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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5일 PM 02:50

우홍선 씨의 부인 강순희 씨가 1974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은 이들의 구명활동을 돕던 외국인 선교사가 찍었다
순희 씨는 신문에 박정희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찢어서 입안에 넣고 씹은 후 “퉤!” 뱉었다.
남편의 묘소에 갈 때마다 절을 올린 후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살인마 박정희는 천벌을 받아라! 살인마 박정희는 천벌을 받아라! 살인마 박정희는 천벌을 받아라!”
한 번 외치면 안 들어줄 것 같아 이렇게 꼭 세 번씩 외쳤다. 꼬박 5년간 씹고 외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강순희(당시 42세) 씨는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우홍선(당시 45세) 씨의 아내였다.
유시민 작가가 강순희 여사의 구술을 받아 자서전으로 출판한다는 이야기를 <매불쇼>에서 들었다. 꼭 필요한 책이고 정말 읽고 싶은 책이다. 우리가 빚진 사람이 너무 많다. 세월이 흘러도 그들을 잊어선 안 된다.
*사진 : 우홍선 씨의 부인 강순희 씨가 1974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사진은 이들의 구명활동을 돕던 외국인 선교사가 찍었다.
+우홍선과 함께 사형된 사람들 https://brunch.co.kr/@brunch699f/92
박정희 영구집권의 제물이 된 ‘인혁당 재건위’ 사람들
박정희 독재의 희생자들 4
https://brunch.co.kr/@brunch699f/92
1975년 4월 9일 이후 강순희(당시 42세) 씨는 신문에 박정희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찢어서 입안에 넣고 씹은 후 “퉤!” 뱉었다. 남편의 묘소에 갈 때마다 절을 올린 후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 생략 ...

8명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자 가족들이 울부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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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서도원, 김용원, 이수병, 우홍선, 도예종, 하재완, 여정남, 송상진
사형된 8명 중 5명은 경남 출신이고, 3명은 대구·경북 출신이다. 인적사항은 다음과 같다.
△김용원=1935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 수곡리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경기여고 교사
△도예종=1924년 경북 경주군 경주면 서악동 출생. 대구대 경제학과 졸업. 삼화건설 회장
△서도원=1923년 경남 창녕군 대합면 신당리 출생,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송상진=1928년 경북 달성군 공산면 백악리 출생. 대구대 경제학과 졸업. 양봉업
△여정남=1945년 대구 중구 전동 출생. 전 경북대 학생회장
△우홍선=1931년 경남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출생.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이수병=1936년 경남 의령군 부림면 출생, 부산사범·경희대 졸업. 삼락일어학원 강사
△하재완=1931년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 출생, 단국대 졸업, 건축업
...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국민을 살해한 박정희의 죄상은 이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빚진 사람이 너무 많다. 세월이 흘러도 그들을 잊어선 안 된다.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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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만주에서 자라고 평양에서 꿈을 키웠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 우홍선의 아내. 네 자녀의 어머니.
남편 옥바라지 갈 때도 선글라스에 양장 옷을 빼입고 나섰던,
시대를 앞서 산 아흔세 살 강순희가 유시민과 만났다.
‘강순희 말하고 - 유시민 듣다’
아흔세 살 강순희 여사의 구술 자서전이다.
1975년 세칭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우홍선의 아내 강순희가 살아온 삶의 기록이다.
강순희는 말한다. "내 삶이 우리 역사, 조선의 역사다! 이 역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내 삶의 마지막 과제라고 여겼다."
평안도 박천(‘영변의 약산’으로 알려진 평안도 영변 인근)에서 태어나, 만주 하얼빈에서 자랐고, 평양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한국전쟁 중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 왔다가 부산에 정착해 살았다. 한국은행 재직 중 혁신 운동에 뜻을 둔 우홍선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3녀 1남을 두었다.
1974년 남편 우홍선이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민주화운동 탄압의 희생양이 되어 세칭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로 구속되었고, 이듬해 4월 9일 대법 확정 판결 다음 날 새벽 사형당했다. 이후 네 자녀를 돌보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증언하고 민주화운동에 함께 했다. 당시 그의 손을 잡아 준 종교인, 이웃들에 대한 기억을 이 책에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사랑!', 한마디로 요약한다.
사랑으로 컸고, 사랑으로 가정을 이루었으며, 사랑으로 억울한 참척의 고통을 견디고 살아올 수 있었노라.
사랑이 있으니 살아지더라!
한 삶을 느낄 수 있고, 역사를 호흡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좋은 책 같아요...
감사합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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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ind
작성자
03.25 · 211.♡.9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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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하지 말고 도구라고 ... 정치인은... 함께 걷는 동지 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