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에 대한 마지막 글 - 살아남은 자의 공포
LV426

Lv.1 LV426 (39.♡.223.199)

2026년 4월 3일 PM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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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난 알고 있다, 난 단지 운이 좋아서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런데 오늘 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날 두고 하는 말을 들었다. “더 강한 자들이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 자신이 미워졌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입니다. 이 짧은 시 속에 광주 5.18의 소식을 접한 우리나라 1980년대 사람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 밖의 사람들에겐, "일부 폭도들이 총기를 탈취하고 방화와 약탈을 저질러 군이 이를 진압했다"고만 알려졌던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깊은 부채의식과 정식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신군부는 광주를 무참히 진압하고, 대학과 사회의 지하 민주화 세력들을 괴멸시키면서, 최소 10년 이상 저항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1981년부터 이미 대학가와 일부 성당과 교회를 통해 광주의 진상이 알려졌습니다. 현장에 없던 이들의 부채의식과 고통은 군부에 대한 분노로 폭발하기 시작했고, 광주의 희생이 있은지 7년 만에, 각성한 시민들의 저항에 의해 불완전하게나마 군부 독재를 종식시켰습니다.

이렇게 광주와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등대이자 횃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4.3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현기영 선생님이 "창작과비평"에 "순이 삼촌"을 발표한 것이 1978년이었습니다. 4.3의 실상을 본격적으로 폭로한 것도 아니고, 제주도에서 있었던 옛 사건에서 가족을 잃은 "순이 삼촌"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단편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는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고도 4.3이 제주도 밖의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거의 1980년대 중반에 와서의 일입니다. 제주도 사람들 스스로도 4.3의 이야기를 입 밖에 내기 꺼려했고, 기껏 목소리를 낮추고 주위를 둘러본 후, 귀속말처럼 짧게 스치듯 일화를 말할 뿐이었습니다. 내막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도 어른들의 숨죽인 속삭임에서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공포"였습니다.

공식 확인된 4.3의 사망자는 1만 명 가량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망자가 3만 명 정도였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희생자가 10만에 가까웠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30만 명 정도 였으니, 최소 열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예나 제나 제주도 인구는 전 인구의 1~2%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구성비와는 전혀 다르게, 전체 재일교포 중 20% 정도가 제주도 출신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일본에 많이 건너갔습니다. 육지를 가든 일본을 가든 뱃길로 가긴 매일반이고, 기왕이면 일본이 취업이나 교육에 유리했기 때문이었겠죠. 징용에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해방을 맞아 돌아왔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해방 이후 미군정 치하의 정치 상황이나 경제난 때문에 다시 익숙한 일본으로 건너갔고, 4.3의 끔찍한 사건을 보고는 고향으로 돌아올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살아남은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사실상 연좌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도 친일파 후손들에게 연좌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 너무 싫습니다. 연좌제라는 말 자체가 아직도 무섭거든요)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심정적으로는 "산사람"들에게 공감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토벌대는 증오의 대상이었습니다. 잔혹한 진압의 와중에서, 저항할 길이 없는 공포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차츰 재앙을 불러온 "산사람"들을 원망하고, 기어이 토벌대가 쓰던 "폭도"라는 말로 그들의 이웃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먼저 나서서 주변 사람들 중에 좌익 동조자들을 색출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6.25가 발생하고 제주도에서 해병대를 조직하면서, 초기 해병대는 사실상 제주도 사람들로 만들어진 군대가 되었습니다. 해병대는 원래 자원자들만 받아들였지만, 유독 제주도만은 해병대 강제 징집 대상이기도 했고(이 제도는 90년대 말까지 이어진 걸로 압니다), 군인으로 자원해서 "예비 빨갱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고픈 열망도 더해졌습니다. 군인 가족들은 학살 대상에서 면제되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인천 상륙 작전의 해병대원들이나 서울 수복 당시 정부청사에 태극기 게양하는 해병대원들 모두 제주도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주도 사람들을 통신병으로 활용해서 전투 중에 북한군의 도감청을 막았다는 일화까지 있습니다(원조 제주도 사투리는 외국어 수준이었습니다). 오우삼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2차 대전 영화 "윈드 토커"에서 나바호 족을 통신병으로 활용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주도민은 심지어 방위병도 해병대였고, 예비군도 해병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희 집안 남자 어른들도 죄다 해병대에 월남전 파병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저희 아버지만 특이하게 카튜사 출신이셨습니다).

그럼에도 공무원이나 교사 임용, 진학, 채용, 승진, 결혼 등에서 제주도 출신들은 "잠재적인 빨갱이"로 간주되어 차별 받았습니다. 제주도라는 지리적 폐쇄성, 문화적인 단절, 거기다 연이어 발생한 6.25와 남한 사회의 사상적 경직화가 4.3을 더욱 깊은 땅 속으로 파묻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함경도, 평안도, 제주도 등 변경 지역 사람들은 다른 취급을 받았습니다. 세금이 아니라 조공을 바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뱃길로 수 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제주도는 오지 중의 오지였고, 가장 혹독한 유배지였습니다. 제주도민이 과거에 응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고, 제주도를 방문한 육지 지식인들의 기록은 제주도 사람들을 말도 풍습도 다른 야만적인 원주민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90세까지 군역을 져야 하고, 아예 특별한 허가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금지하는 왕의 명령까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제주도가 경치가 좋고 아름다운 관광지라고 한달살기나 은퇴 후 살고 싶은 곳으로 꼽히지만, 19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제주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나 무지에 의한 은근한 멸시는 아주 흔하디 흔했습니다. 외국인들이 동양인을 보고 눈을 찢는 제스처를 하면서도, 막상 자기들이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 상상이 가지 않을 겁니다.

이런 뿌리 깊은 차별 인식, 나와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지 않았다면, "제주도 사람은 다 죽여도 좋다", "휘발류를 뿌려서 온 섬을 다 불태워라"라는 말을 경찰총수라는 사람이 할 수 있었을까요? 대구나 여수, 순천에서도 폭력과 살상이 벌어졌지만, 감히 저런 소리를 내뱉었다는 말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광주의 희생은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은 슬픔과 고통으로 남았습니다. 4.3의 비극은 저항할 수 없는 공포로 남은 사람들의 DNA에 새겨져 되물림되었습니다.

이런 공포의 내면화는 아마 "월북자 가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극단적으로는 행여 다시 6.25 같은 일이 벌어지면, 보도연맹 사건에서처럼 "빨갱이 가족"은 예비 빨갱이로 간주되어 즉결 처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입니다. 권력의 변덕에 의해 언제라도 간첩으로 몰릴 수 있고, 누군가 새벽에 문을 부수고 들어와 끌고 갈 지도 모르고, 바다에 시체로 던져질 수도 있다는 공포 말입니다. 월북자 가족들과의 차이라면 제주도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동백꽃은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다른 꽃들은 꽃이 질 때 꽃잎이 하나 둘 씩 떨어지지만, 동백꽃은 꽃봉오리가 한꺼번에 떨어집니다. 가끔은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보다가 처형된 사람들의 목을 베어 돌담 위에 얹어놓았다는 장면이 떠올라 부르르 진저리를 치기도 합니다.

다행히 좋은 세상이 되어 정부가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피해 보상을 하고, 국가 폭력의 책임자들은 시효 없이 밝혀내겠다고 합니다. 올 봄은 유난히 빨리 따뜻해져서 이맘때면 느끼던 비감을 덜어줍니다. 그럼에도 전 아직 4.3 기념관에 가지 못합니다. 4.3을 기록한 영화들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4.3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최근에 4.3 관련된 글을 길게 여러 번 올렸습니다. 아마 이 글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어떻게 광복을 맞이하고, 어떻게 새로운 나라의 건설에 들떴다가 좌절하고, 분노와 헛된 기대와 궁지에 몰려 산에 올랐다가, 어떻게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스러졌는지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현기영 선생님의 "제주도우다"라는 소설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말이 소설이지, 한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이 겪은 역사의 기록 같은 글입니다.

현기영 선생님도 이 책을 끝으로 더 이상 4.3에 대한 글은 쓰지 않겠다고 합니다.

댓글 (5)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04.03 · 223.♡.90.87

    4.3에 대한 글을 읽으려고 팔로잉하고 있었고 이 글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개해주신 책도 읽고, 아직 제주에 못 가봤지만 언젠가 가게 되면 4.3기념관에도 가보겠습니다.

  • LV426

    LV426 Lv.1 → 아기고양이 작성자

    04.03 · 39.♡.223.199

    헐 팔로잉이라니요. 이제 4.3 이야기는 끝이라 팔로잉 푸셔도 될 듯 합니다.

    혹시 안 읽으셨다면, 현기영 선생님의 "변방에 우짖는 새"라는 책도 권해 드립니다. 인세 수입으로 작가님 말년에 좀더 풍족하시라고요.

  • 아기고양이

    아기고양이 Lv.1 → LV426

    04.03 · 223.♡.90.87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 저기 답사도 조금 다녔지만 제주는 못 가봤어요.

    정확히는 제가 자원활동 하며 답사 같이 다니던 분들이 제주에 답사를 가시기 전에 그 활동을 그만뒀죠;

    4.3 관련해서는 언젠가 다큐 영화 감독님 강연에도 가긴 했는데 머릿속에서 뭔가 정리가 되진 않았고 책도 읽은 게 따로 없었는데 선생님 글 정독하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고 느꼈습니다.

    추천해주신 책들 다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국수나냉면

    국수나냉면 Lv.1

    04.03 · 118.♡.94.74

    이산하의 한라산을 읽었던 그 겨울, 그 날 밤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A4 복사용지 한 묶음이었던 그 서사시는 제주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 버리더군요.

  • 조이1 Lv.1

    04.04 · 121.♡.218.10

    졸은 글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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