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치는소리 (175.♡.191.175)
2026년 3월 22일 PM 06:24
당신이 만들었다는 대통령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가시덤불에 갇힌 매를 구해낸 것처럼
썩은 고목 틈에서 영약을 찾아낸 것처럼
당신이 찾아내고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어.
난 대통령에게 간 어떤 한 표에 대해 이야기 할게.
54년생의 그 투표자는 그냥 소시민이야. 본인이 희망하는 정체성으로는 기독교인.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학교도 짧게 다닌 탓에 동창생들 한마디씩 늘어놓는 군대 무용담도 없어.
그래도 젊은 몸으로 사업해서 가난을 벗고 싶단 희망으로
어느 날 용산역 인근에 짐가방 하나만큼의 좌판을 벌였지. 그 때 한 남자가 다가와 저 앞에서 하면 더 잘 팔릴 거라고 가르쳐줬대.
그 남자에게 고맙다고 허리 꾸벅 인사하며 자릴 옮겼는데 바로 경찰에 단속돼서 잡혀 갔네.
그 남자가 바로 단속 경찰이었던 거야.
일식요리를 배우고 싶어서 보조로 들어갔다가 술 취한 주방장이 던진 칼에 귀가 베여서
허걱 놀라며 부랴부랴 또 자릴 옮겼지.
그래, 그 사람은 꿈은 많지만 겁이 많은 사람이야.
그래서 평생 인쇄소 기계밥 먹고 샆았어.
종이인형 만드는 공장. 새 그림이 나올 때마다 종이인형을 한 묶음씩 집으로 가져와 딸들 머리 맡에 놓아두곤 철야로 지친 몸을 쉬었지.
나와 동생은 종일토록 그걸 오렸어.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에 그는 자면서도 미소 지었어.
빼곡한 출퇴근 지하철에서 지갑 여러번 털린 뒤론, 현금은 양말 속에 넣어 다니는 사람이었어.
그러면서도 '돈이 없어 고향을 못 간다'는 애원에 양말 속 현금 꺼내 주는 어리숙한 남자였지.
"아빠는 87년도에 뭐했어? 아빠도 광장에 나갔어?"
뉴스 자료 화면에서 보던 광장을 가득 채운 장면 속에 그가 아예 없을 거라곤 생각 못했어.
기계 소리 때문에 귀가 좀 어둡고 크게 말하는 그 사람은, 그저 밋밋하게 웃었어.
원래도 말이 없는 사람답게, 호 불호가 없었어 그는.
"딸! 너도 대학 갈수 있대!!"
다세대 반지하 노란 쪽문을 열고 들어오며 그는 만세를 했어.
김영삼 대통령이 공부 못해도 재능 있으면, 사교육 없이도 대학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했대.
국영수로 바닥을 쓸고 다니면서도 부끄럼 없던 나는 그와 함께 철없이 좋아했어.
그는 YS를 정말 좋아했어. 금융실명제도, 총독부 건물을 날려버린 것도 자기를 받아주는 예수님 품에 안기듯 두 팔 벌려 좋아했어.
그 결과
그렇게 좋아하던 대통령은 IMF로 그를 무너뜨렸지.
난 아직도 그 다음 선거에서 그가 어느 쪽에 투표했는지 몰라. 확신할 수가 없어.
어쨌든 난 기적처럼 대학에 갔고, 그는 대학생 딸을 둔 아빠가 됐어.
하지만 기대와 달리 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뛰어들었어.
진즉에 인쇄소에서 나와 대학가 앞에서 세 평짜리 복사가게를 하던 그는 학생 운동에 신물이 난 사람이었어.
폭투로 부서진 도로들 집기들, 최루탄...다들 알잖아.
그는 딸이 학교 MT를 간 게 아니라
한라중공업 파업 현장에, 용산 봉천동 강제철거 현장에, 쳥계 피복상가...그런 데를 쫓아다니며 주먹을 치켜들고 있단 걸 알았지.
하지만 그보다 몇 배나 더 배우고, 수많은 투쟁 연설을 들어온 딸을 이길 수도 설득할 수도 없었을 거야.
또 MT를 간다는, 우리 사이의 빤한 거짓말에
그는 어느 날 침낭을 사다줬어. 나가서 박스 깔고 자지 말라고...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 그 임기동안에 그는 누리지 못했지.
그 다음 대선에서도 난 입이 닳도록 설득했지만, 그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투표했는지 잘 모르겠어.
"알았어"
침 마르는 긴긴 설명을 하며, 더더 간절하게 호소하며. 늘상 멀찍이 앉아 있던 거리에서 바짝 손을 붙들고 매달렸을 때 그가 한 대답이야, 고작.
하지만 그의 다음 투표는 명확했어.
"이명박 되면 우리도 부자된다!"
그는 다시 만세를 했어.
하지만 4대강 사업이나 해외자원투자가 대체 무슨 수로 복사가게를 부자되게 하겠어.
어쨌든 본인이 찍은 대통령을 따라 배포가 생긴 건지, 난생 처음 큰 대출을 받아 서울 끝자락 아파트를 하나 샀어.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도, 자살은 안된단 기독교식 말만 하던 그가 정권에 크게 분노한 건 4대강 사업으로 죽은 물고기 사진이었어.
그걸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정치적 일치단결, 합심투표를 했어.
'민주'도 '노동'도 두려워 멀리했던 그가 평생 처음으로 민주노동당에 투표를 했다니까.
기적 같은 일이었어.
물론 그 뒤로 그 당 일부 의원이 북침인지 남침인지를 모의하면서 다시는 왼쪽으로 돌아앉지도 않았지만 말야.
박근혜를 보내고
바랐던 대로 문재인 대통령까지 오면서 우린 정치적으로 꽤나 단결됐다고 난 생각했지.
엄마가 나에게 제보하기 전까지는 말야.
"느이 아빠가 윤석열 찍쟤"
난 진짜 깜짝 놀랐거든.
왜냐하면 그는 원래도 이재명 시장을 좋아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어느 날 부터 문제가 많은 거 같다지 뭐야.
그래, 아마 이 대목에서
당신은 손가락 치켜들며 '거 봐, 내가 이재명 대통령 만들었잖아! 나 아니면 됐겠어?' 하겠지.
당신은 당신 말만 하고 듣지는 않는 사람이라 이렇게 써서 보여주는 거니까 가급적 좀 더 읽어 봐.
그는 요즘 표현으로 하면 사실 긁혔던 거야.
거창하게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사실은 그 아파트에.
이제 육십을 넘기면서 그는 퇴직을 한 상황이었어. 복사 가게를 정리하고 평생의 꿈이었던 귀농을 했단 말이지.
물론 아파트를 정리하고 가면 좋았겠지만
재산이라곤 별로 오르지도 않은 아파트 하나 뿐인 사람이 전재산을 다 걸어볼 순 없었어.
다들 그러잖아, 살아보고 결정하라고.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 돈으로 시골에 집과 농사지을 땅을 샀지.
근데 2+2 전세대책이 후다닥 시행됐어. 난 개인적으론 찬성해.
집값 더 오르면 우리 애들은 앞으로 어떻게 사냐고! 그가 농사지어 차려낸 밥상 앞에서 난 침 튀기게 말했어.
그러니까 그는 내 앞에서 전세값을 좀 올려받았으면 ... 같은 욕망을 입도 벙긋할 수 없었던 거야.
이윽고 LH 부정 분양 사건이 터지면서 그는 더더욱 이재명 후보를 외면했어.
아빠와 비슷한 삶을 살고도 우릴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예 듣기 싫어했어.
손바닥에 '왕'을 새기고 나온 윤을, 살아 있는 소의 가죽을 벗겨 굿을 하는 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찍더라고.
여기 우리 모두가 그러했듯이 나도 사흘을 앓아누웠어.
그리고 근 반년을 난 시골에 내려가지 않았지. 안 만났어 그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거든.
평생을 남 상하게 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예수 사랑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선택을!
위선자. 꼴도 보기 싫은 영감탱이.
수치심마저 들었어.
"애들 보고 싶다"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애들 챙겨 반년 만에 갔지.
시골집 입구엔 그가 이른 봄부터 심어둔 꽃들이 가지각색으로 피어 있었어.
우린 어색하게 재회했고,
그는 아이들에게 꽃을 엮어 왕관을 목걸이를 만들어줬어.
뉴스에서 윤이 나올 때마다 엄마와 난 신랄하게 까댔지. 어떻게 저런 사람을 뽑을 수가 있어! 하면서 말야.
말수도 적은 그는 모르는 척 웃거나, 쩌억 하품을 하며 자러 들어갔어.
그리고 마침내 그날, 12월 3일.
공교롭게도 그 날은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야.
딱히 기념을 하는 가풍은 없었지만 몇 년에 한번은 호텔 외식 아니면 치킨집에서 닭다리라도 뜯곤 했거든.
하지만 24년 12월 3일은 온나라가 뒤집어졌는데 결혼기념일 따위가 어디 있겠어.
우리 모두가 총력전 같은 날들을 보냈잖아.
그리고 그는,
금식 기도를 일주일 했대. 매일 새벽 예배를 다니며 윤을 찍은 것을 신 앞에 회개하고 또 회개했대.
난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기독교 신을 싫어하지만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어.
얼마나 후회하고 우리 모두에게 미안해했는지를 말해주고 싶어.
그는 시골 외딴집에서나마 촛불을 응원했고, 내가 보낸 '이재명의 길'도 읽었어.
"어땠어?" 물어보니까
피식 웃으면서 "다 아는 얘기" 하더라.
이재명이란 사람에 대해서, 그런 사람이 살아온 길과 그 깊이 그 갈래에 대해서
그는 그냥 알았었던 거 아닐까.
좋은 사람이란 거, 잘 해줄 거라는 거, 곤궁한 처지의 사람들을 품어줄 거란 거...
우리 가족은 앞으로 12월 3일엔 거창한 결혼기념식을 하자고 약속했어.
그리고 25년 봄.
딱 일년 전 그는 갑작스런 질환으로 병원을 돌다가 혈액암 말기 판정을 받았어.
그 투병 과정은 생략할게. 당신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테니까.
항암치료를 몇 차례 했지만 더 나빠지기만 했지.
입원 중 코로나까지 걸리는 바람에 몸은 더 쇠약해졌어.
그는 얼른 집에 가고 싶어 했어.
심어둔 꽃들이 만개해 있고,
블루베리가 잔뜩 익어 떨어졌을 텐데.
묶어둔 개도 닭장에 닭도 풀어줘야 하는데.
포도나무 물도 줘야 하고 복숭아나무 벌레도 잡아야 하고.
하고 싶고 보고 싶은 풍경 가득한 시골 집. 얼른 빨리 돌아가고 싶어 했지.
드디어 찾아온 퇴원의 날.
비틀비틀 옷을 갈아입고 나서 그가 가장 먼저 간 곳은, 대통령 선거 투표장이었어.
난 정말 놀랐어.
차마 투표하자고 말하지 못했을 만큼 그의 상태는 안 좋았거든.
그런데도 그는 한 걸음이라도, 한 숨만큼이라도 빨리 닿고 싶고 눕고 싶은 그 시골집에 앞서
투표장을 찾았어.
대통령 이재명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 고작 한 표인데도 말야.
그를 거기로 보내는 동안에
당신이 얼마만큼의 공헌을 한 건가, 난 모르겠다 정말.
그리고
그에게 그 투표는 일생의 마지막 투표가 됐고, 25년 8월 19일 지독히 더운 날 이 세상을 떠났지.
이재명이 대통령 된 세상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대통령 내가 만들었다는 당신.
수고했어, 정말.
그치만
혼자서 4천만표 행사하는 게 아니라면 이제 그만 떠들어.
그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찍은 그 한 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한 게 아냐.
당신은 온 길 마저 더럽히며 멀리 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뒤통수 긁적이며 다시 돌아오기를, 조금은 희망해 볼게.
동지였으니까.
총수가 가르쳐주더라. 동지의 언어. 건투를 빈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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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미리
03.22 · 211.♡.22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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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외치는소리
→ 6미리 작성자
03.22 · 175.♡.191.175
위에 25년 8월 1일 돌아가셨다고 되어있네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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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미리
→ 외치는소리
03.22 · 211.♡.220.186
아아아.. 그렇군요. ㅠㅠ 선거 했으니 이제 좋은 세상 올테니 잘 지내고 계시겠지 했는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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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책하듯이
03.22 · 211.♡.96.68
시린 바람이 온몸을 뚫고 간 느낌이네요....
ㅠㅠ
※글쓴분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전 귀한 이글이 그딴놈에게....
닿지 않기를 바랍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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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너의.개소리가.들려
03.22 · 121.♡.211.16
저희 아버지도 딱 이랬습니다. 다행이 정정하셔서 요즘 저랑 만나기만 하면 명비어천가 합니다.
왜 진작 몰랐지라며 ... 눈물 찔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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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형
03.22 · 118.♡.80.23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통령의 1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을 뽑았으니 결코 후회는 없으실겁니다.🙏
B동형에게 닫기엔 과분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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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학년삼반
03.22 · 58.♡.166.78
속으로는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칼을 숨기고선, 겉으로 본인 이익을 위해 이재명 대통령을 팔며 선거운동에 나선 직업정치인들이 꼭 이 글을 보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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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낸 아버지의 모습만이 보여서 마음 한켠이 계속 짠... 했습니다. 아버님 만수무강하십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