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교각 (59.♡.32.196)
2026년 4월 3일 AM 10:48
이미 시대는 극소수의 천재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오픈 ai나 팔란티어 같은 첨단기술기업들이 지식의 참과 거짓을 정하고, 선택의 효율성을 높이고, 전쟁의 개시여부를 결정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곧이어 피지컬ai의 시대가 오면 그 천재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겠지요.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시대를 선도한 것은 언제나 소수의 천재들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천재들이 맺은 과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천재들마다 생각이 달랐지만 오늘날에는 천재들이 대개 개인의 부를 확장하고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사회 시스템을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조직하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미국의 테크 산업을 중심으로 세걔는 점점 민주주의를 소리 없이 허뮬어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구조를 통해 불만을 완화하려 할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들에게 기술적으로 맞설 수가 없습니다. 여기 계신 수많은 개발자 여러분들 중 한 분이라도 유수의 ai프로그램과 견줄 만한 프로그램을 혼자 힘으로 개발할 수 있으신가요? 과연 우리나라의 어떤 한 기업이 그것을 할 수 있을까요? 미국과 중국의 태크 기업들을 기술적으로 능가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국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요? 누가 그만큼 막대한 금액을 투자할까요?
결국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철헉을 공유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생산되어야 합니다. 앞으로의 교육은 한 축에서 창의성을 가진 천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할 시스템과, 그것을 어떻게 우리나라 나아가 인류공동체를 위해 ㅎ할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이들을 육성할 시스템, 그리고 이에 동의할 평범한 시민들을 길러낼 시스템을 고민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사회를 고민하고 더불어 살 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야 앞으로의 기술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공교육이 오로지 대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절망적입니다. 평가 중심의 교육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체 수능 시험 문제가 앞서 논의한 우리의 미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런 교육은 우민을 양산하고 우리의 미래를 소수의 천재들애게 내어줘 결국 기술지배의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과감히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교육과 철학을 얘기하고 대학 서열의 문제점을 부르짖지만 정작 내 아이가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하면 견디기 어려울 겁니다. 특히 고학력인 부모들일수록 더 그럴 겁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유시민, 이재명을 봅시다. 누가 봐도 그들은 범인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인격적으로 철학적으로 훌륭한 이들입니다.
결국 천재와 범인들 간의 투쟁은 저런 소수의, 범인 편에 선 천재들이 나올 때에야 조금 균형을 맞춥니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역사의 우연, 운에 기대고 살아야 할까요?
‘역사의 간지’ 를 기대하기에는 트럼프 이후, 이재명 이후의 시대가 더욱 어두워 보입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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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YBman
04.03 · 218.♡.15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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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교각
→ YBman 작성자
04.03 · 59.♡.32.196
참 그게 어려운 것이,
청춘(青春)이 푸르른 봄날이라는 뜻이니까 우리 삶의 봄같은 날을 의미하니까 얼마나 아름답니? 그리고 사춘기(思春期)는 봄날을 그리워하는 시기, 봄날을 원하는 때이니까, 봄 탈 때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몽글몽글 사랑을 갈구하기 시작하는 때라고 설명을 하면,
“뭘 그리 복잡하게 말해요”
라거나
”아는 게 많아서 배 부르겠다“
라는 반응이 다수입니다요ㅎㅎ
저는 고등헉교 문학 시간에 그냥 3년 동안 박경리 선생의 [토지]나 황석역 선생의 [장길산]처럼 민족의 고전을 학교별로 선택한 후, 완독하는 걸로 딱 마무리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중간에 백석이나 정지용, 윤동주, 이육사, 김수영 등 수많은 시인들의 시집을 섞어서 말이지요.
그러나 헛소리인 걸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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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것은, 앞으로 한자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독서량과 문해력 이야기를 하지만, 독서량이 많아지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재미가 있게 하는 여러 요인 중에 한자어에 대한 지식도 한 몫을 차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