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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9일 PM 05:54
"Sum of all fears"는 미국의 우익 군사전문소설가 톰 클랜시의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베카의 전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가(심지어 한강의 소설도 아닌데, 소설 광고가 공중파 TV로 나왔습니다!), 나중에는 원제를 그대로 살린 "공포의 총합"이라고 제목을 바꿔서 다시 나왔습니다. 지금은 출판사가 망해서 사라졌고, 작가도 죽어서, 다시 출판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구해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벤 애플랙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한국에서 영화 제목은 "썸 오브 올 피어스"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정말 재미 있게 봤지만, 영화는 보다 말았습니다.(원작에 비해 너무 재미가 없...)
소설의 줄거리
지금부터 강력 스포 들어갑니다.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줄거리 부분을 건너뛰세요.
이야기의 시작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또는 욤 키프르 전쟁입니다. 그 이전이나 이후 전쟁과는 다르게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하마터면 괴멸될 위기에 몰렸습니다. 이집트는 수에즈 방면에서, 시리아는 골란 고원에서 전선을 돌파했습니다. 수세에 몰린 이스라엘의 수뇌부는 숨겨두었던 핵폭탄을 전투기에 탑재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다행히 그 결정은 취소되었는데, 혼란의 와중에 이미 탑재되었던 핵폭탄을 내리기도 전에, 교대 조종사가 (핵무기가 달렸다는 것도 모르고) 전투기를 몰고 골란 고원 상공으로 출격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시리아의 지대공 미사일에 전투기는 격추되고, 기폭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핵폭탄은 그대로 인근 시리아 레바논 영토 내 베카 계곡의 농장에 떨어집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스라엘은 핵무기 분실을 깨달았지만 적국에 떨어진 핵폭탄을 찾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 사실을 인정한 적이 없었고, 마찬가지로 핵무기 분실마저도 철저히 비밀에 붙여집니다.
시간이 흐른 뒤, 공산권이 연쇄 붕괴 되고 독일이 통일된 직후 아마 1990년대 초반, 베카 계곡을 근거지로 하는 게릴라들이 우연히 이 핵폭탄을 손에 넣습니다. 게릴라들은 통독 이후 일자리를 잃어버린 옛 동독 출신 핵물리학자를 포섭해서 단순한 핵폭탄을 수소폭탄으로 개조해서 파괴력을 향상시키고, 이것을 미국에 반입하여 슈퍼볼 결승전이 벌어지던 덴버의 경기장에서 터뜨립니다.
게릴라들의 기만 작전에 넘어간 미국은 처음에는 소련을 공격하려다가(실제 양국 사이에 교전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테러가 이란의 광신적인 종교 지도자가 구 소련의 핵탄두를 훔쳐내어 저지른 것이라는 거짓 정보에 속아 이란에 대한 핵공격을 준비합니다. CIA 부국장 잭 라이언은 미국 대통령의 공격 명령을 막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겁에 질리고 체면을 살리려는 대통령은 이를 무시합니다. 다행히 폭발 현장의 잔해 조사 결과 핵물질이 미국에서 제조된 것이라는 게 밝혀지고, 연이어 게릴라들의 음모가 밝혀지면서, 지구는 다시 평화로워집니다.
어떻게 미국에서 제조된 핵물질이 이스라엘의 핵무기로 둔갑했나?
지금부터는 소설이 아니라 실화입니다.
이스라엘은 건국 초기부터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도와준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습니다. 프랑스는 미국과의 충돌을 무릅쓰고 2차대전 이후 독자적인 핵무장을 시작했고, 국제 사회의 왕따였던 남아공 역시 핵무기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의 영향력 밖에서 핵무기를 확보하려던 삼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갑니다.
이스라엘과 유대 자본이 미국의 대 중동 정책을 쥐락펴락한다는 게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지만, 지금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이 강력하게 유착한 것은 70년대 말 이후의 일입니다. 그전에 중동 지역에 퍼지는 민족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손잡고 깽판을 부린 것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이었습니다. 수에즈 운하 국영화를 막기 위해 영-불-이 삼국 연합군이 이집트를 침공해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지만, 미국과 소련이 이들에게 압력을 가해 철수시키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이때까지 중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의 동맹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란(!)이었습니다. 미국은 서구 세력으로부터 석유 자원을 되찾고 세속적인 근대화 노선을 추구하던 이란의 총리를 쿠데타를 일으켜 축출하고, 팔레비 왕가의 독재를 지원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했는지, 다른 어느 나라에도 팔지 않았던 F-14를 이란에 판매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느 나라보다 우선해서 미국의 첨단 무기를 도입하고 심지어 운영비까지 지원 받는 지금의 모습과 닮아도 너무 닮은 관계를 미국과 이란이 맺고 있었던 겁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개발을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고 애썼습니다. 그 와중에 "아폴로 사건"이라는 게 벌어집니다. 미국 아폴로 시에 위치한 핵 원료 제조 회사에서 몇 백 kg의 핵물질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CIA와 FBI는 범인으로 이스라엘을 지목했지만, 정황 증거 뿐, 결정적인 증거는 찾지 못합니다. 묘하게도 핵물질을 잃어버린 회사의 사장은 골수 시오니스트였고, 회사의 여직원 하나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스라엘의 핵무기 개발을 강력하게 반대하던 케네디는 죽고(케네디 암살 배후 용의자 목록에는 KGB, CIA, 미국 군부, 마피아와 함께 모사드도 있습니다), 존슨은 베트남 전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이스라엘을 막으려던 미국의 노력은 흐지부지되어 버립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핵무장에 성공합니다(물론 이스라엘은 철저히 자기들 핵무기 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톰 클랜시는 미국제 핵원료 -> 이스라엘 핵무장과 핵탄두 분실 -> 아랍 게릴라들의 핵테러라는 소설을 썼던 겁니다. 정말 있을 법한 일이었던 거죠.
그리고 알다시피 실제 역사에서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 국가였던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는 대 사건이 벌어집니다. 미국과 이란은 불구대천의 원쑤가 되어버리고, 미국이 이란과 맺었던 관계는 이스라엘로 넘어갑니다.
이란 혁명의 와중에 성난 이란 시민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고, 그 안에 있던 미국인들이 억류됩니다. 이들을 구출하려던 미국의 군사 작전은 참사로 끝나고, 이것은 미국이 특수전 기술을 갈고 닦는 계기가 됩니다.
이란 혁명과 인질 구조 실패라는 카운터 펀치를 맞은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미국은 2류 영화배우 출신 허풍쟁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대선 과정에서 레이건 측이 고의적으로 인질 석방 협상을 방해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2류 영화배우는 선거 때 맺은 이란과의 물밑 거래선을 당선 후에도 이용한 것인지, 대통령 재직할 때 이란 신정 정권 및 중남미 우익군벌과 비밀 거래를 벌였다가 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일명 "콘트라 스캔들"이죠. 뭐여, 니들 웬수라며? 현실에선 웬수들끼리 몰래 거래도 하는 거구나?
미국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원칙에 충실하게 이란을 침공한 이라크를 지원했고, 이란은 이라크와의 전쟁에 F-14를 동원해 불리했던 공중전 판세를 뒤집었습니다(역시 무기는 미제가 최고?). F-14의 가장 큰 실전 성과는 미국의 원수 이란이 거둔 겁니다. F-14의 진정한 에이스는 톰 크루즈 형님이 아니라 콧수염 기른 이란 공군 형님이었던 거죠.
현실은 픽션을 능가한다
미국-이란의 역사와, 이스라엘 핵 개발만으로도 많은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위의 소설 "공포의 총합"의 영화에서 주연을 했던 벤 애플렉은 미국 대사관 인질 구출의 한편에서 벌어졌던 일을 다룬 "아르고"라는 영화를 감독 겸 주연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요즘 네타냐후가 이란에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트럼프가 전술핵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는 말도 나옵니다.
소설 속에서는 절멸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이 핵무기 사용 직전까지 가지만, 현실에서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세계가 핵 전쟁의 위기에 놓인 겁니다. 네타냐후는 감옥행 열차 탑승 대기자 신세에서 벗어나려고, 트럼프는 체면을 구기고 전쟁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핵을 쓰려고 하는 겁니다.
미국 대통령이 성추문에서 벗어나려고 소규모 전쟁을 일으킨다는 "왝 더 독" 같은 블랙 코미디 영화가 아니에요. 이거 현실이란 말입니다. 현실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요?
이란-이라크 전쟁 와중에 미국은 실수로 이란의 민간 항공기를 격추해서 탑승자 수백명 전원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시골에서 뉴스와 떨어져 지내다가 완행 열차 타고 도착한 서울역에서 신문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이 사건 보도를 보고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 있던 미국의 이지스함이 이란 여객기를 이란 공군의 F-14로 오인(!)해서 미사일을 갈겨버린 겁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을 저지른 이지스함의 함장은 즉시 체포되어 처벌...되지 않고 오히려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거 영화나 소설로 나와도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다고 욕 먹을 사건 전개 아닌가요?
이란의 신정 체제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털 한 가닥도 없습니다만, 미국이 이란에 쌓은 업보는 너무 큽니다. 좌익 성향의 민족주의 정권을 쿠데타로 축출하고, 친미 독재 정권을 수립한다는 닳고 닳은 미국식 외교 정책, 이라크의 이란 침공 지원, 민항기 격추, 이스라엘 지원. 이란 정권이 저지른 일도 만만치 않으니, 누가 선이고 악이냐를 가리는 건 의미 없는 일로 보이기도 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어도, 그것 때문에 우리가 두려움에 떨 이유는 없었습니다. 아프리카나 발칸 반도에서 인종 청소가 벌어졌어도 그걸 전세계적인 위기라고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조금씩 불안감이 커집니다. 지구상 3대 광인 집단-미국 트럼프 정권,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 이란 신정 정권-의 난리 브루스를 보니 푸틴이 정상인으로 보이는 착시 효과가 벌어집니다. 시진핑이요? 이 전쟁을 잘만 중재하면 그는 세계 평화의 수호자가 될 겁니다. 노벨 평화상도 인터셉트하고요.
이런 글로벌 대위기가 닥치기 전에 자진해서 경기장 밖으로 나가주신 윤석열씨, 고오맙습니다. 당신의 그날 그 결단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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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lueship
03.19 · 211.♡.1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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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trz
03.19 · 180.♡.14.183
당장은 핵전쟁이 나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에너지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안타깝게도 이란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힘은 없고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핵을 써도 유럽은 일단은 겁쟁이 모드로 나설 테니까요.
전술핵만 가지고는 당연히 이란의 혁명수비대를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고 푸틴은 핵 버튼을 누를 것 같진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자원과 영토를 먹어서 이용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현존하는 악의 축 국가인 미국과 이스라엘인데요.
얘들 때문에 유가는 어쩔 도리가 없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하루 속히 국가 전체가 기름을 안 쓰면서 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재생에너지든 ESS든 핵발전(!)이든 뭐든 완전한 에너지 독립이 필요합니다.
그나저나 윤석열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윤가 부부가 믿었던 무당이 있었고 그 무당이 속인 것 아닐까요? 무당이 보기에 얘들로는 앞으로 답이 없을 것 같아서 실패할 쿠데타나 일으켜서 자폭해라 한 거죠. 아.. 물론 이런 되도 않는 망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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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V426
→ mtrz 작성자
03.19 · 39.♡.223.199
나라 구한 무당!
혹시 소설 한 편 써보시는 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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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보아찌
03.19 · 1.♡.123.211
긴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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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나크
03.19 · 1.♡.127.213
필력이 좋으십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민
민주지산M
03.19 · 39.♡.117.21
이란이 절대 핵을 안쓰죠. . ,. 지금도 이란은 영리하게 행동중이죠 . . .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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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V426
→ 민주지산M 작성자
03.19 · 39.♡.223.199
이란은 핵 무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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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YBman
03.19 · 175.♡.230.102
재밌어서 한 번에 다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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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가을
03.19 · 59.♡.20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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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유혼
03.19 · 211.♡.122.5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렇잖아도 어제오늘 외신쪽에서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현실이 너무 암울하네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이 필요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언제 이 상황이 정리될지 걱정스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