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맨 (175.♡.155.138)
2026년 2월 15일 PM 03:56 · 수정됨(02. 16. 12:22)
징기스칸에 이어서 4대가 몽케 칸입니다. 몽케랑 쿠빌라이는 같은 뱃속에서 난 형제들입니다.
쿠빌라이랑 나중에 5대칸이 되기위해서 싸운 아릭부케도 같은 친형제죠.
쿠빌라이도 징기스칸의 손자이긴 하지만 툴루이 때부터 입지는 많이 약했죠
툴루이 자식들이 몽케 쿠빌라이 아릭부케들이죠
몽케칸이 대칸이 되고 나서 제일먼저 한일이 친형제들 빼고 징기스칸의 다른 손자들과 친적들을
대규모로 죽였습니다 이때 죽은 징기스칸의 후손들 남자만 100명 가까이 된다고 하더군요.
몽케가 일찍 죽지 않고 오래 집권했더라면 몽골제국은 더 빠르게 무너질수도 있었습니다
사학자들은 몽케가 오래 집권했더라면 지금의 중국은 없었을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냥 복속하고 피지배층으로 남겨두지 않고 다 죽여버리고 지금의 중국을
목초지로 만들자 이런거에 동의했던 인물이 몽케 실제로 송을 정벌하면서도 성 함락하면 거의다 죽였죠.
몽케도 대규모 숙청을 하고 한일이 남송 정벌이었는데 대규모 숙청까지 하고 칸의 정당성과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서
남송정벌에 올인을 했습니다. 쿠빌라이도 이때 살아남기 위해서 몽케한데 바짝 엎드리고 살살 기었죠
기록에 의하면 몽케도 쿠빌라이를 엄청 싫어했다고 하던데 몽케가 쿠빌라이의 측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죠
손발을 다 짤라놓았죠 몽케가 갑자기 죽지않고 몇년만 더 살았으면
쿠빌라이는 죽었을수도 있었겠네요 근데 몽케가 남송 정벌중에 갑자기 병사~
이후 친형제 아릭부케랑 쿠빌라이의 대칸을 두고 전쟁을 벌입니다
몽케가 죽었을때 아릭부캐랑 쿠빌라의 판세는 7:3 정도로 쿠빌라이가 약했습니다 밑에 군사들도 그렇고
몽골 수도안에서도 아릭부케가 대칸 자리에 더 어울렸고 쿠릴타이에서도 아릭부캐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아릭부케는 몽케랑 성격이 비슷했다고 합니다 잔인한거는 둘이 닮았음
둘사이에 전쟁은 전면전은 거의 없었고 소규모 전투만 있었는데 아릭부케가 너무 잔인하게 쿠빌라이 편에 섰던
몽골 사람들을 부족단위 전부다 죽이자 몽골내 다른 부족들도 아릭부케한테 등을 돌려버렸죠 여기에 쿠빌라이가
전투를 하면서 아릭부케의 보급로를 완전 차단하고 식량을 전부 뺐어버리니까 아릭부케도 gg 치고 투항을 했습니다
징기스칸의 손자들 가운데서 가장 너그러웠던 쿠빌라이는 투항후에 아릭부케를 살려줬네요.
쿠빌라이와 다른 대칸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정복전쟁에서 달랐습니다. 보통 다른 몽골 칸들은 정복전쟁을 하면서도
다 죽였고 투항한다고 해도 여자들은 노비로 썼고 남자들은 다른 성 전투에 맨앞에서서 총알받이로 이용했습니다.
항복안하면 진짜 전부다 죽였죠 살려둔다고 해도 수레바퀴 이상 키가큰 남자들은 다 죽였습니다.
성점령하고 나서 며칠간 한일이 학살만 했죠.
중동이나 러시아 원정때 중동이나 동유럽사람들이 기를 쓰고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죠.
쿠빌라이는 남송을 공격하면서도 다른 칸들과 달리 유화스러운 면이 있어서 당시 송나라 사람들이 쿠빌라이한테
투항한 이후에도 남송정벌에 적극 협력한점이 달랐습니다. 쿠빌라이는 투항할것을 계속 권유했고
실제로 투항한 이후에는 약탈이나 학살이 없었습니다. 다른 대칸과 달리 남자들을 총알받이로 사용하지도 않았고
자치권과 귀족들을 인정해줬죠 쿠빌라이가 절대 용서안한건 딱하나 남송은 멸망해야 한다고 한거
쿠빌라이가 다른 대칸처럼 무자비했다면 쿠빌라이 생전에 남송을 멸망시키지 못했을겁니다.
몽골제국 남송정벌에 1등공신들이 당시 투항한 송나라 사람들이었죠.
쿠빌라이가 유일하게 잘못(?) 한점이 있다면 쿠빌라이 이후 몽골제국 사람들이 중국에 동화되서
유목민족성을 잃어버린거죠.
댓글 (12)
-
월월남에서돌아온예비역
02.15 · 125.♡.4.142
몽케는 양과가 돌로 때려죽인거 아닌가요??? -
홀홀맨
→ 월남에서돌아온예비역 작성자
02.15 · 175.♡.155.138
전투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합니다 -
이이바구
02.15 · 58.♡.157.174
[https://s3.damoang.net/data/editor/2602/bfaa447.gif]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 메
메제드
02.15 · 121.♡.164.125
쿠빌라이가 장강의 요새들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갈 수 있었던게 송나라에서 투항한 장수들 덕분이라는 글을 본게 생각나네요. -
행행인
02.15 · 49.♡.57.189
이런 이야기 너무 좋아요^^ -
우우루
02.15 · 223.♡.83.81
그 쿠빌라이를 고려왕자 왕전이 우연(?)히...알고 찾아갔다는 학자도 있지만, 당시 쿠빌라이 세력이 아릭부케 세력보다 약해서 전 우연이 맞다 생각합니다...만나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 되었죠. -
사사열대키맨
02.15 · 223.♡.55.118
"나는 관대하다"를 몸소 실천했다는
말을 들은 게 기억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삼
삼팔국도
02.15 · 211.♡.96.143
저 몽케가 죽였다는 형제들 유골 DNA 검사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기억이 헷갈리는중 -
BBlizz
02.16 · 108.♡.134.4
"아릭부캐랑 쿠빌라의 판세는 7:3 정도로 쿠빌라이가 약했"다면 몽골은 30%의 군사력만 사용해서 남송을 정벌했군요. ㅎㄷㄷ -
홀홀맨
→ Blizz 작성자
02.16 · 175.♡.155.138
아뇨 그런말이 아니죠 남송정벌 중동 정벌 다 중지하고 파벌 싸움을 한거였다는 뜻이죠.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