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바람 (121.♡.91.44)
2026년 4월 12일 AM 05:10
딱히 세련되지 않은 그 시절스러운 장면의 연속인데도 여운이 참 오래 가는 영화입니다.
별 기억도 없는 걸 보면 오래 전 그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작금의 혼란스런 세계 정세도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이 오리나 닭을 매달고 배달할 때 사용하던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던 장면과 어렴풋한 맥도날드 외에는 정말 깡그리 잊혀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래 '첨밀밀'과 '월량대표아적심'이 널리 유행했기에 등려군이라는 가수 이름을 알게 되었죠.
분명히 극장에서 봤었는데, 다시 보는데도 거의 기억이 나질 않았고 정말 새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엔 영화를 음미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래되어서 그렇기도 하겠죠.
하긴, 요즘엔 얼마전에 인상적으로 본 영화도 가물거리더군요.
아무튼 이번에 극장에서 다시 보고 왜 그랬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가 생각이 나더군요.
유지태 역에 쏙 빠져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로만 읽었던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때의 '봄날은 간다'와 10여 년이 지난 후에 보았던 '봄날은 간다'가 다르게 다가왔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럴 수도 있는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 그 상황에 놓여도 당연하다는 듯 해탈한 자처럼 감정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침 이 글을 쓰기 시작하다 문득 종종 듣던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떠올라 구글에서 '첨밀밀 사랑의 디아스포라'라고 찾으니 무려 '디아스포라 영화제'라는 것도 있고, '첨밀밀'이 2022년 해당 영화제에서 언급되었네요.
특히 유대민족으로 대표되던 '디아스포라'라는 단어가 이스라엘과 미국이 주축이 되어 일으키고 있는 침략 전쟁 범죄 속에 유달리 새롭게 느껴지는 시절입니다.
급변이란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지금 인류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또 인류애는 이런 혼란 속에 진정 달콤해질 수 있을까 몽상을 해 봅니다.
며칠 째 틈날 때마다 영화 속에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 궁금한 것을 찾아 보곤 했습니다.
찾아보니 의외로 딱히 영화 음반이 없더군요.
영화에 쓰인 등려군의 노래를 찾아 가사도 찾아 보곤 했습니다.
노래도 영화의 흐름에 맞춰져 있어서, 영화는 '첨밀밀'로 시작해 '첨밀밀'로 끝을 냅니다.
운전할 때도 종종 듣곤 하며 영화의 여운을 즐겼습니다.
사실 영화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달콤한 꿀이란 뜻이더군요.
중국어에서 호칭할 때 이름을 반복해 부르던데 그런 연인 간의 애칭 같은 걸까요.
사랑이란 것은 지속되는 감정이자 기억이죠.
당사자에게 불행하거나 불편하거나 혹은 잔인한 것이 될 지라도 달콤했던 감정과 기억입니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니 영어 제목 'Comrades : Almost a Love Story'는 등려군의 '첨밀밀'과 다른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건너 온 두 명의 동지일 수도 있고,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달콤한 사랑의 이방인 동지들로 읽히기도 합니다.
등려군과 홍콩에 대해 찾아 본 정보가 가르키는 건 결국 '등려군'을 사망 날짜와 그녀의 사랑 노래에 맞춰 숙명적인 만남 이야기로 만들어낸 추모였고, 동시에 1985년 일국양안체제로 들어서서 중국에 반환되는 1997년 사이의 홍콩을 사랑 이야기로 그려낸 것이었습니다.
등려군의 삶도 영화의 흐름과 다르지 않습니다.
대만에서 태어난 중국인으로서 반공성향이 강했다는데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활동하며 생활하다 태국 호텔에서 사망했습니다.
등려군의 사망일과 영화 공개일을 보면 거의 1년 반만에 만들어냈네요.
그렇게 거의 사랑이야기라는 부제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문득 '혼란한 사랑의 여로 끝에 맺어지는 어리석은 순정의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두 주인공은 우연한 사고라고 할 수 있는 교차점 외에는 인연이라는 운명을 향해 서로 애써 달려가지 않음에도 결국 만남에 이르고 마는 억지스러운 숙명적 결론에 이릅니다.
노래 가사의 꿈을 이뤄 준 것입니다.
모두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사랑을 홍콩을 떠나며 이어갑니다.
그들은 모두 이방인이었고 홍콩이라는 장소에 모였다 흩어지고 말죠.
이 모든 이방인들의 사랑 또한 홍콩을 은유하는 것 같습니다.
결말은 알 수 없지만 달콤한 꿀 같은 사랑의 시작과 행로를 그립니다.
계속 비추는 여관 방의 숫자 527호가 궁금해 찾아 보니 '홍콩반환협정'이 발효된 날이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주인공들이 홍콩으로 오는 것도 1985년 5월 27일에 발효된 이후입니다.
527호 여관방은 그렇게 달콤한 꿈을 꾸다 떠나는 마치 홍콩과 같은 장소였습니다.
영화는 어디에서도 그런 정보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요리 선생님이 떠난 이유도 그런 연유였을 테죠.
일종의 디아스포라라 할 수 있을 홍콩의 현실과 이어지는 혼란하지만 달콤하기도 한 사랑의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죠.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문득 그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사그라든 처참했던 홍콩 민주화운동도 생각이 납니다.
교환원이 문자로 전하는 게 색달랐지만, 삐삐가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키마우스 사용은 디즈니에 허락을 받았을까 하는 조금 우스꽝스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끝날 때 마지막 장면이 첫 장면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게 조금 아쉬웠습니다.
다시 보니 한 시대를 아련한 사랑 이야기 속에 담으려 애쓴 영화였습니다.
그저 사랑이야기였거니 했었는데 말이죠.
영화를 떠올리며 감상에 빠져 생각나는대로 쓰며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네요.
날짜를 보고 창 밖을 보니 그믐을 향해가는 달이 떠 있네요.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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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현
04.12 · 211.♡.16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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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과바람
→ 수현 작성자
04.12 · 121.♡.91.44
그 시절에 전 본 게 한 손에 꼽는 정도나 될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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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현
→ 달과바람
04.12 · 211.♡.164.238
저도 그 시절이 지난 다음 많이 봤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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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혜아범
04.12 · 221.♡.48.99
고백 합니다만...
전 첨밀밀을 본 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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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과바람
→ 지혜아범 작성자
04.12 · 121.♡.91.44
뭐, 저도 첨밀밀, 중경삼림 정도만 본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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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cyflame
04.12 · 211.♡.240.220
저도 봤는데 대강의 내용이 생각나고 노래와 영화 분위기가 기억나네요.
당시 홍콩 영화는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것 같습니다.
좋은 감상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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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과바람
→ Icyflame 작성자
04.12 · 121.♡.91.44
전 참 대강의 내용도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
그 때는 이야기가 전혀 안 들어왔던 것 같아요. -
치치미추리
04.12 · 106.♡.128.36
하루키의 1Q87을 보며 덴고와 아오마메를 응원했던 마음이 천밀밀의 소군과 이요를 응원했던 마음과 비슷한 결로 와닿더군요. 마지막 재회 씬은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왠지 조만간 또 한번 볼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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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현
→ 치미추리
04.12 · 211.♡.164.238
저도 1Q87 좋아하는데요ㅎㅎ 덴고과 아오마메 또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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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미추리
→ 수현
04.12 · 183.♡.48.31
1Q84인데 1987과 헷갈려버렸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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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입니다. 그 시절 홍콩 영화의 르네상스가 무척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