 20년 가까이 15년 20년 정도를 싸웠는데 음 이제 제도로서 이 민주화를 할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졌다.
김: 직선제 개헌. 그때 이미 30대 중반이셨죠.
유: 그렇죠. 30대 중반. 그때 딱 30대 중반점 됐을 때죠. 그래서 지금부터는 역사의 무대가 정치가 될 것이다. 음. 그렇게 판단한 분들이 정치로 갔죠. 그때 노무현 대통령도 그때 통일민주당 이제 오신 거고요. 그래서 그쪽으로 오신 거죠. 예. 민주화를 계속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그 무대, 그 전장으로 정치라는 무대를 택한 거죠. 예.
김: 그 이제 저는 그 시절은 잘 모르지만 얼핏 알기로는 운동권이 이제 정치로 가면 개량주의라고 한다든가 시민 운동을 해도 그랬지만 그러면서 그 끝내야 하는 삼김 시대에 합류한 그래서 약간 더럽혀진 이런 인식이 있었잖아요. 운동권에
유: 그렇죠. 예. 그 좀 이슬만 먹고 사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김: 근데 이해찬 전총리는 이게 이제 전장이 바뀌었다.
유: 그렇죠. 이제 자기 몸을 더럽 세상을 정할 수 있는 거죠. 그런 각오로 간 거죠.
김: 음. 언제 이해찬 정치인 이해찬에 보장이 되신 거예요? 뭐 제가 듣기로는 어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는데
유: 아예. 88년도에 당선이 되시고 그때까지 저는 이제 경찰에서 공식서 수배는 아닌데 뜯고 있어 가지고 숨어 있다가 이제 보좌관이 되면 이제 수배도 해결해 주겠다고. 그 실제로 잡으러 왔어요. 걔들이 제가 국회에 보정한 등록 신청을 하면 그 신원조회가 그때 그 당시 안기부에서 이제 진행이 되는데 한 달이 넘도록 신원조회의 결과가 안 나오고 있었고 지구당 사무실 건처로 애들이 나를 잡으러 와가지고 길거리에서 나를 잡았어요. 제가 뒹굴면서 뒹굴면서 예 그 영장도 없이 사람 잡아간다고 소리 질렀더니 그 대학동 지금 그때는 신림구동 거기 고시생들이 한 50명이 와르르 몰려와서 그 형사들 열명하고 멱살잡이를 자비하고 그 사이 저는 도망쳤죠.
김: 그리고 그날 밤에 이미 국회 보좌관이 됐는데
유: 예. 근데 아직 정식 등록이 안 됐어요. 신원조회가 안 나. 그래서 그날 밤에 이해찬 의원, 초선 의원이 치한 본부장한테 10원짜리 100원짜리 섞어 가면서 전화로 욕을 하고 그다음날 해결됐습니다. 그래서 딱 예. 그래서 이제 보좌관 등록도 하고 아니 필요가 꼭 있었네. 보자관이 돼.
김: 처음에는 뭐 꼭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그 이제 좋은 뜻으로 그렇게 우리는 이제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그 이해찬 대표님도 정치에 뛰어드신 거고 저는 그걸 알기 때문에 저분이 뭔가 능력 발휘를 할 수 있게끔 하려면 후배들이 또 밑에서 이제 함께 도와야 된다. 이런 생각으로 이제 한 거죠.
김: 근데 또 한 에피소드 따르면.. 저도 전해들은 거라 이제 본인한테 직접 어쭤보는 건 처음인데.. 그 결혼하려고 그랬는데 그 사정이 궁핍해 가지고 예 이해찬 사모님 반지 빼가지고 줬다 이거 맞습니까?
유: 그게 딱 정확하진 않은데 제가 그 경찰에서 쫓고 있을 때 저 그 강북의 은평구 신사동 신사동인데 강북 언평고 신사동에 그 연립주택 반지하에 숨어서 살았거든요. 예. 그 그래서 보좌관이 됐으니까 그걸 이제 보증금 50만 원짜리데 제 전 재산이 50만 원이었어요. 그때 29살 무렵에 그 집이 없잖아요. 그 전세는 뺐는데. 그래서 그 집에서 살았어요. 제가 이해찬 의원 집에서. 결혼할 때까지 한 5, 6개월 정도를 그 이해찬 의원의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먹으면서 그 집에 살면서 일을 했어요. 그때 이제 그 제가 결혼을 88년도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기 전에 직전에 결혼한다고 해서 이제 신림동에 집을 얻고 그 과정에서 돈이 없으니까 이제 좀 고민할 텐데 김정욱 여사가 본인 결혼 예물 반지였던 다이아 반지가 있는데 어 그게 이제 밑에 이 이렇게 이게 떨어져서 다 반지하고 분리가 돼서 알 따로 반지 따로 이렇게 있었어요. 어 그 이제 제가 돈이 없고 하니까 신부한테 줄 반지로 그거를 다시 반지를 맞췄으면 어떻했냐고 그래서 그 다이아를 주셨어요. 2부짜리 다이아. 그래서 제가 그걸로 그 인조 다이아 서버 요렇게 박아서 이쁘게 반지 만들어서 썼죠.
김: 그 다이아가 거기서 온 거는 아셨어요, 사모님의.
유: 어. 어, 그 그렇게 그렇게 된게 약간 와전돼서
김: 어, 예. 꼭 틀린 말은 아니고 예. 거의 맥락은 맞는 말이네요.
유: 예. 그래서 그 팔자 없는 다이아반지를
김: 나중에 돈 벌어서 갚아 주셨어. 그거.
유: 아니요. 그거는 먼방에서 갚는 거지. 무슨 돈으로 갚요? 예.
김: 근데 제가 이해찬 전총리 생전에 유시민 작가에 대해서 말하는 걸들은 적이 있어요.
유: 아, 그래요?
김: 예. 뭐 무슨 얘기하다가 나왔는데 저보고 뭐라 그랬냐면 윤시민 천재라 그랬어요.
유: 나한테 그런 말씀하신 적 없는데.
김: 유시민 천재라고 하고 그 얘기했을 때 참 좋아하시더라고. 그 왜 이총리가 반지까지 주고 그렇게 보좌관으로 꼭 쓰려고 했을까? 왜 좋아했을까?
유:그게 저까 이제 그 당시 70년대, 80년대 그 형님들이 많잖아요. 운동권에. 그 많은 분들을 알죠. 제가 아는데.. 이해찬 선배는 진짜 군더더기가 없는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대화를 하다 보면 궁금합니다. 예. 예. 그 이제 재야 운동할 때든 아니면 정치를 할 때든 어 그 본인의 사적인 욕망이라든가 맞아요. 어떤 욕심이라든가 또는 손익 계산이라든가 이게 느껴지잖아요. 근데 그 그거 있는게 당연하죠. 그런게 누구나 다 자기 인성이 있으니까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 지나치지 않으면 나쁜 것도 아니거든요. 근데 이분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논의를 하면 이것이 필요한 거 아닌가 옳은 거 아닌가 이것만 따지지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김: 맞다.
유: 생각을 그런 걸 생각한다는 느낌 자체가 없는 분이에요.
김: 맞다. 맞다. 저도 같은 느낌을 받았어.
유:예. 그 저는 그건 젊었을 때부터 그랬어요. 어. 그래서 이분 참 독특하다. 어, 맞아요. 예. 그 그런 점이 좋았고요.
김: 어. 어. 아, 군더더기가 없다. 저도 항상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참 깔끔한 분이다. 감정의 흔적 같은 게 지저보다 감정의 흔적이 없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덕지덕지 군더더기가 없다. 오케이. 이거 표현을 써야 되겠다.
유: 그게 뭐 저하고 성격도 많이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고 많이 개성도 다르고 다 다른데 그 점이 진짜 좋았어요.이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거든요.
김:음 그 본인이 근데 이 총리를 좋아한 점이고 이 총리가 왜 유시민를 좋아해?
유: 그건 잘 모르죠. 저 안 물어봤어요. 왜 저 좋아하세요라고. 예. 물어본 적 없어요. 근데 제 느낌에는 생각하시는 바가 있잖아요. 예. 근데 이제 잘 이해하는 거 같거든요. 내가 응. 잘 이해하시.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이 후배가 굉장히 정확하게 잘 이해를 하고 있고 그다음에 생각을 정치에서 구현해야 되는데 그 생각은 방향이나 목표가 중요한데 그걸 구현하는 데는 실무적인 음 그런 능력이 있어야 돼요. 일할 줄 알아야 알아야 되거든요. 근데 그거를 다 할 수는 없죠. 본인이. 근데 이런 방향으로이 일을 이렇게 하고 싶은데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맡기면 대체로 자신이 생각했던 거하고 좀 그 근사치로 비슷하게라도 일을 해 오는 그런 면이 있다고 보셨던 건 아닐까? 왜 너를 쓴다 이런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기 때문에 저 잘 몰라요. 그거는
김: 조순 민선1기 서울시장 당선될 때 95년 그때 그 이해찬 선대 본부장이었잖아요.
유: 예. 이때 정치권에서 이해찬의 그 선거 능력 이게 널리 알려진 계라고 하던데 무슨 일이 있어서
유: 아니 저는 그때 이제 독일에 있어서 사실 뭐 잘 모르고요. 그 그런 거는이 책에 보면 되게 잘 나와 있고요. 일일이 그런 얘기를 할 필요 없는데 제가 사실은 그, 이 대표님 보내 드리면서 아 이분이 참 지독한 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는 그런 일들 있잖아요. 구체적인 일들. 네. 근데 서울시장선거 때 박찬 무소속 후보가 1등 가고 있었는데 그걸 엎어치는 과정이라든가 아니면 1997년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얘기라든가 첫 정권 교체. 그 뒤에 뭐 교육부 장관으로서 일을 하고 국무총리로 일을 하고 쭉 했던 거예요. 탈당도 세 번씩이나 그 과정에서 하고 일곱 번 출마해서 일곱 번 당선되는 동안 소속당 당명이 다 달랐다는 거. 어.이런 문제들이 왜 일어났는가?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감수하면서 그 매번 계기에서 이해찬이라는 정치인이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했던가 그 점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나머지는 사실은 그 제가 특별한 얘기를 할 건 없어요. 예.
김: 뭐를 이루려고 했던 겁니까? 그때그때?
유: 그러면 그러니까 이제 지금이이 정치석 위원장인이 회고록 이거는 그냥 단순히 이해찬이라는 정치인이 자기에 있는 걸 쓴게 아니고요. 형식은 최민이 의원이 묻고 이해찬 대표가 답하는 형식으로 돼 있지만 한 2년 걸렸어요. 그러니까 매 시기별로 그 구술을 할 때마다 그 시기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배석했어요. 저도 여러 차례 배석했거든요.
김: 음. 음.
유: 그래서 말씀하시면 배석한 사람들이 그때 이랬고 저랬고 같이 기억도 좀 다듬고 서로 기억이 다르면 자료도 찾아보고 그이 대화체로 돼 있지만 이거는 사실은 어 다 검증이 된 기록이에요. 좀 역사 기록
김: 어 그렇구나.
유: 예. 어 그 그런데 이분이 하려고 했던 거는 이제 87년도에 정치에 들어올 때 그때 생각이 이런 거였죠. 71년도에 대학 들어와서 그 20년 가까이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이 민주화라는 목표는 계속된다. 근데 방식이 달라져야 된다. 무대가 바뀌고. 어이 과거에는 재야 단체, 시민 단체, 운동 단체였다면 이제는 정당이다. 정당. 정당이 앞으로 민주화,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제도의 기반이 마련됐는데 실제로 이것을 해내는 주체는 정당일 수밖에 없다. 근데 그 당시 정당이네 개 있었죠.
김: 예.
유: 그 민정당 전두환이 거 그다음에 그 노태우가 여기 대통령이 됐어. 그때 8, 7년 대선 때 그다음에 신민주 공화당에라가서 이제 유신 잔당예. 그 이제 김종필이 충청도를 꽉 잡고 있었고요. 그러니까 TK 지역의 민정당, 충청도의 신민주 공화당. 이게 이제 보수정당 또는 우익정당 또는 극우정당이고요. 그다음에 PK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이게 이제 중도보수 또는 중도 리버럴 이런 정당이었고 그다음에 평민당 비슷한 성격의 호남에 기반을 둔 평민당 이 네 개가 있었어요. 예. 근데 대선을 치르면서 어이 이해찬이라는 운동가가 관찰을 해 보니까 앞에 두 개는 이거는 민주화의 걸림돌이고 우리가 싸워야 될 적이에요. 또 통일민주당은 신뢰가 안 가는 거예요. 어. 거기다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3등을 했네. 1% 차이로. 그니까 이선 후퇴론, 퇴진론 이런게 나올 때 그 이분이 그때 뭘 걱정을 했냐면 일본처럼 되면 안 된다. 어 그러면 제도가 민주주의이어도 민주주의가 될 수가 없다. 어 그 그래서이 평민당은 잘못하면 급진화돼 가지고 일본 사회당이나 공산당이나 이런 데처럼 (김: 쪼그아라든다.) 예. 그 그 완전 소수정당 급진화할 위험이 있다. 그럼이 나머지 세 개는 합쳐 가지고 일본 민재당 같은 거대 집권당이 될 수 있다. 어 일본 자민당. 예. 일본 자민당 같은 그 되면 지금까지 민주화 운동을 해온게 아무 소용이 없다 이거는. 어 굉장한 통찰이다. 예. 그래서이 평민당 말고는 우리가 장기적으로 볼 때 음 민주주의를 실현해나 실제로 구현해 나가는 정치 주체로서의 정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여기가 김: 실제 삼당 합당했죠.
유: 그러니까이 이해찬의 기획이라는게 얼마나 대단하냐면요. 40년 전이에요. 40년 전에이 사태를이 사태를 우려하면서 지금 평민당을 살려야 된다. 어 이거는 지금 호남이라는 농업 중심의 지역에 고립되 있는 정당인데이 당을 살려서 전국적 기반을 가진 정당으로 발전시키지 않고는 한국 정치를 앞으로 밀고 나갈 수가 없고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가 없다. 이렇게 판단을 한 거예요. 그래서 그 욕 먹고 있는 평민당에 98명의 동지들과 함께 입당을 한 거예요.
김: 그때 욕 많이 먹었어요.
유: 엄청 먹었죠. 예. 그 그리고 그 계획 그 기획 그 평민당을 모태로 해서 민주적 국민정당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어요. 민주적 국민정당. 이때 민적 국민정당이라는 내부 질서가 민주적으로 돼 있어야 되고 운영을 민주적으로 하는 정당이어야 되고 그다음에 정책을 통해서 지역적 고립을 벗어나서 전국적인 지역적으로 볼 때 전국적인 또 계층적으로 볼 때 다수의 서민과 중산층에게 뿌리내린 그런 정당으로이 정당이 평민당을 발전시켜야 된다. (김: 88년에?) 88년에 그렇게 판단을 하고 그 당에 들어온 거예요. 그리고 그 기획을 정치하는 동안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계속 밀고 나온 거야 지금까지.
김: 그 그래서 마지막 당대표 하실 때 플랫폼 정당 한다면서
유: 그렇죠.
김: 전당원 투표 예 도입하고 했던게 그 88년에 기획이 완성된 거네요.
유: 예. 그게 35년간 해서 본인이 당대표가 돼 가지고 180석 와이 되는 거대 전국 정당을 만들어 낸 거예요. 지금은 사실 TK 지역을 제외하고 TK에도 30% 수준의 지지율이 있고요. 이제 PK 지역은 이제 비슷비슷해졌죠. 나머지 지역은 우세해잖아요.
김: 그렇죠.
유: 이 이 기획을 35년 동안 밀고 나와서 완성까지는 아니지만 거의 완성을 목전에 둔 상태로 가신 거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이해찬 대표님을 부를 때 마지막 여러 해 동안 대표를 지내시고 난 뒤로는 언제나 대표님으로 불렀어요, 저는. 음. 왜냐면 그분이 뭘 하려고 정치에 들어왔는지 알기 때문에.
김: 아 이거 대단한 스토리다 이거.
유: 민주당의 대표라는 것이 정치인 이해 이해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이에요. 음. 그 완성은 못 했지만 완성을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자신이 35년 전에 했던 기획을 35년간 밀고 온 거예요.
김: 완성할 수 있는 판을 깔아놨죠.
유: 예.
김: 전당원 투표를 할 수 있었어야지 그 뒤에 마 벌어진 민당이 여러 가지 개혁들이 가능했죠.
유: 그러니까 이해찬이라는 정치는 이해하려면이 면을 봐야 돼요. 그러니까 제가 저는 2003년도에 국회 왔잖아요. 26대 국회 마지막 1년 동안을 보궐 선거에 들어서 했는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2002년도 대선을 앞두고 그 정동영 의원이 중심이 되어서 동교동계에 들이박았잖아요. 그때
김: 그렇죠.
유: 그 그 그래 가지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당에서 손을 뗐어요. 평민당에서.
김: 음. 기억납니다.
유: 그러니까 이제 그 이해찬이 정당에 들어올 때는 4당 체제가 되어 있었고 평민당이 이제 중앙정치에서는 민주화를 추진하는 세력인데 정작 그 평민당 자체는 왕정이었다고요.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이 되어서 당총재를 임명하는 시스템이었어요.
김: 음. 그때는 다 정당이 그랬으니까.
유: 예. 그렇죠. 그리고 야당 시절에는 전국구 의석 팔아 가지고 돈 마련해서 수도권에 젊은 후보들 지원하고 이렇게 해서 김대중 총재 혼자서 당을 꾸려온 그런 왕정이었어요. 근데 2001년도에 이 왕정이 무너진 거예요. 음. 그럼 어디로 가야 돼요? 공화정으로 가야죠. 음. 근데 공화정으로 갈 수 있는 토대가 안 돼 있으니까 귀족정으로 가는 거예요. 계파보스들이 나눠먹는 정당으로 가게 돼 있었어요. 그 2002년도에 그거를 막아보기 위해서 국민 경선을 도입한 거예요. 공 정당을 김대중 대통령이 지배하던 그 당시 여당이에요. 이 정당을 위 대단한 걸출한 지도자가 다스리는 왕정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해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공화정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한 최초의 기획. 그게 국민경선이었고 그 흐름을 탄 것이 노무현 후보였고요. 그때 그 당으로 밀고 들어온게 노사모였어요.
김: 노무현을 탄생시킨 기획이기도 하구나.
유: 그렇죠. 음. 그런데
김: 그때도 역시 플랫폼을 깔아서 만들었던 거네요.
유:그렇죠. 그 그때 제가 2003년도에 들어와 보니까 들어와서 이제 진짜 열린우리당을 창당해서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 어 내부가 공화정으로 되어 있는 정당을 해 보려고 했는데 정말 1996년 2000년에 들어와 있던 이런 86 그룹 정치 누구도이 기획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뿐만 뿐만 아니라 70년대 80년대 운동권 출신의 여러 계보들이 있었고 지금 의원식 국회의장이 포함되어 있는 소위 GT계, 여기 국회의원들 아무도 관심 보이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관심 보인 사람이 이해찬 의원이었어요.
김: 그때는 그 시대를 못 읽었어요. 아무도
유: 그 그 그러니까 이해찬이라는이 정치인는 마음속에 민주적 국민정당의 꿈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그게 열린 우리당 기획이 나중에 실패해서 대통합 민주주당으로 가잖아요. 희망이 없다 보고 그때 탈당을 한 거예요. 음. 그때 28년도에 탈당을 하고 불출마하고 그러고 있다가 2011년도에 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가 다시 정치로 들어오면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시민 사회에 문성근 선배가 '100만 송이' 운동하면서 다시 좌절했던 열린우리당의 공화제 실험 이거를 다시 민주당으로 밀고 들어서 한 거고 그때도 저보고 같이 하자고 막 그랬어요. 저는 싫다 그랬죠. 실패를 큰 실패를 봤기 때문에. 예. 저는 더 이상 민주당을 개혁하는 일은 일에 내 인생을 쓰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기획을 하고 싶다. 저는 바깥에서 다른 당을 만들고 뭐 진보정당 통합을 해보고 뭐이 짓을 하다가 또 망한 거고.
김: 맞아. 그때 제가 만났을 때 아 이거 하다가 망할 거라고 제가 여러 번 얘기했는데 예 그래도 하겠다고 하시다가 결국 망하게.
유: 왜냐면 오답 노트도 필요하니까 예 맞아 그러니까 이제 이해찬 정치인 이해찬은 정답 노트를 찾아갔고요. 저는 오답 노트를 만들어 간 거죠. 어, 그렇지만한 사람은 정답을 찾아가고 한 사람은 오답노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늘 교신하고 대화하고 권유하고 거절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이렇게 저는 이분하고 살아왔어요. 근데 결국 보니까 되더라고요.
김: 아, 그러니까 야, 그러니까 본인이 당대표가 돼서 했던 것은 88년에 이미 기획이었고 그 틀을 본인이 완성하고 당대표를 내려놓고
유: 이제 그 사이에 그때는 아날로그 시대였어요. 87년도에 그 기획을 할 때는 근데 그 그 사이에 인터넷이 9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 보편화하고
김: 예.
유: 그리고 그 인터넷의 위력이 2002년도 대선 때 처음으로 한번 나타났고 아직 모바일은 안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이 공화정을 대중정당 국민정당 안에서 공화정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미비했기 때문에 그때는 잘 안 됐던 거예요.
김: 시도를 했는데 잘 안 됐어.
유: 그니까 저같이 성질과 그걸 못 참고 뛰쳐 나간 거고.
김: 음. 해보겠다고.
유: 예. 근데 이분은 끝까지이 당 안에서 자신이 30대 중반일 때 했던 기획을 밀고 간 거죠. 그리고 모바일이 붙으면서 기술적 조건이 마련이 됐고 그래서 드디어 지금 시장까지 와서 민주당이 어마어마한 정당이 된 거죠. 전년도에 100만 당원 얘기했던 그게 그러니깐요. 이게 현실이 돼 있는 거예요.
김: 100만 당원 만들어 보겠다고 했던게 지금 500만이 됐는데 그 500만으로 플랫폼 정당 할 때, 플랫폼이 이해찬 플랫폼이에요.
유: 그러니까 참 대단한 분이죠. 그러니까 그 아직도 보편화되지 않았던 모바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점에 생각했던 그 그림대로 자신의 생애 전체를 통틀어서 새로운 기술적 변화에 적응하면서 받아들이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 저는 이게 참 대단한 점이었다고 생각하고요.이 얘기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 말 하고 싶어서 오늘 나오겠다 그랬어요.
김: 듣고 보니까 확 와닿았습니다. 저는 끝단은 그렇게 봤는데 아 지금 현재 민주당을 만든 분은 이해찬 당대표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88년에 시작된 건는 몰랐나요?
유: 제가 이제 88년부터 90년까지 2년 정도 이제 2년 한 반 가까이 보좌관을 했는데요. 어 저는 이제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고 이해산 대표님은 자기 남은 인생 인생의 후반부를 완전히 정치에 바치기로 그때 결심을 했던 거예요. 어, 그래서 그 뭐랄까요? 그러니까 저는 진심으로 정치를 하지 않았어요.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했지만
김: 국회의원 처음 하셨을 때 생각나요. 예. 동네에서 한번 봤는데 제가 아 저 양반은 국회원 계속할 생각은 없는 거 같아 그랬었거든.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 국회원이 됐을 뿐이었는데 그때
유: 그렇죠. 그니까 저는 날리 정치인이었고 이분은 진짜 정치인이거든.
김: 제가 그때 옆동네 살았거든요. 그래서 맥주 그때는 술 마셨으니까 맥주 마셨는데 생각이 나요. 야 저 양반은 정치 계속할 생각 없는 거 같다.
유:이렇게. 어 그런 점이고 사실 어 그래서 제가 좀 안타까운게 이해찬 대표가 정치를 해온 그 35년 동안이 민주당이라는 당 안에서 수많은 정치이 있었는데 때마다 무더기로 사라져 갔어요. 그 사람들이 맞아요.이 이 언제 사라져 갔냐 하면 이게 지금 정말 절묘한 건데이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발전을 추동해 나갈 주체로서의 민주당 민주적 국민정당 건설을 저해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다 날아갔어요. 그 이해찬 대표가 초선 후반부에 어디로 옮겼냐면 전반부에는 노동위원회를 하다가요. 후반부에는 재경 재정 경제 위원회로 옮겨갔어요. 왜 두 개를 했게요? 하필이면 그 많은 위원회 중에 그 그 당시 평민당은 호남이 기반이잖아요. 예. 그 의원들이 그땐 쌀수매 제도가 있을 때여 가지고 가을만 되면 쌀수매가 인상하라고 머리띠하고 머리 밀고 밥 굶고 이거를 해마다 했습니다. 정말 쌀값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역구가 거기니까. 음. 이해찬 대표가 무슨 얘기를 하냐면 이렇게 해서는 국민정당으로 갈 수 없다. 음. 한국 사회는 이미 산업 사회에 들어서 있는데 노동 문제 노동 쟁의에는 관심이 없고 응음 쌀수매가에는 목숨 걸고 싸운다. 이렇게 되면 고립의 길밖에 안 남는다. 그래서 노동위원회를 자원했던 거예요. 처음에 음 우리 당의 노동을 가져와야 된다. 두 번째는 그것만으로 안 된다. 우리가 국민정당으로서 국민의 신임을 받으려면 우리 주장만 있었으면 되는 있어서 되는게 아니라 유능해야 된다고. 음. 경제. 음. 그래서 재정 경제 위원을 옮겨간 거예요. 그때까지 말하더라도 운동권은 선명하기만 됐어. 선명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이제는 유능해야 된다. 민주적 국민정당이 필요하다는 걸 외쳐 갖고는 그 당을 만들 수가 없고. 그러니까 이제 회사에서 노동조합 만들 때요. 그 옛날에 많이들 이제 대학생들이 가서 공장에 위장 취업해 갖고 많이 만들었잖아요. 맨 먼저 뭘 하게요? 동호회 활동을 한다고요. 신앙 모임이라든가 봉사 활동이라든가 또는 열심히 자격증을 따서 기계를 잘 다루고 그 평소에 공장에서 기계 잘 다루는 놈이 모임하자 그러면 사람들이 나오지. 맨날 불량이나 내고 기계 고장내는 놈이 모임하자 그러면 나오겠어요? 그니까 뭔가를 하려면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과 경제 두 개다. 그때도 그런 얘기 했어요. 그러니까 결국 민주당이 보면 지금 특히 이재명 대통령 정부 들어와서 산업재해 문제라든가 최저임금 문제라든가 어떤 그 노동자 인권 문제라든 관심이 많잖아요. 이 노선 위에 있는 거야. 이재명 대통령이
김: 그래서 그랬을까요? 지금 사라진 정치인들 얘기하셨는데 그 이해찬 총리가 보면 그리고 살린 정치인들이 있어요. 노무현도 그 플랫폼을 깔아줘서 살린 것이고 안 그랬으면 노무현 대통 안 나왔죠.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이 플랫폼이 없었으면 소위 귀족정을 원하는 정치인들에 치어 가지고 밟혀 죽었을 거예요. 그죠? 이재명 대통령이 실제 고생고생할 때 그리고 그 제명하라 얘기도 많았거든요. 근데 이해찬 총리가이 강력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더라고.
유: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이이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가 됐을 때 후단협이라고 만들어져 가지고 강 안에서 쫓아 내 달라고 막 그랬습니다. 후단협 후보 단일라 협의해라 그래. 그 사람들이 처음에 했던 유명한 말이 있어요. 후보 되더니 설렁탕한 거를 안 샀다. 그 후년에 왕창 다 날아갔습니다. 2002년도에. 그렇죠. 다 날아갔죠. 그죠. 그다음에 열린우리당 망가지고 나서 대통한 민주신당 주도했던 사람들 손학교 전 대표 포함해서 다 끝났습니다. 다 날아갔죠. 지난번 총선 때 보세요. 이거 이런이 국민정당 민주적 국민정당의 내부 시스템을 수용을 못 해 가지고 그 당원들이 압도적으로 뽑아 놓은 당대표를 잡아가라고 가서 막 국회에서 체포동안 찬성표 몰래 찍고 (김: 소위 비명애들) 싹 다 날아갔습니다. 다 날아갔죠. 이게 무슨 뜻이야?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게 이해찬의 기획이라는 거는 역사의 흐름을 보는 거예요. 그니까 지금 사람들이 의식을 못 해서 그렇지 매번 중요한 선거나 정치적 고비가 있을 때마다 뭉텅뭉텅 정치인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왜 나오냐?
김: 날아간 사람들은 몰라요. 자신들은 본인도 몰라요. 왜 날아갔는지 그 날린 사람들도 잘 몰라. 그냥 날렸어요. 근데 보면 결국은 어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우리나라의 민주적 기본 질서를 튼튼히 하면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세력. 이게 1987년 평민당에서 출발해서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책임당원이 백수십만이 되어 있는 여기까지 오는 이 흐름이 오는 과정에서 이해찬 대표는 매번 그 메인스트림을 새로 만들어내는 일에 가담했어요.
김: 아 천재예요. 그 어렴풋이 알던게 아주 분명해졌는데 미워서 날렸다고 하셨는데 본인도 사실 정확게 말하라고 말을 못 하는데 왠지 모르는데 미운 거지. 그죠. 왜 미운지가 있는 거죠. 그 왜 미운지가 이게 이 흐름이 안 맞는데. 역사의 흐름에
유: 지금도 보면 다음 총선에 날아갈 사람 많이 보여요. 제 눈에는.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오늘 왜 가지고 나왔냐면 민주당에서 정치하시는 분들은이 이해찬 대표의 정치적 유언장을 읽으셔야 돼요. 자신이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입지.. 올바를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이익이 되는 입질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그 추도사에서 그 영결식할 때 김민석 총리가 좀 울면서 앞으로 누구하고 상의해야 되고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나 이렇게 하는데 울지 마요. 여기 다 있어. 책에 다 있어.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이 원칙에 입각해서 그 문제를 어떻게 대체했는지가 다 나와 있어요. 그 그렇게 보라고 이 책을 남긴 거거든요.이 책을 보시라고요. 지방 의원 출마를 하려는 사람을 포함해서 모든 민주당에서 직업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보셔야 돼요. 그 민주당 당원들도 보셔야 돼요.이 당이 어디에서 출발했어? 어디를 향해서 지금까지 왔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서 자신이 지금 가입해 있는 정당이 어떤 단체인지를 이해하셔야 돼요.
김: 그 권리 당원들이 밉다고 표현한 그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밉다고 하는게 그 사람들은 이 책으로 쓰지는 못했지만 흐름을 흐름과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라 이게 안 맞는데 불편한데이 사람들도 틀린 거 같은데 그걸 그냥 채득해서 아는 거거든요. 그 표로 행사하는 거예요.
유: 제일 많이 날아가는게 이제 귀족정.. 귀족정에 집착하는 사람이 날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이 당원들이 공화정이라는 거는 우리 대한민국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것처럼 당의 주권이 당원에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걸 말하는 거예요. 이 당원이 의사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에요.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해요. 그러나 우리가 소수가 결정하는 것보다는 다수가 결정하는 것이 더 나은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리가 인정하기 때문에 이 공화정을 하는 거잖아요. 이 공화정의 그 당내에서 공화정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 당내주의인데 이 원칙에 위배되는 정치인들은 다 날아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날아가더라고.
김: 한 때 인기가 있고 자기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자신감의 발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기 있고 지명도 있다는 자산은 금방 날라가더라고요.
유: 그러니까 지금 민주당에서 무슨 대의원의 특권을 폐지하는 1인 1표제 이런 거잖아. 그 대의원의 투표권이 수십배 이렇게 옛날에는 수백배 됐고요. 일반 당원에 이게 이게 군주정의 잔존물이에요. 옛날 김대중 총재께서 왕 철인 정치를 하실 때 그 당에서는 (김: 제왕적) 예. 그 총 당재가 지구당 위원장을 다 임명하고 지구당 위원장이 대의원을 임명하고 이 구조에 있었던 음 그 왕정의 잔재라고요. 이게 근데 이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김: 그렇죠.) 그게 왜 집착하겠어요? 자기가 과두 지배자 또는 귀족이 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 진짜 조심해야 돼요. 이거 조심해야 됩니다.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뭐 국회의원 된게 대단한 거 같죠? 별 거 아니에요. 당원들이 외면하면 그냥 끝나는 거예요.
김: 오신님이 그러면 어 굵직한 논란 이제 일인 일표제 말씀 마셨으니까 한두 가지만 더올게요. 예를 들어서 검찰 계약 관련해서 이제 주도 부처의 마인드하고 민주당의 온도차가 실제로 있는 거 같거든요. 주도 부처가 아니고요. 예. 그 장관들이요. 그러니까 무슨 부처에 무슨 의견이 있어요?
김: 이게 공소청, 중수청 뭐 보안 수사권이나 뭐 수사 사법관이나 이런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거 어떻게 보세요?
유: 예. 이거는 저는 이제 한 한참 전부터 벌써 위험하다고 봤어요. 음. 그래서 제가 구체적으로는 이제 대통령이 열심히 하고 잘하고 계신데 부담이 될까 봐 이제 말을 좀 삼가해 왔는데 입법 예고라는 거는 그냥 되는게 아니거든요. 입법 예고안을 확장하기 전까지 이거는 이제 법무부하고 행안부가 관련되어 있는 복수 둘 이상의 부처가 관련돼 있는 거죠. 음. 그러면 이것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추진단이 있었기 때문에 범 범정부적인 합의 없이는 법령이 나올 수 없어요.
김: 음. 부처관 이견 조종되어야 나오죠.
유: 그럼요. 그러니까 김민석 총리가 이걸 뭐 이거를 오케이 안 했는데 나왔다 그러면 이거는 정부 내 무질서가 있다는 뜻이고요. 질서가 없다는 뜻이에요. 총리가 이걸 알고 내보냈다면 총리가 해명을 하고 바로 잡아야 돼요. 그렇잖아요.
김: 그렇죠. 책임 소지를 따르자면 예.
유:제가 한미 FTA 한참 진행될 때 약관 제도 변경하는 거 입법 예고하는 문제를 가지고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 본부장하고 여러 차례 대통령 주제 회의에서 충돌를 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음. 토론했죠. 토론.
김: 보건복지부 장관하실 때.
유: 예. 그 결국은 그거는 총리실에서 개입해 가지고 조정해서 입법 예고 기관이라든가 입법 예고 시점이라든가 이런 거를 절충을 했거든요. 그 정도로 부처간에 이견이 있으면 정부 내에서 그 정리하는 절차가 있어야 돼요. 만약 그런 절차가 없다 그러면 정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정부 내에. 그 그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서 그런 안이 입법 예고되었다면 전체적으로이 정부의 핵심 인사들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저는 이제 이 얘기를 꼭 해 주고 싶어요. 2003년 초 4월에 제가 보궐 선거에서 당선이 됐는데 국회의원 선거에 그때 제가 아 그 고양시에서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면 민주당의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들인 분들이 저한테 뭐라고 했냐면 악수하면서 당신은 찍어 줄게. 그냥 노 대통령은 그러면 안 돼. 음. 이게 뭐 때문이었냐? 대북 송금 특법을 수용한 것 때문에요. 그러니까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걸 수용하신 것이 논리적으로 법률적으로 하자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검찰이 무제한으로 들고 파는 거를 막기 위해서 한면도 있고 그다음에 통치 행위론으로 이거를 거부권을 발동하기 어려웠어요. 왜냐면 김대중 대통령은 모르셨던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김: DJ 시절의 대북 송금을 얘기하는 겁니다.) 예. 그 저 1차남북 정상회담 그 현대 쪽에서 이제 돈 보낸게 문제가 된 거죠. 결국은 논리적으로 법리적으로는 옳은 판단이었어요. 음. 그러나 그것을 평민당 시절부터 당원이었던 그렇죠. 메인스트림이 핵심 지지층 쪽에서는 배신 행위로 간주한 거예요. 그렇죠. 그러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초장에 확 무너지고 초반에 무너졌어요. 그래서 예. 그러면서 내 당내 직권당 내부에서 대통령을 비토하는 분위기가 일부 생기고 그게 이제 제가 장관할 때 유시민 입각 반대 하던 그 그때는 뭐 안정적 개혁을 위한 뭐면 안개모 뭐 거기도 다 날아갔습니다. 거의 다
김: ㅋㅋㅋㅋ 백바지 입고 들어가셨을때
유: 예 그 그렇게 되면서 결국 탄핵으로 이어지거든요. 야당이 만만하게 보고 지지율이 낮으니까. 그러니까이 검찰 개혁 문제는 법리적이고 논리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에요. 이거는 그 맞습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와의 공개 토론을 시작한 때부터 시작해서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축적되 있었던 그러니까 민주적 국민정당으로서 민주당. 더불어 민주당의 주류 음 핵심지지층 여기에서 하는 깃발 같은 존재가 된 거예요.
김:동의합니다.
유: 이거를 만약 그 수사 기소 분리라는 이 대원칙을 철저하게 실현하기 위해서 제도 변화를 했다가 일부 부작용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나중에 보완하면 돼요. 지금 뭐 무슨 무슨 보안 수사권이니 하는지도 않는 이런 얘기들을 가지고 그 저는 특히 정성호 법무 장관이 국회 상임위에 나와 가지고 모든 검사가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라든가 또는 뭐 이런 얘기한 거 있잖아. 그전에.. 모욕적이었어요. 제 생각에는. 왜냐면 지금까지 검찰 개혁 주장한 사람이 사람들이 검사가 다 나쁜 놈들이기 때문에 검찰 권한을 뺐으라고 해서 검찰 개혁을 주장한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 검찰 계획의 목표는 국민은 인권을 보호하는 거라는 걸 확고한 신념이에요. 근데 그렇게 검찰 개혁을 하면 국민 인권 보호가 안 된다고. 무슨 그런 얘기가 있어요? 그러면 그거는 지금까지 조국 사태 때부터 시작해서 서초동에서 어마어마한 집회를 했던 그 모든 시민들을 모욕하는 발언이거든요. 저는 그런 거 그 망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인식으로이 검찰 개혁 문제를 계속 다루게 되면 이재명 대통령이 굉장히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을 저는 굉장히 많이 하고 있죠. 어 이거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김: 저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안은 심각하게 바라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 네. 이거는 그 뭐 정성호 장관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다 안 맞다를 떠나서 그것은 민주당의 정신을 배신하는 걸로 간주될 겁니다. 예. 그렇게 저는 생각해요.
김: 자, 한 가지만 볼게요. 더 아,이 나온 김은 내일도 한번..
유: 아잇!
김: ㅋㅋㅋㅋㅋ 그러면 나오신 김에 뽕을 뽑아야 되니까. 어, 요게 가장데 최근에 정청래 대표가 이제 조국당 합당 문제를 꺼내들었어요. 그 쇄빙선은 바깥에 있어야지부터 시작해 가지고 야, 지방 선거 끝나고 얘기해야지. 아니냐? 지금 해도 돼. 막 뒤섞여서 얘기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이 문제는.
유: 그 이제 두 가지 차원에서 봐야 되는데요. 첫 번째는 우선 합당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예요. 두 번째는 바람직하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되냐? 그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지금 두 개가 뒤섞여 있어요.
김: 뒤섞여 있죠.
유: 그러니까 합당에 반대하는 사람은 합당에 반대하는 이 이유를 얘기를 해야 돼요. 절차를 가지고 시비를걸지 말고요. 자기가 찬성하면 절차 가지고 시비 걸겠어요? 그러니까 내심 반대하는데 반대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을 때 절차 갖고 시비 거는 거거든. 보통 그렇죠. 그 두 개를 섞어 놓으면 해법이 없어요. 예. 우선 첫 번째 합당이 필요한가 좋은 일인가? 그 점을 보면 이해찬 대표님 그 연결식 때 그 추도사 했던 분들 중에 마지막으로 한 분이 백낙청 교수가 하셨어요. 예. 그거 잘 보셔야 돼요. 그 지금이 합당 문제를 논하는 분들은 그에 대해서 의견을내는 분들은 그 백낙청 교수의 추도사 마지막 부분을 주목하셔야 돼요. 그 저는 그게 원래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고민해야 될 문제였다고 봐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이 민주적 국민정당이 이해찬 정치인 이해찬의 필생의 과제였다는 점을 얘기하셨어요. 거기서 그 백락청 선생님은 워낙 잘 이해하세요. 저 다음으로 이해찬을 잘 이해하는 분 같아.(김:ㅋㅋㅋㅋ) 근데 그분이 마지막에 그 민주적 국민정당으로서의 민주당이 모든 짐을 떠고 국가를 운영해 가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변혁적 중도라는 말 표현을 하셨는데 변혁적 중도 하여튼 그게 뭐든 간에 음 좀 변화를 지향하는 중도정당으로서 다른 정당을 아우르면서 연합해서 정치 한국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 음 생각해 봐야 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어요.
김: 본질적인 질문 그니까 당신
유: 그러니까 백락 선생 자신은 의견이 다르다고 얘기했어요. 이해찬 대표하고. 음. 그게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조국당이 민주당과 따로 존재하면서 연합 정치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좋은가? 한국 정치에 좋은가? 아니면 두 당을 합쳐서 한꺼번에 가는 것이 좋은가? 합쳐서 한꺼번에 가는 것이 이해찬의 기획에 가까워요.
김: 그렇죠.
유: 예. 그 합치지 않고 따로 가면서 지혜롭게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백락청 선생의 변혁적 중도주의 기획에 가까워요.
김: 이해찬총리한테 안 물어봐보도 알 것 같아. 답을.
유: 예. 이해찬 총리의 답은 뭐냐? 합칠 수 있으면 빨리 합치고 합치는게 어려우면 공존해라. 이게 답이에요. 음. 이해찬 대표도 무조건 한 정당이 돼야 돼. 이건 아니에요. 서로 마음이 맞아서 합칠 수 있으면 합치 합치고 그러니까 그이 정치적 위원장에 들어 있는이이 프레임 음 그 사고 방식 분석의 틀 이거에 따르면 지방 선거전에 합칠 수 합치는 걸로 마음이 모아지면 빨리 합쳐 버리고 음 그게 잘 안 되면 다음 기회를 보고 다음 기회에도 어려우면 서로 우호적으로 공존할 길을 찾아라. 음 그게 답이에요.
김: 그게 답이죠.
유: 예. 괜히 무슨 절차가 어떻다이 걸지 말고요. 음. 우선 각자는이 기획 민주당이 왼쪽부터 시작해서 맨 왼쪽만 빼고 중도 좌부터 중도까지 다 어우르는 민주적 국민정당으로서 전적으로 대한민국을 책임져 나가는 이 기획이 좋은가? 아니다. 그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 그 민주당은 지금처럼 그 중도 보수까지를 포괄하는음 중도정당으로 가고 왼쪽에 다른 정당들이 한두 개 더 있으면서 연합해나가는 것이 좋지 않냐? 내가 뭐 조국당이 싫어서가 아니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더 좋기 때문에 나는 반대한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돼요. 근데 이것 이도 저도 아니게 무슨 DNA 논쟁이나 하고 있고 이게 정말 유치하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논의하면 안 돼요. 이해찬 대표님 계시면 불러다가 그 그렇게 논쟁하지 말고 제대로 본질을 가지고 돌러내라 이렇게 하실 것 같아요.
김: 유시민 작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해찬 총리는 그렇게 얘기했을 것 같아요.이 사안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둘 중에
유: 저도 이해찬 대표님하고 생각이 같아요. 그러니까 서로 논의해 보고 이게 조국당은 이제 저는 생존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생존할 만한 지혜와 역량이 있냐 구조적으로는 생존할 수 있는데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이 있냐? 이제 그게 문제인 거예요. 예. 조국당은 첫 번째 그 문제가 있고. 두 번째는 조국 대표예요. 대통령이 되어서 나라를 책임질 자세를 갖고 있다면 합쳐야 돼요. 빨리. 그러니까 지류에는 큰 배를 띄우지 못해요. 큰배를 띄우려면 반드시 본류를 타야 됩니다. 지류를 타면 저처럼 될 거예요.
김: ㅋㅋㅋㅋㅋ 나처럼.
유: 예. 그 그 그래서 조국당의 당원과 당직자들도 생각해 봐야 돼요. 우리가 3년은 너무 길다. 윤석열 정권 심판 조기 정식 이걸 목표로서 나왔잖아요. 목표 달성을 했어요. 그럼 해산하는게 맞아요. 원래 원칙대로 냉정하게 말하면.
김: 음.
유: 근데 조직이라는 걸 한번 생기고 나면 계속 생존하려고 그러거든. 그래서 조국당에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좋은 점은 사회권 선진국이라는 의제 있잖아요. 그다음에 검찰 개혁에 대한 확고한 입장 현안으로서, 이 두 개가 조국당에서 제일 중요한 겁니다. 그 세 번째가 조국이라는 존재, 정치인의 존재. 이 세 가지가 조국당의 자산이거든요. 그 요것만 가지고 계속 갈 수 있냐? 아니면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민주적 국민정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할 거냐? 이거를 그들도 결정해야 돼요. 근데 지금 조국당의 입장은 어 우린 다 할 수 있어라는 입장 같아요. 그래서..
김: 민주당이 정의가 안 된 거 아니냐?
유: 이거 예. 그래서 조국 대표에게 전권 위임을 한 거죠. 자기들 내부에서는 여러 판단이 있지만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자기들도 확정할 수가 없으니 대표에게 전권을 준다. 그거 잘한 결정이에요. 거기까지 잘됐죠. 결정은. 예. 민주당 내에서 음. 이거를 그렇게 막 지지고 볶고 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판단을 해야 돼요. 그 합당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 그것을 당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논의하지 말고 대한민국과 국민의 이익 한국 정치 전체를 놓고 고민하시라고요. 어떤 얘기를 해도 괜찮아요. 반대해도 되고 찬성해도 돼요. 문제는 합당한 논거를 가지고 음 초점을 얻다 두고 논의할 거냐 그 문제인 거죠. 예. 지금 이렇게 무슨 (누구처럼) "왜 나한테 미리 얘기하냐" 그렇게.. 성질를 내면요. 그 이게 민주당 정치인들 잘 보셔야 돼요. 당대표나 당지도를 비판하는 거 언제나 필요한 일이에요. 근데 당원들이나 시민들이 볼 때 아 일이 잘되게 하려고 음 저렇게 비판하는구나 또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면 더 좋아질까 어 어떤 것이 국민에게 더 좋을까 이걸 고민하면서 서로 이견이 있구나 이러면 괜찮아요. 그런 사람
김: 그러면 귀신같이 알아봐요.
유: 예. 그런 사람은 국민들이 알아줘요. 예. 근데 기분 나빠. 그래서 자기 감정을 못 이겨 가지고 화가 나서 공격한다든가 또는 알량한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한다든가 이런 인상을 좀 그다음 차례로 날아가거든요. 그게
김:그거 잘 알아본다니까.
유:네. 지금 위험수위에 와 있는 정치인들이 여럿 보여요. 빨리 이해찬 회고록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 예.
김: 자. 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긴 책광고였고요.
유: 그리고 국힘당 정치인들도 한번 읽어 보세요.이 한 정당을 발전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긴 세월에 걸쳐서 얼마나 집요한 노력이 있어야 되는 일인지에 대해서 예. 적에게서도 배우려는 의지 이런 것들을 좀 촉구하고 싶어요.
유:너무 열냈나?
김: 아니요. 아니 무척, 무척 재미 있었습니다.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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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암모나이트
02.02 · 222.♡.181.231
고생에는 추천! -
만만발종군기자
02.02 · 106.♡.251.186
감사합니다. 아침에 피치 못하게 시청하지 못했었는데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
이이퀄리티
02.02 · 210.♡.41.89
오타가 조금 있네요..
다시 한번 잙 읽었습니다.
사실 전 실시간으로 들었습니다만..
역시 유시민 작가가 통찰력이 있는 분이시구나.. 라면서요..
선거에 가서 '후보단일화' 같은 거 이야기 나오고 싸우고 할거 뻔한데..
지금 합당이던 아니던 결정해두면.. 나중에 가서 싸울일이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조국 대표건 의 경우엔 '자신이 큰 꿈이 있다면 큰물로 와라.' 라는 이야기지..
이걸 무슨 조국 대통령 만들기라고 말하는 사람들.. 에효.. 그릇이 그것 밖에 안되니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 -
FFV4030
→ 이퀄리티
02.02 · 210.♡.27.130
오늘 유시민옹 얘기 들으며, 저는 조국 대표가 지류에 계속 머물러도 나쁘진 않다는 입장이었습니다만... 조국혁신당원이건 지지하시는 분 입장이라면, 조국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염두에 두실 것이고, 결국 합당 쪽으로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뭐 합당 하든 안 하든 가시밭길일 게 뻔해서, 저는 인간 조국이 덜 상처받길 바라지만, 어째 흐름이 그렇게 가네요. 그를 볼 때마다 드레퓌스 사건과 호랑이 대통령 클레망소가 계속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
이이퀄리티
→ FV4030
02.02 · 210.♡.41.89
조국대표...를 대선주자로 키우려면.. 확실히 합당을 해야만 한다는 것에는 저역시.. 같습니다만..
또 말씀대로.. 저역시 조국혁신당이.. '야당'으로 남아서.. 조금 더 진보적인 스탠스로 국회를 조율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합당이 된다고 하더라도..
생각보다 민주당엔 대권후보가 많아서.. 단독으로 올라서긴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무언가 '성과'가 확실히 필요한데.. 눈에 띌려면 밖에서 조금 더 야당으로서 활동하고.. 성과를 이룬 후에..
합당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
FFV4030
→ 이퀄리티
02.02 · 210.♡.27.130
당장 하자는 건 아니고, 더 나아가 저는 지류에 있는 조국 대표도 미안하지만 나쁘진 않다는 입장이기까지 합니다(쿨럭.. 솔직히 시민옹의 포지션이 우리에겐 나쁘진 않잖아요). 그런데 싫든 좋든 흐름이 그를 놓아주지 않을 거 같네요. 그러려면 주위 사람들이 잘 도와줘야 할 겁니다. 고민이 많이 필요할테구요. - 시
시티즌월드
→ 이퀄리티 작성자
02.02 · 182.♡.216.103
오타 눈에 밟히신 부분 지적해주실 수 있을까요? 현생 때문에 검수는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ㅜㅜ{emo:damoang-lala-002.webp:150} -
이이퀄리티
→ 시티즌월드
02.02 · 210.♡.41.89
저도.. 현생때문에.. ㅎㅎㅎ
일단 읽다가 살짝 맥락이 이상하거나 한 부분은 다시 한번 들어오시는 걸 추천합니다.. ㅎㅎ
실제 유시민 작가의 목소리로 들을때의 전달은 또 다르다고 보니까요 ^^
너무 고생많으셨습니다. 텍스트로 읽을때의 느낌도 좋다고 봅니다.. ㅎㅎ -
에에스까르고
02.02 · 183.♡.123.226
와! 녹취록 만드는 일을 해봐서 이게 얼마나 품이 드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겠습니다. -
아아름다운전성비
02.02 · 221.♡.20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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