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톤치드 (115.♡.133.48)
2024년 5월 13일 PM 03:39 · 수정됨(16:31)
첫 직장이 삼성반도체였어.
4메가 디램 만들 그 즈음이지. 맞아, 4기가 말고 4메가.
사실 3년도 채 다니지 못했어.
회사에서 불온 유인물 만들어 뿌렸다는 혐의로 일주일 정도 인사팀으로 출근했다가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고참들 얼굴 보기 힘들어서 내가 사표를 냈지.
세월이 흘러, 내가 싱가포르에 온 후에 세미콘쇼에 갔다가 그 당시 나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고참 한 명을 우연히 만났어.
당시만 해도 대리였고, 내가 그만둔 후 삼성에서 이사를 달았다는 소문을 듣긴 했는데, 내가 만났을 때는 반도체 부품회사 사장 명함을 가지고 있더라.
예전의 기억은 대충 다 잊고 반갑게 인사했어.
마침 그 회사가 내가 다니는 회사의 납품회사기도 해서 그 고참을 통해 싱가포르 법인장을 소개받기도 했지.
삼성에서 이사를 하다가 (다른 계열사는 모르겠다. 반도체 쪽만 한정해서 보자면) 회사를 그만 두게 되면 반도체 소부장업체의 계약직 사장으로 많이들 가.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만 해도 제법 돼.
거기서 딱 2년 하면서 삼성과의 기존 거래가 안 끊기도록 하는 게 핵심 업무야.
능력 있는 사람의 경우는 새로운 거래를 트기도 하지만 그런 계약직 사장이 워낙 많아서 경쟁이 치열해.
요즘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밀리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거야.
전관예우.
이게 판검사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
삼성전자 이사 출신이 소부장업체 사장으로 가서 기존 계약을 꽉 붙들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소부장 업체가 더 좋은 기술과 더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가지고 와봐야 삼성전자 직원들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는 거지.
거래선을 바꿔서 잘 되면 회사의 이익이지만 만에 하나 잘못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실무자가 져야 하잖아.
그런 상황에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고참이 나가서 사장 역할 하는 회사 대신 새로운 회사의 제품을 시도해 볼 사람, 그리 많지 않아.
이건 한 두명의 문제가 아냐.
삼성전자가 이제껏 만들어 온 기업 문화야.
다 아는데 자기도 전관예우 받아야 하니까 그냥 놔두는 거야.
소부장 업체 사장들 모두 삼성전자 출신으로 채우면 삼성 입장에서도 좋다고 여기는 것 같고.
그러니 HBM 같은 새로운 시도는 주저하게 되고, 결국 밀리는 거야.
(삼성 출신 인사가 없는 소부장 업체의 기술을 탈취해서 삼성 출신 인사의 기업에게 주고 그 쪽과 계약을 맺는 양아치스러운 짓도 여러 번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건 내가 직접 확인한 게 아니라서 이건 여기까지만)
SK하이닉스는 20만닉스를 향해 계속 가는데, 삼성전자는 10만 전자는커녕 8만 전자에서도 매번 미끌어지는 이유가 난 여기 있다고 봐.
아… 그 고참, 딱 2년 사장하더니 지금은 귀촌해서 전원생활을 즐기다고 하더라.
2년 사장 안 하고 바로 귀촌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
삼성을 위해서도 개인을 위해서도.
댓글 (6)
- D
Dozen
24.05.13 · 222.♡.94.232
-
디디카페인중독
→ Dozen
24.05.13 · 106.♡.195.214
HBM 포기를 주도한 임원이 아직도 잘 나가고있다는게 개그 요소죠... -
보보리앙
24.05.13 · 59.♡.2.209
SK그룹사들이 SK출신 임직원 유무에 대해 조금 깐깐하긴 해도 없는 건 아닌데... 저분이 핀트를 잘못 잡은듯. -
일일렁이는그림자
24.05.13 · 110.♡.251.99
삼성은 (특정)반도체 분야 압도적 1위 기업이라서
그 분야 관련 기술이라면 이것저것 다
(연구라도) 손을 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선택과 집중 한답시고 아예 손 놓는 분야가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반도체라면 특정분야 1위가 아니라 전분야 1위를 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재용이 경영능력이라면 지금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마이나스의 손). - 도
도롱이
24.05.13 · 223.♡.11.152
일단 삼성전자 정도의 회사가 버벅 거리는걸 한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하면 틀릴 가능성이 99퍼센트입니다. 그건 여러가지 이유들 중의 하나일 뿐인거죠. 그래서 해결도 쉽지 않은 거고요.
이번 HBM 같은 경우는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서 기자가 얘기한 소부장 하청업체의 전관 예우와는 가장 관계가 적은 문제일겁니다. -
DDdongleK
24.05.13 · 125.♡.144.47
하이닉스도 전관예우?? 똑같은데요;;; HBM은 사실 얻어걸린거라고 보심이.... 우리나라에 안그런 대기업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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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결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섣부르게 HBM팀을 해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HBM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각광을 받게 될 줄은 예상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메모리 반도체 전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시장의 흐름을 놓쳤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선대 회장이었다면 과연 팀을 해체했을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삼성전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안일한 판단이었던 셈이다.
https://dealsite.co.kr/articles/109743
전망 없다고 그냥 자른게 문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