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426 (117.♡.6.143)
2026년 3월 30일 PM 05:16
얼마 전에 4.3 특별법 제정에 애쓴 미애 누나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는 글을 이곳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희 집안 어르신과 4.3에 얽힌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그 이야기에 조금만 더 살을 붙여보렵니다.
어르신은 여성입니다. 아니지, 이제 돌아가셨으니 여성이셨습니다. 편의상 "영이삼춘"이라고 하겠습니다.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 "순이삼촌"을 따라서요. 참고로 제주도에서는 촌수가 애매한 친척이나 아는 사람 - 그러니까 괸당의 어른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삼춘"이라고 부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어르신과의 관계를 아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영이삼춘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결혼을 해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당시 제주도 시골에서 나름 부농의 맏딸이어서, 남편은 일본 유학 중인 친정 남동생들의 엄격한 심사-집안, 인성, 인간관계, 행동거지 등등-를 거친 동네 일등 신랑감이었다고 합니다. 그 남편은 일제 말기에 태평양 전선으로 징용되어 해방이 된 후에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과부가 된 영이삼춘은 생계를 위해 아들은 시댁에 맡겨놓고, 어린 딸만 데리고 제주시내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어느날 토벌대가 나타나 시댁이 있던 마을을 포위하고, 마을의 집들을 차례로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에 뛰어나온 사람은 토벌대가 그 자리에서 사살했습니다. 총에 맞아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 마을 사람들 모두 그날 목숨을 잃었고, 단 한 명만이 살아서 그날 있었던 일을 영이삼춘에게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표선에 있는 제주민속촌에 가서 유심히 예전 제주도 전통 가옥 구조를 보신 분이라면 아실 수도 있는데, 제주도는 특이하게도 부엌을 별도의 독채로 만들었습니다. 취사용 아궁이가 난방을 겸하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의 가옥 구조와는 아주 다르게 말입니다. 아마도 제주도는 겨울에도 기온이 많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무튼 제주도 부엌은 독채 건물에다가, 내부의 바닥은 땅을 파서 마당보다 높이가 낮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옛날에 유리창이 있을 리 없으니 부엌 내부는 한낮에도 어두침침합니다.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돌담 틈으로 토벌대의 방화와 살육을 보고는 기지를 발휘해서 자기 집 부엌에 숨어 짚단에 불을 질렀습니다. 토벌대는 부엌에서 연기가 크게 나는 걸 보고 이미 불을 지른 집이라고 생각해서 넘어갔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 할머니는 그날의 일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하필이면 돼지를 잡았다던지 뭐였는지, 시댁 식구들과 근처 일가붙이들이 모두 시댁 마당에 모여 있었다고 말입니다. 토벌대가 떠난 후 폐허가 된 마을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이 할머니 한 분 뿐이었으니, 그 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그들에게 어떤 운명이 닥쳤을 지 너무나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과 비슷한 일이 제주도 여러 곳에서 되풀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살육을 하기도 하고, 마을 사람을 한 곳에 모아놓고, 군인, 경찰, 공무원 가족-그것도 직계만-만 불러낸 후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처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자들만 골라내서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가족과 이웃의 시신을 매장해야 했고요. 제주도 밖에서도 6.25 전쟁 중 산청이나 지리산 인근 마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주도에서 친인척이 아무도 4.3에 희생되지 않은 집안은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젊은 남성이 있던 집안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4.3이 벌어지기 직전이나 직후에 일본으로 밀항을 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해방 전에 일본에서 유학하던 삼춘의 남동생 둘이 바로 이렇게 운 좋게 밀항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대신 살아생전 두번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재일교포 중에 제주도 출신 비율이 아주 높습니다. 특히 오사카 지역이 그렇습니다. 추성훈의 부모도 제주도 출신이고, 얼마 전에 재일교포 래퍼가 자기 할아버지가 제주도 사람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화제가 되었다는데, 그 래퍼도 오사카의 제주 출신 재일교포 집안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장수의 고장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사 시간에 조선시대에 평민 남성들은 60세까지 군역을 지었다고 다들 배우셨을 겁니다. 조선의 조정은 장수하는 제주도 사람들을 축복하느라 그랬는지, 90세까지 군역을 지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이삼춘도 100세 넘어서까지 사셨습니다. 재혼해서 자식들을 더 보았는데, 재혼한 남편도 대형 해난 사고로 잃고, 그 사이에 얻은 아들의 배우자-며느리도 젊은 나이에 병으로 잃었습니다. 첫 남편 사이에서 나은 딸도 당신보다 앞서 보냈습니다. 과연 장수는 축복일까, 영이삼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느낀 의문이었습니다. 대체 참척의 고통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당하신 걸까요. 제 기억 속 영이삼춘은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험한 말도, 험한 표정도 짓지 않고 조근조근 조용히 이야기하던 분이었습니다. 내세도, 윤회도, 영혼도 믿지 않는 저는, 영이삼춘의 부고를 듣고 삼춘이 이제 더 이상 고통 당하시는 일은 없겠구나, 제가 대신 안도를 했습니다.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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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ilvercreek
03.30 · 211.♡.9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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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cyflame
03.30 · 211.♡.199.42
정말 기구한 인생이셨겠네요ㅜ
제주는 특히 그런 분들이 많으셨겠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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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oydivison
03.30 · 222.♡.53.13
저의 친 할아버지도 4.3 때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이에 대해서 한 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제가 대학에 들어가고 4.3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고 뒤는게 할아버지가 그 때 피해자인걸 알게 되었죠. 너무 궁금해서 용기를 내어서 할머니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할아버지에 대해서...
끝내 답을 안해 주시고 답을 회피하시더군요. 기억에서 떠올리기 싫으셔서 였을 수도..아니며 기억에서 지워버리셨을 수도 있고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 번도 4.3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어요. 나중에 4.3 관련 자료를 통해서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주 짧은 문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거의 매해 제주 가면 꼭 한 번 평화공원도 들러보고 할어버지 묻힌 곳에도 가고 그래요..
너무 아픈 가족사 그리고 민족의 역사인데 더 많은 사람이 알고 아픔을 같이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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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리로크는나무
→ joydivison
03.30 · 203.♡.218.7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할아버지가 4.3때 시신도 못찾고 돌아가셔서 가족묘로 이장할때도 헛묘로 만들더라구요..
할머니는 해녀로 물질 하시면서 4남매를 키우셨고,
돌아가실때까지 4.3이나 할아버지 얘기는 물어봐도 대답해 주신 적이 없네요.
아버지나 고모들을 통해서 전해 들었을 뿐...
제 장모님의 부모님 두 분도 4.3때 돌아가셔서...4.3이 그냥 4.3이 아니네요..얼마전에도 제주공항에서 4.3 희생자 유골발굴작업 햇다던데...에고...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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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RJang
03.30 · 211.♡.185.254
일본이 만주일대에서 행한게 청야 전술입니다.
가용 가능한 모든 물자 + 가용 가능한 인력을 0으로 만들어서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독립군들을 고립 시키고, 아사시키려는거였죠.
그게 제주 4.3 당시 그대로 재현됩니다.
즉 주도한 군 지휘관들이 어디 출신인지 안봐도 알 수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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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ioja
03.30 · 114.♡.249.92
4.3은 알면 알수록 슬프고 끔찍해서 마음이 너무 무거워집니다.
제주 내려와 살다보니 그 무게가 훨씬더 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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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earlCadillac
03.30 · 118.♡.74.218
저는 제주도 43때 얘기를 토막토막 일화로만 듣습니다만 진짜 가슴아픈 얘기들이 너무 많아서 듣기 괴로울정도 입니다. 타민족에 저런행위를 해도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인데 한 민족한테 저러는건 진짜 악마들이나 할짓 같네요.
명통 말씀처럼 나치부역자들이나 나치 전범 처벌 처럼 공소시효없이 처벌해야합니다. 당사자가 죽었으면 후손이라도 연좌제로 처벌 해야합니다.
- 그
그린파파야123
03.30 · 106.♡.197.57
젊은 시절 방문한 제주도는 특별했고 아름다왔어요.
육지에서 보기 힘든 여러 특징들이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게 마늘밭과 검은 돌로 만든 경계선이었어요. 그 아름다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요.
제주 4.3의 실체를 알고나서 방문을 못 했어요. 내용이 처참했고 그런 땅을 관광으로 방문해서 아름다운 자연만 기억하는 자신이 너무 미안해서요.
노대통령께서 처음으로 국가권력으로 폭력을 휘두른걸 인정하고 사죄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이대통령께서 4.3과 관련된 가해자들의 공소시효를 없애겠다 천명하셨습니다.
가슴아픈 현대사의 질곡이 늦었지만 이렇게 용기있는 지도자의 결단으로 하나하나 풀려가길 희망합니다.
제주 토박이들의 한이 치유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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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슬리아
03.30 · 220.♡.25.200
작별하지ㅡ않는다... 와 같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요..
ㅠㅠ
- 바
바이어스
03.30 · 223.♡.175.144
너무 가슴 아프네요. 영이삼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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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에 ㅋㅋㅋ를 단 사람은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