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docok (211.♡.81.49)
2026년 2월 12일 AM 09:17 · 수정됨(14:00)

오늘 한 동료의 죽음으로 검진장소의 분위기는 무겁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100년이 지나면 현재 생존해 있는 인간은 모두 죽는 것이 당연한 진실이지만 평상시에 인지를 하지 않고 지냅니다. 가족의 죽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지만 종교도 죽음에 대해서 항상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줍니다. 저는 종교는 없지만 항상 죽음을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죽음이 두렵기만 하였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죽음이 없다면 인생의 우선순위, 즉 가치가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한정되어 있기에 우선순위가 필요합니다. 우선순위가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거나 죽음에 실제로 맞닥뜨리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만의 최고의 가치를 깨닫거나 깨달아야한다는 것을 깨닫게됩니다. [길위의 철학자] 에릭포퍼도 자살을 시도하다가 인생의 가치를 찾아서 달리기 시작하죠. 달릴 때의 발소리가 자신을 향한 박수소리라 생각합니다. 난치병이 생기면서 인생의 가치를 찾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도 죽음이 가장 큰 발명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구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부정, 분노, 수용, 우울, 타협 등 다양한 반응을 하다가 오히려 행복도가 올라갑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스모스]에서 노장사상에 대해서 언급된 것 중에 수백년을 산 사람보다 5살을 살다가 죽은 아이가 더 오래 살았다는 성격의 글을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의미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 항상 죽음을 기억하는 겁니다.
당장 죽더라도 후회없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끔씩 죽음에 대해서 남의 일이라거나 나에게는 닥치지 않는 추상적 단어로만 인지하고 살게되면 죽음이 두려울 겁니다. 저도 아버지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인지를 시작하였으니 부모가 오래 산다는 것은 자식의 삶의 의미를 줄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의 죽음이 아이가 느끼는 삶의 의미의 탄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몽테뉴의 살아있는 생각] 일부를 공유합니다. p.57
[몽테뉴의 살아있는 생각] 1권 20장.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생애의 종점이자 우리가 필연적으로 향하는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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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대중의 치료법은 아예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죽음을 못 본 척하는 것은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은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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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리 죽음을 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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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피할 수 있는 적이라면 비겁함이라는 무기를 사용하라고 말해주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겁쟁이처럼 도망치든 용맹하게 저항하듯 죽음은 불시에 당신에게 닥쳐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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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갑옷으로도 막아내지 못하니… 차라리 당당히 서서 결연한 마음으로 죽음에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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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렸을 때보다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일 때 오히려 병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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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를 심고 있을 때 죽음이 나를 찾아와도 아무렇지 않고, 그 일을 미처 끝맺지 못한 것에도 더욱더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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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리안
02.12 · 58.♡.2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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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kdocok
→ 크리안 작성자
02.12 · 211.♡.82.68
과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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