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기록이란 이런 것이군요.
맥스파더

Lv.1 맥스파더 (59.♡.48.248)

2026년 2월 26일 PM 01:39 · 수정됨(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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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식구들과 '왕과 사는 남자' 를 보고 감동을 받아,

이것 저것 궁금한 것 찾다보니 어찌하다 실록 까지 찾아보게 되었네요.

단종이 세조에게 왕권을 넘겨줄 때 어땠는가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세조 실록 1권에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나이가 어리고 중외(中外)의 일을 알지 못하는 탓으로 간사한 무리들이 은밀히 발동하고 난(亂)을 도모하는 싹이 종식하지 않으니, 이제 대임(大任)을 영의정(領議政)에게 전하여 주려고 한다."

하였다. 한확 등이 놀랍고 황공하여 아뢰기를,

"이제 영의정이 중외의 모든 일을 다 총괄하고 있는데, 다시 어떤 대임을 전한다는 것입니까?"

하여, 전균(田畇)이 이를 아뢰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내가 전일부터 이미 이런 뜻이 있었거니와 이제 계책을 정하였으니 다시 고칠 수 없다. 속히 모든 일을 처판(處辦)하도록 하라."

하였다. 한확 등 군신들이 합사(合辭)003) 하여 그 명을 거둘 것을 굳게 청하고 세조 또한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다. 전균이 다시 들어가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조금 있다가 전균이 다시 나와 전교를 선포하기를, ‘상서사(尙瑞司) 관원으로 하여금 대보(大寶)를 들여오라는 분부가 있다.’고 하니, 모든 대신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변하였다. 또 명하여 재촉하니 동부승지(同副承旨) 성삼문(成三問)이 상서사(尙瑞司)로 나아가서 대보를 내다가 전균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 아래로 받들고 가서 바치게 하였다. 노산군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노산군이 일어나 서니, 세조가 엎드려 울면서 굳게 사양하였다. 노산군이 손으로 대보를 잡아 세조에게 전해 주니, 세조가 더 사양하지 못하고 이를 받고는 오히려 엎드려 있으니, 노산군이 명하여 부액해 나가게 하였다. 세조가 이에서 나와 대군청(大君廳)에 이르니, 사복관(司僕官)이 시립(侍立)하고 군사들이 시위(侍衛)하였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예몽(金禮蒙) 등으로 하여금 선위(禪位)·즉위(卽位)의 교서(敎書)를 짓도록 하고 유사(有司)가 의위(儀衛)를 갖추어 헌가(軒架)를 근정전(勤政殿) 뜰에 설치하였다. 세조가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는 백관을 거느리고 근정전 뜰로 나아가 선위(禪位)를 받으니, 그 선위 교서(禪位敎書)에 이르기를,

"나 소자(小子)가 방가(邦家)의 부조(不造)004) 하지 못할 때를 당하여 어린 나이에 선왕의 대업을 이어받고 궁중 안에 깊이 거처하고 있으므로 내외의 모든 사무를 알 도리가 없으니, 흉한 무리들이 소란을 일으켜 국가의 많은 사고를 유발하였다. 숙부 수양 대군(首陽大君) 【세조의 휘(諱).】 이 충의(忠義)를 분발하여 나의 몸을 도우시면서 수많은 흉도(兇徒)를 능히 숙청하고 어려움을 크게 건지시었다. 그러나 아직도 흉한 무리들이 다 진멸(殄滅)되지 않아서 변고가 이내 계속되고 있으니, 이 큰 어려움을 당하여 내 과덕한 몸으로는 이를 능히 진정할 바가 아닌지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수호할 책임이 실상 우리 숙부에게 있는 것이다. 숙부는 선왕의 아우님으로서 일찍부터 덕망이 높았으며 국가에 큰 훈로(勳勞)가 있어 천명(天命)과 인심의 귀의(歸依)하는 바가 되었다. 이에 이 무거운 부하(負荷)를 풀어 우리 숙부에게 부탁하여 넘기는 바이다. 아! 종친(宗親)과 문무의 백관, 그리고 대소의 신료(臣僚)들은 우리 숙부를 도와 조종(祖宗)의 아름다운 유명(遺命)에 보답하여 뭇사람에게 이를 선양할지어다."


세조가 눈물을 흘리며 여러차레 사양하는데도 단종이 굳이 선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록을 직접 보니 뭔가 느낌이 좀 다르군요.

어디까지 진실된 것일지 야사의 내용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시 승자의 역사 기록은 이런 것이구나라고 씁슬한 생각이 듭니다.

댓글 (4)

  • FV4030

    FV4030 Lv.1

    02.26 · 210.♡.27.130

    원래 그걸 간파하고 다른 증거들과 함께 재구성하는 게 좋은 역사가의 능력이죠.
  • heltant79

    heltant79 Lv.1

    02.26 · 61.♡.152.133

    저는 저 실록 내용을 보면 승자가 역사를 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가도,
    저 세조의 후손들이 단종을 복위시키고, 자기 조상을 죽이려 했던 사육신을 복권하고, 심지어 충 자 들어가는 시호까지 내리는 걸 보면,
    과연 역사의 승자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 moho

    moho Lv.1

    02.26 · 118.♡.81.209

    동아시아에서 역성 혁명이나 공식(?) 찬탈이 아닌 선위 형식으로 왕위가 바뀔 경우 신하가 몇 번 사양하는 척 하는 게 국롤입니다.
  • 여름숲

    여름숲 Lv.1

    02.26 · 58.♡.71.151

    냉큼 받으면 역모로 몰리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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