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유보트 함장이자 히틀러 지지자였던...
FV4030

Lv.1 FV4030 (210.♡.27.130)

2024년 5월 13일 PM 09:57 · 수정됨(05. 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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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당시 독일 고백교회 운동의 주요 지도자였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는 

원래는 1차 세계대전 유보트 함장이자, 당대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그랬듯 히틀러 지지자였고

심지어 반유태주의자였기도 했습니다.

<1917년 WW1 당시의 마르틴 니묄러>


그런데 열렬한 루터파 목사로서, 루터파로 개종한 유태인들을 탄압하는 아리안 조항에 반대하기 시작하여

독일 교회를 나치당 아래에 두고자 하는 움직임에 반대하여,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등과 함께

반 나치 독일 고백교회 운동을 벌인 탓에 1938년부터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게 되었습니다.

연합군의 수용소 해방이 늦었다면 그도 꼼짝 없이 본회퍼 목사마냥 처형되었을 거라 합니다.

물론, 수용소 수감 이전에도 반유태주의 정서가 남아 있었던터라, 지금도 반유태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1936년 당시의 마르틴 니묄러 목사>


아무튼, 이 수용소 생활 이후 마르틴 니묄러 목사는 평화주의자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핵 반대 운동에 나서고, 베트남 전쟁 당시 하노이를 방문하기도 하고,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배치 반대 운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시인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물론 그가 쓴 시는 아니라고는 합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보수주의자가 바뀌려면 참으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아무튼 여러 생각이 드는 인물입니다.

댓글 (7)

  • 제이드강 Lv.1

    24.05.13 · 59.♡.67.109

    좋은글 감사합니다
  • FV4030

    FV4030 Lv.1 → 제이드강 작성자

    24.05.13 · 210.♡.27.130

    댓글 감사합니다.
  • mtrz

    mtrz Lv.1

    24.05.13 · 219.♡.95.246

    신념과 가치관은 한번 들어서면 바뀌기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보수/진보를 가르는 가치관은 유전적으로 내재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거의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기본적인 성향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변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단히 놀랍다는 생각입니다.
  • FV4030

    FV4030 Lv.1 → mtrz 작성자

    24.05.13 · 106.♡.128.142

    그러게요. 생각보다 변절은 쉬운가 싶을 때도 있더군요.. 이런 변수들이 역사의 재미인가 싶기도요.
  • 피난민

    피난민 Lv.1

    24.05.13 · 211.♡.147.184

    대한민국 자칭 '보수' 숭일파 들은 '때려' 줄수록 좋아 하더라구요.
    고무 호스로 조교된 자기 두목 닮아서 그런가...
  • FV4030

    FV4030 Lv.1 → 피난민 작성자

    24.05.13 · 106.♡.128.142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근본은 같다고 에리히 프롬이 그랬더랬죠. 그게 파시즘의 원천이었다고
    .
  • 갤러리김 Lv.1

    24.05.14 · 118.♡.6.237

    보수 라는 단어 자체가 바껴야 하는거 같아요. 욕망을 숨기지 않는데 점잖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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