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426 (39.♡.223.199)
2026년 3월 17일 PM 08:13
성격이 냉정하고 냉소적이라 그런지, 특정 정치인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 제가 마음의 빚을 느끼는 예외가 딱 두 명이 있는데,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고, 두번째는 미애 누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인의 길을 정말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애썼지만, 본인의 뜻과는 상관 없이 정치인의 길로 등 떠밀려 와서 가족들까지 참기 어려운 고행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에도 여러 실책이 있었지만 저는 차마 그를 비판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미애 누나와의 인연, 이라기도 뭣한 일방적인 고마움은 좀 사소합니다. 98년인가 99년인가에 머지 않아 결혼할 계획이었던 저는 어느 소설가 분께 주례를 부탁 드렸습니다. 같은 문인들 주례도 안 서주시는 분인데, 어쩌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발목 잡혀서 제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게 된 소설가 선생님은 조건을 하나 내거셨습니다.
4.3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특별법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조만간 국회에서 공청회가 있을테니 그 자리에 결혼 상대를 데리고 오라고요.
공청회에 갔더니 그 자리에 유일하게 참석한 현역 국회의원이 미애 누나였습니다. 그때는 아마 초선이었을 겁니다. 제주도 출신 의원들도 두려워서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참석해서 발언해준 미애 누나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도 역풍에 기존 민주당 의원들이 우르르 낙선할 때도, 저는 미애 누나만은 그래도 살아 남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이런 짝사랑 같은 고마움 때문에 미애 누나가 경기지사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 국회에 남아 지켜주거나 정부에 입각하면 어떨까 하면서도, 출마만 하면 내 표는 무조건 미애 누나에게 드리겠다고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 이번 법사위 일이 아니었어도, 웬만한 똥볼을 찼어도 그리 했을 겁니다.
사족입니다만, 제 외가쪽 어르신은 노무현 대통령께 그런 고마움을 품고 계셨습니다. 어르신은 4.3 때 아들과 시댁 식구를 모조리 잃으셨습니다. 토벌대-군인인지 경찰인지 서북청년단인지 잘 모릅니다-가 시댁이 있던 마을을 포위하고 모든 사람을 학살했는데 딱 한 명만 살아남아서 그날 일을 어르신에게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직할 때 4.3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노통이 돌아가신 후 어르신은 노통이 환히 웃으며 어르신을 향해 걸어오는 꿈을 꾸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외조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저희 형제들에겐 외할머니 같은 존재셨던 분인데, 100세 넘게 사시다가 지난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4.3 외에도 살아계실 때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겪으신 분이라, 이 어르신의 삶을 보면 과연 장수가 축복인가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족이 하나 더 있는데, 주례 청탁을 드리고도 정작 결혼은 한참 후에 했습니다. 약속대로 소설가 선생님이 주례를 서주셨는데, 다시 주례 부탁을 드리러 갔을 때 왜 이제서야 왔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참 난처했습니다. 사람이 바꼈거든요. 저 말고 옆에 설 사람이요.
미애 누나에게 마음의 빚을 진 개인적인 사연으로 시작해서, 기묘한 결혼 이야기로 빗나간 뻘글은 여기서 끝!
댓글 (13)
- 아
아키하
03.17 · 104.♡.2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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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루리라
03.17 · 58.♡.94.201
이름만 봐도 눈물나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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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니2527
03.17 · 222.♡.84.117
문재인 대통령 과보다 공이 훨씬 많은 분이시죠. 하루라도 빨리 황당한 유언비어들 좀 사라지고 마음 편하게 여생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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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V426
→ 버니2527 작성자
03.17 · 39.♡.223.199
공과 이전에 정치인에 어울리지 않고 본인도 전혀 원치 않는 일에, 어쩔 수 없이 나서서 가족들까지 참혹하게 당했는데, 내색도 없이 참으셨죠.
거기다 남북평화를 위해 김정은과 트럼프를 어르고 달래고, 펜데믹으로부터 우리를 지켰죠. 눈 떠 보니 선진국은 그를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민주 진영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 욕 하는 사람은 사람 색휘로 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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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니2527
→ LV426
03.17 · 222.♡.84.117
하바리 유튜버들에게 휘둘려서 암것도 모르고 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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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V426
→ 버니2527 작성자
03.17 · 39.♡.223.199
몰라서 욕 하는 사람들이야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어쩌다 정치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뻔히 알만한 사람들이 욕 할 땐 피꺼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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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니2527
03.17
삭제된 댓글입니다. -
→ 버니2527
03.17
삭제된 댓글입니다. -
비비사이로막가
03.17 · 180.♡.230.127
경기도에 투표권 있으신 지인 계시면 밥이라도 사드리면서..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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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V426
→ 비사이로막가 작성자
03.17 · 39.♡.223.199
그래서 대규모 펀딩이 필요합니다. 쪽지로 계좌번호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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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너무 잘 쓰시네요. .. 공감하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