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t_Libre (140.♡.29.2)
2026년 2월 4일 PM 10:39 · 수정됨(02. 05. 01:35)
이집트 람세스3세 파업 기록
역사상 첫 파업은 지금으루부터 3000년전 이집트 람세스 3세 당시 파업의 기록이 남아있다. 람세스 3세 통치 기간 동안 테베의 서안 지구에서 데이르 엘 메디나의 무덤 노동자들이 임금 배급을 받지 못해 파업을 했다.
람세스 3세 29년(B.C. 1152)에 기록된 파업이다. 당시 노동자들이 임금 배급을 받지 못하면서 “우리는 배고프다‘면서 투트모세 3세 영안실 사원 뒤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우리는 굶주리고 있소. 벌써 이번달 급여일이 18일이나 지났소”리면서 연좌농성을 벌인 것이다.
당시 임금은 ‘빵’과 ‘맥주’였다. 맥주라고 하면 오늘날 ‘라거’를 생각하기 쉽지만 보리를 발효시킨 죽과 같은 형태였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양의 급여’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투트모세 3세 영안실 사원은 파라오 혹은 ‘신관’ 등 아주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는 이들만 출입하는 곳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했다
이들은 “즉시 세티 1세 신전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밤샘 시위를 벌입시다”면서 연좌농성을 한 것이다.
또한 “만약 급여를 받지 못하고 오늘 이곳에서 돌려보내어진다면 나는 파라오의 무덤을 도굴한 이후에야 잠자리에 들 것이다”면서 신성모독 발언을 하기도 했다.
결국 급여 지급
이에 권력 서열 2위인 총리급이 급여를 보장해주겠다고 서신을 보내면서 시위대를 달랬다. 이에 급여 일부를 지급했다. 하지만 또 다시 급여가 연체되고, 파업은 반복됐다.
노동자가 파업을 했다는 것은 당시 노동자들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민’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오늘날 우리가 피라미드 공사에 투입된 인력을 상상하기를 노예이고, 채찍 등으로 일을 독촉하는 등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하지만 당시 피라미드 등이 투입된 노동력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민’이었다는 것을 인류 역사상 첫 파업 기록에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더욱이 신성한 장소를 점거해서 연좌농성을 했다는 기록은 오늘날 파업의 형태를 그 당시에도 보여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당시 기록 등에서도 파업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유일한 수단이면서 당연한 수단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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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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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짝지근
02.04 · 49.♡.14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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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느린표범
→ 달짝지근
02.05 · 210.♡.13.10
당시 피라미드 건설은 농한기에 해서 복지 또는 소득 증대 목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
달달짝지근
→ 느린표범
02.05 · 49.♡.149.207
기본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는 자주 있는 업종이 아니며 상당수의 기술자라도 평소에는 농사에 전념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투잡의 개념인데 주력이 농사라면 노가다 기능공은 고소득 부업의 개념이 아닐까? 싶겠네요
그리고 이집트가 나일강 유역의 생산량이 높았다 하더라도 고대 시대에는 대부분의 GDP가 농업에 집중된 이상 자유민이든 노예이든 농업에 종사할수 밖에 없었을겁니다
국가 생산력의 집중이 필요한 농번기에 자유민이든 노예이든 동원한다면 국가가 패망하는 길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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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노동자는 현대적인 건설장비를 단순히 인력으로 대신하는 막노동이 었었다면 상당수는 기술자들인 숙련공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벽돌은 아무나 와서 들어도 되는 대체 가능한 인력이지만 기술을 가진 숙련공은 예나 지금이나 구하기 힘들고 대우가 좋지 않다면 일을 안하기 때문이죠
아마 기술 숙련자들은 대부분 자유민 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