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182.♡.221.32)
2024년 5월 11일 PM 03:58 · 수정됨(19:49)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에서 싸움 잘 해서 악명을 떨친 다이묘입니다. 노량해전 당시 이순신을 막아서서 전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죠.

그는 1600년 일본에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나자 이시다 미츠나라의 서군 측에 섭니다. 그러나 전투는 적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의 승리였고, 시마즈는 통 속에 갇힌 쥐 신세가 되었습니다. 포위한 동군의 병력은 자신의 10배를 넘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당시 시마즈 군은 이대로 항복하거나 도망치면 잡혀서 죽고, 싸워도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무기력하게 포기하면 자기 가족과 고향도 박살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싸우다 죽기로 결의합니다. 그리고 기왕 싸우게 된 거 멋지게 포위망도 뚫고 포로도 구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 시마즈군이 쓴 전술이 바로 가문 고유의 진법 스테가마리(捨て奸)였습니다. 본진이 도주하는 동안 수 명의 팀으로 나눈 저격수가 후미에 남아 추격해오는 적 부대의 지휘관을 저격하고, 저격 후에는 총을 버리고 적진에 뛰어들어 시간을 버는 진법이며, 이를 무한반복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전법이었는데, 동군은 이판사판으로 덤벼드는 시마즈 군에게 기가 질렸으며 이이 나오마사 등 주요 지휘관들도 시마즈 군의 조총 저격에 당해버리자 결국 시마즈 군을 막아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퇴로상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진지도 있어서 여차하면 도쿠가와도 죽을 판이었습니다.

이 후퇴전으로 약 1500명의 시마즈 군 중 80명만 살아남았으나 오사카 성에 갇힌 포로까지 풀어주는 등 전설적인 업적을 세웁니다. 그래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질려버려서 시마즈 가문을 놔둬버립니다. 그리고 400년 후 일본은 러시아와 미국에게도 이런 무모한 돌격을 무사도답다고 칭찬하면서 가르치고 그대로 일삼다가 수많은 군인을 밭의 거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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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ppleAde
24.05.11 · 155.♡.1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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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aTo
24.05.11 · 112.♡.38.222
얘네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세월의 발전을 못따라잡는듯요 -
PPINECASTLE
24.05.11 · 39.♡.79.180
삐딱하게 보면 어떻게든 볼 수 있겠지만, 故 이에나가 사부로 선생의 책에서 하신 이야기처럼 일본인의 충성심 관념 = 물질적 보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법일 듯 합니다. 충성심이 누군가(아무래도 주군)에게 보여야 되고, 주군은 그 부하의 충성심(죽음)의 대가로 그 부하의 자손에게 물질(토지)을 부여하거나, 추가함으로써 보답하는... 지극히 현실지향적이면서도 목숨을 버리는 게 당연시되게 만드는 그런 게 전제되지 않는 한 잘 나타나지 않았던 그런 게지요. -
코코미
→ PINECASTLE 작성자
24.05.11 · 182.♡.221.32
시마즈 가문이 망해버리면 부하인 자기들도 일자리 잃고 가족들은 거지가 되어버리니 그럴 만도 합니다..
나만 죽으면 최소한 내 가문은 보존되니까... -
PPINECASTLE
→ 코미
24.05.11 · 39.♡.79.180
이에나가 사부로 선생의 이야기에서는 그걸 주군이 인식(보던가, 보고받던가)해야 증명이 되서 봉공에 대한 은혜(영지하사)로 이어지므로 그 부분을 싹 빼버린 대부분의 서술에서는 전근대적인 일본인의 무지함이나,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오해하기 쉽다고 하지요. -
푸푸르른별
→ PINECASTLE
24.05.11 · 58.♡.113.136
영주가 죽으면 자신은 로닌이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으니까요 -
PPINECASTLE
→ 푸르른별
24.05.11 · 39.♡.79.180
사례로 들면 일반적 사례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대략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물론, 저 보고 하라 하신다면 "야레야레~" 하면서 기회를 반납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