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에 대한 단상] 1. 자수성가는 없다: 세대와 환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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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_abcd_ (222.♡.61.190)

2026년 2월 12일 AM 10:37 · 수정됨(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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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처럼 대댓글로 흥분해서 쓴 글이 많은 분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원글은 삭제하였으나, 제 잘못을 명확히 하기 위해 팟타이님이 캡처해주신 이미지를 인용하였습니다.)

당시 제가 감정이 격해져 있던 터라, 제 생각과는 다르게 공격적인 표현과 부적절한 예시로 불쾌감을 드렸습니다. 이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감정을 걷어내고, 제가 본래 말씀드리고 싶었던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조금 더 차분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머리를 식히고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저는 평소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연설 중 "이 세상에 자수성가(Self-made)는 없다"는 내용을 좋아합니다.

그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 주지사가 된 것은 본인의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도와준 수많은 사람과 그가 활동할 수 있었던 사회적 시스템 덕분이라는 겸손과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는 저를 포함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되새겨야 할 말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성취가 오롯이 나만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믿는 순간,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배제가 싹트기 쉽기 때문입니다.

- 참조 :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자수성가를 믿지 않는 이유.jpg : 클리앙


이 관점은 세대 간의 갈등을 푸는 데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서로의 도움과 이전 세대의 유산 위에 서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적 토대는 분명 4050 세대 선배님들의 치열한 투쟁과 헌신의 결과물입니다. 그 덕분에 후속 세대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4050 세대 선배님들이 태어날 때부터 더 정의롭고 특별한 세대라서 그 위업을 달성했을까요?

그 시절 민주화를 위해서는 세대간의 연대가 모여 시대정신으로 민주화를 요구하였고 그를 쟁취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세대 간의 연대에는 분명 청년 세대가 앞장 섰지만, 그 당시 넥타이 부대나 시위대를 숨겨주던 직장인들도 있듯이 기성 세대도 암묵적인 동의와 지지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당시 세대의 용기는 존경과 감사를 표해야하지만 민주화라는 위업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저는 그 당시의 환경과 교육, 연대와 운이 모여서 달성한 위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2030 세대를 보겠습니다.

현재의 4050은 7080 부모 세대의 자녀이고, 지금의 10대와 2030은 405060의 자녀들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기질을 가진 민족이며, 서로 닮아있는 부모와 자식입니다.

그런데도 한 세대가 통으로 달라졌다면, **씨앗의 문제가 아니라 토양(환경)이 변한 것은 아닌지** 같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지금 2030은 기성세대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질까요? 처한 현실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방향을 보면 어느 정도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세대들이 '독재'라는 거악에 맞서 '연대'가 필수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지금의 세대는 이미 갖춰진 시스템 속에서 옆 사람을 이겨야만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환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적응 방식도 바뀝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우선시되고, 손해 보지 않으려는 2030의 모습이 기성세대가 보시기에는 참 삭막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천성이 악해서라기보다는, 성장 과정에서 파편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버린 슬픈 생존법일지도 모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2030 세대의 혐오 표현이나 행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라면 잘못된 행동에는 스스로 반성하거나, 필요하다면 사회적·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건 타협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다만, "쟤들은 원래 저래", "이미 글러 먹었어"라며 포기하고 혐오하기보다는,
"대체 쟤들은 왜 저럴까?”라는 원인을 한 번쯤 또래로서 생각해본 내용을 설득력있게 써보기 위한 글입니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고 완전히 단절을 한다면, 상대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괴물이 되고, 대화와 소통을 단절시킬 뿐입니다.

그러면 사회적 연대는 무너질 것이고, 우리의 분열은, 결국 상대가 가장 바라는 그림일 테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사과는 빠를 수록 좋지만, 먹는 약과 컨디션 난조를 핑계로 너무 늦어버렸네요.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저는 저번 글을 쓸 때도 정치적인 큰 문제는 없다 싶어서 썼고,

지금도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갔고, 다들 예민들 하시겠지만, 그래도 너무 늦기 전에 글을 써봅니다.

앞으로도 좀 조용할 때 와서 제 생각을 계속 써보려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이곳에 계신 분들께도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만약 4050 세대 앙님들이 현 2030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반대로 지금의 2030 청년들이 그 옛날 독재 정권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댓글 (3)

  • S

    serious Lv.1

    02.12 · 169.♡.174.61

    이전글 쓰신 캡쳐를 보면 4050에 대한 조롱글에 가까운데 그건 분란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리고 남의 탓도 중독돼요. 그건 어느 정도 선에서 극복해야 합니다.
  • 팟타이

    팟타이 Lv.1

    02.12 · 210.♡.3.154

    제미나이가 전해달라고 하네요.
    ----

    이 글은 겉으로는 '이해와 화합'의 탈을 쓰고 있으나, 실상은 '자신의 오류를 지성으로 포장하려는 자기변명'에 불과하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사옵니다

    1. 사과의 형식을 빌린 '훈계'

    글의 도입부에서는 사과하는 듯하나, 본론으로 들어가면 "내가 원래 하려던 말은 이것이니 들어보라"며 독자를 가르치려 드옵니다. 사과문의 본질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어야 하거늘, 이 글은 '자신의 논리가 얼마나 깊이 있는가'를 설파하는 데 지면의 8할을 할애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비판받는 상황에서도 지적 우월감을 포기하지 못한 자의 전형적인 태도이옵니다.

    2. 결정론적 사고를 통한 '도덕적 면죄부' 부여

    '씨앗(인간)은 같으나 토양(환경)이 문제'라는 비유는 매우 위험한 논리적 비약이옵니다. 환경이 인간을 만드는 측면이 있으나, 인간에게는 그 환경을 극복하거나 비판할 '자유 의지'와 '개인적 책임'이 있사옵니다. 2030의 혐오 문화를 '환경에 의한 진화'나 '슬픈 생존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론적 체념에 불과하옵니다. 이는 악행을 저지른 개인의 책임을 사회 전체로 희석시켜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만드는 궤변이옵니다.

    3. '자수성가' 인용의 모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자수성가는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겸손을 말하지만, 정작 글쓴이 본인은 커뮤니티라는 '시스템'과 '구성원'들이 느낀 불쾌감을 온전히 수용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시스템의 도움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시스템(커뮤니티)이 내리는 비판적 평가는 "감정이 격해진 탓"이라며 가볍게 치부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제시하신 추신(PS) 부분은 앞선 사과의 진정성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글쓴이의 본심과 방어 기제를 드러내어 사과 전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실책으로 보입니다.

    1. 변명을 통한 사과의 동력 상실 사과가 늦어진 이유로 '약'과 '컨디션 난조'라는 외부 요인을 언급한 것은 전형적인 '조건부 사과'의 형태입니다. 이는 "내가 잘못해서 늦었다"가 아니라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인상을 주어, 사과를 받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가 책임을 온전히 지려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2. 사과와 자기 정당화의 모순 "정치적인 큰 문제는 없다 싶어서 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대목은 사과의 핵심인 '잘못의 인정'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본인은 여전히 잘못이 없다고 믿으면서도 여론 때문에 사과한다는 속내를 드러낸 셈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사과를 한낱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시킵니다.

    3. 소통이 아닌 일방적 선언 "앞으로도... 제 생각을 계속 써보려 한다"는 문구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비판이나 감정을 수용하여 변화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본인의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앞세운 것입니다. 이는 사과를 갈등 해결의 마침표가 아닌, 활동 재개를 위한 '명분 쌓기'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습니다.

    4. 거대 담론을 이용한 책임의 분산 마지막에 던진 세대론과 환경에 관한 질문은 논의의 본질을 흐리는 수사법입니다. 개인의 구체적인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비판을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적 요인'이라는 거시적 관점으로 옮겨감으로써, 개인의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희석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우리 모두는 환경의 산물이다"라는 식의 일반론은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논리적 도피처로 자주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추신은 사과문의 마무리로서 대단히 부적절합니다. 사과를 통해 얻고자 했던 신뢰를 본인 스스로 다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읽는 이에게 '반성'보다는 '고집'과 '방어적 태도'를 더 강하게 각인시키는 글이 되었습니다.
  • Nunki

    Nunki Lv.1

    02.12 · 14.♡.149.23

    남녀노소를 차치하고 기본적으로 나와 상관 없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대할 때는 상호호혜적으로 대한다 봅니다.
    자신이 이해 받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해야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상대방이 이해하지 않는다 해서 뭐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서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에 대한 포용력은 높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남탓만 하고, 다른 사람은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포용하지는 않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그래야 될 이유가 있나요?

    안타깝다는 연민의 감정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게 만능 치트키가 될 이유는 없다 봅니다.
    그것이 바로 그네들이 말하는,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는 '공정'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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