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부산의 중심지 이동
FV4030

Lv.1 FV4030 (210.♡.27.130)

2026년 2월 25일 PM 06:00 · 수정됨(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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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동래 고읍성의 구조적 특징과 기능", 이미란>

신라가 부산에 영향을 미치는 건, 지증왕 즈음의 일입니다. 당시 독로국(또는 거칠산국)이 있었고, 이 집단의 중심지는 북천동 고분군과 연산동 고분군 사이였으리라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독로국이 신라에 완전 복속하는 것은 금관국이 신라에 병합된 후라고 하네요.

통일신라 시대에 접어들며, 신라는 오늘날 연산동과 망미동에 걸쳐 있는 배산에 산성을 축조하여 부산 지역의 군사 및 행정 중심지로 삼았는데, 이는 군사적 요소를 중시한 삼국시대의 전통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인구가 늘고 평화로운 치세가 이어지니 통일신라 말기에 와서는 오늘날 부산 병무청 자리에 토성인 동래고읍성을 축조하여 이곳을 부산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이게 고려 말기까지 이어지구요.

이후 조선시대에 와서는 동래 지역으로 중심지가 옮겨가게 되는데, 아마 생산력과 방어적 유리함 등이 작용한 게 아닌가 추정합니다. 이렇게 조선시대 내내 동래가 부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구요.. 일제 시대에 와서는 아시다시피 부산항이 발전하면서 부산의 중심지는 부산항과 부산역 인근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부산시청이 오늘날 연제구 쪽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연산동 쪽이 부산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으니, 다시 고대 시대의 부산 중심지 위치 근처로 옮겨 온 셈이 되었네요.

댓글 (2)

  • ㅡIUㅡ

    ㅡIUㅡ Lv.1

    02.25 · 223.♡.78.21

    연산동이 지리적으로도 참 좋긴 합니다.
    유흥도 좋은 ㅋ
  • 메이데이

    메이데이 Lv.1

    02.25 · 183.♡.254.190

    고향이네요.
    낙민동, 수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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