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까르고 (183.♡.123.69)
2024년 5월 11일 PM 09:21 · 수정됨(05. 12. 22:02)
1. 2020년 07월 05일 처음으로 [주간 코로나]를 발행한 이래 처음으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게시물이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처음으로 발행했던 DP(DVDPrime)을 떠나 18일간(2021. 08. 12. - 08. 29.) 방황하던 때가 있긴 있었습니다.
또 2022년 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오만가지 말들이 나오는 가운데 "자영업자"를 자칭(혹은 참칭)하는 분들이 펼치는 험한 말 대잔치에 오만정이 떨어져 9일간 절필(클리앙, 2022. 02. 18. - 02. 27.)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발행할 내용이 있으되 커뮤니티를 떠나거나, 떠날 결심을 해서 발행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위기단계를 하향(경계 → 관심)하면서 지난해 09월 01일부터 시행되었던 양성자 감시체계가 종료되어 더 이상 자료제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간 코로나]를 "종간"한 것이라서 앞의 두 경우와는 다르지요.
지난 4년동안 많을 때는 하루에 두 번 이상, 몇 시간에 걸쳐서 문서와 방역당국 브리핑을 요약했었고,
DVDPrime 시절에는 발행된지 몇 달이 지난 게시물도 방역당국의 원 자료가 수정되면 그 내용을 반영하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을 어떻게 지내왔나 싶습니다.
지난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 [주간 코로나]만 적는데 익숙해져 버린 게으른 '현재의 나'는 도무지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할 수 없지요.
2. 이사온지 열흘째, 대부분의 정리는 마쳤지만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소수의 이삿짐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대학시절 노트들을 보게 됐습니다.
문구 선택이 일상의 영역이었던 시절 채택했던 3공 노트와 바인더에 얇디 얇은 샤프펜슬로 적은 수많은 글자들, 상당수는 음을 읽을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한자들이 즐비합니다.
이제는 어느 과목을 수강했는지, 강사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예쁜 종이에 여자 글씨로 적힌 E-mail 주소(심지어 '프리챌')는 과연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때는 학부기간 내내 수강했던 과목과 강의실 호수까지 외고 다녔었는데, 그 시절의 나와 전혀 다른 지금의 나는 강의실 번호 하나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삿짐 싸느라 마지막에 모교를 다녀오지 못한 것이 이제서야 아쉽네요.
그동안은 이삿짐과의 씨름에 너무나 지쳐서 사람과 학교에 대해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 안타까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3. 어제, 다른 짐을 정리하다 군생활 시절 자료들을 모아둔 파일을 찾았습니다.
(공군 합격증까지 있더군요.)
대유행하기 한참 전인 2006년 군에서 상담교사(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들이 '제대로' 결과를 프린트해준 MBTI 결과지가 있더군요.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와는 약간 다른 결과이긴 했습니다.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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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원
24.05.11 · 223.♡.51.130
멋진 주말 되십시오 {emo:damoang-emo-006.gif:50} -
에에스까르고
→ 500원 작성자
24.05.11 · 210.♡.157.81
고맙습니다. -
PPWL⠀
24.05.11 · 221.♡.221.16
과거와 회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셨네요. 좋게 생각하세요. :-) -
에에스까르고
→ PWL⠀ 작성자
24.05.11 · 210.♡.157.81
그럼요.
"이해할 수 없는"을 부정적인 의미로 쓴 게 아니라서요.{emo:damoang-emo-029.gif:50} -
포포크리스
24.05.11 · 125.♡.70.134
주간코로나를 클량에 올려주셔서 그동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맘이 좀 허전하실거 같네요.
Mbti는 상황에 따라 좀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
에에스까르고
→ 포크리스 작성자
24.05.11 · 210.♡.157.81
"이렇게 끝나는 게 과연 맞나?" 라는 것이 정확한 제 심경입니다.{emo:damoang-emo-020.gif:50}
다른 건 이해하겠는데 T로 나온 건 정말 뜻밖이어서 놀랐습니다. -
Bbeyondthetime
24.05.12 · 218.♡.238.24
대략 20여 년 전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나중에 복습하려는 목적으로 그동안 배운 것들을 정리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몇 년간 열정적으로 강좌 형식의 글을 올렸던 블로그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떻게 그처럼 열심히 강좌를 올렸었는지 스스로가 봐도 놀랍고 대견할 정도로 글쓰기에 몰두했던 때가 있었기에 에스까르고 님의 지금 심정에 대해 조금은 공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창 블로그 글쓰기에 빠져있던 시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감사 댓글이 끊이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과 보람도 느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새 글도 적어지고 방문객의 댓글도 뜸해졌지만 그 시절 강좌를 보고 도움을 받았던 누군가는 언젠가 제 블로그를 떠올리며 고마운 감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에스까르고 님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을 경험한 많은 회원분들 역시 차츰 코로나가 잊혀지는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날 문득 에스까르고 님을 떠올리며 "아, 코로나 때 그런 좋은 분이 계셔서 다행이었지" 라며 고마워할 것입니다. -
에에스까르고
→ beyondthetime 작성자
24.05.12 · 183.♡.123.69
가장 쉽게 바뀌는 것도, 가장 바뀌기 어려운 것도 자기 자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어느샌가 변해버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의 옛모습을 통해 발견하고 놀라는 것이겠지요.
늘 너무 좋은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저의 행동을 선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시점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기여'이기는 했지만 공공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멀게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 시민들이 방사능 측정기기값을 공유했던 이야기와
가까이는 지난 정부 당시 정부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배수로에 쌓인 낙엽과 쓰레기를 치웠다던 한 시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혹자에게는 다분히 '정파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오랜 인터넷 생활의 대부분을 '조용한 회원'으로 해왔습니다.
지난 정부 출범 과정에서 비로소 댓글을 활발히 달기 시작했고
코로나19를 맞으면서 처음으로 정기적으로 커뮤니티에 글을 적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커뮤니티에서 과분한 사랑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야말로 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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