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디1 (119.♡.199.16)
2026년 4월 11일 PM 05:25
<39:59부터 보시면 됩니다.>
1945년, 해방 전날인 8월 14일, 일제 치하에서 조선 변호사 시험을 나흘간 14, 15, 16, 17일간 치게 됐어요.
14일날 두 과목, 15일 오전에 쳤어요.
근데 오후가 되니까 해방이 돼서 시험을 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이걸로 끝이다"라고 하는데,
근데 수험생들이 일본인 관리들이 갈 때 우리에게 합격장을 주고 가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도 일본인 관리가 양심적으로, "아니 시험도 다 안쳤는데 어떻게 합격증을 주냐" 하니까,
"시험을 나흘간 다 쳤으면, 이 중에 합격할 사람이 있었을 거 아니냐, 우리가 기회를 잃었으니까 합격증을 줘야 된다."
해방보다도. 해방보다 더 중요했던게 그 합격증이었던 거에요.
그래서 그 합격증을 그 일본이 어떻게 할까 하다가 마지막에 선심을 확 써 가지고 다 줬어요.
그 한 160명 가까이를 그냥 연락되는 사람에게 합격증을 다 줬어요.
그래서 그 합격증을 받은 사람이 해방 당시에 법조인의 절반입니다. 50%입니다.
그들이 해방 후 판사도 하고 검사도 하고 대법원장도하고 한 겁니다.
그 때 변호사 시험시험 합격률이 얼마나 되었는 지 모르겠지만 자격 미달인 사람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사법시스템을 구성하여 면면히 오늘날 까지 내려 왔으니 아랫물이 맑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A보단 B가 극단적으로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중에도 암흑속의 반딧불같은 정의와 인권을 중시한 소중한 법조인분들도 있었고 그분 들 덕에 오늘날 개혁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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